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딤전5:1-25)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딤전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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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381년에 확정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를 네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라고 말이죠.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걸 뜻하는 말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고 교파들도 많죠. 그러나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이시죠.

또한 교회가 ‘거룩한 교회’여야 하는 이유가 있죠. 그것은 레위기 11장 45절에서 말씀하듯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하신 뜻에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사교집단이나 사업목적으로 모인 모임이 아니죠. 오직 거룩하신 주님의 뜻을 좇아 모인 모임이죠. 그렇기에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들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죠.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이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라야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종, 국적, 나이, 직업, 학력, 출신에 상관없이, 곧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교회여야 한다는 뜻이죠. 왜일까요? 우리 주님께서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 그룹을 위해서, 특정 나라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게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부활하셨죠. 그렇기에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교회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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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는데 있어서 교회 안에 다양한 계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이 많은 성도들, 과부, 그리고 장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동역해야 할지 일깨워줍니다. 1-2절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바울은 나이가 많은 분들을 대할 때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하듯 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권합니까? 자기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하라고 말하죠. 왜 그렇게 권면하는 걸까요? 디모데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에베소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 디모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 곧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뻘 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라는 이유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면 결코 덕스럽지 못하고, 목회적인 가르침과 권면이 마음이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죠.

특별히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분들,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분들을 만나면 어떤 자세로 취해야 하겠습니까?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 곧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는 말씀처럼, 나이 많으신 성도들을 대해야 하는 것이죠. 거기에서 ‘공경하다’는 히브리어는 ‘카바드’는 ‘무겁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 부모님의 삶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이것은 디모데만 향한 권면이겠습니까? 목회자든, 목회자의 사모든, 젊은 청년들이든, 모두가 똑같은 마음과 자세로 대하도록 하는 권면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일단 나이 많은 어른들의 말씀과 삶을 무겁게 여기는 것이 존중하는 삶이요, 그런 어른들의 말씀을 새기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목회를 하다 보면 젊은 청년이든, 나이가 드신 어른들이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은 어떤 삶을 살든지 간섭할 수도 없고, 이래라저래라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의 표현처럼 심하게 꾸짖지는 않더라도 당사자를 위해 권면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배경에는 반드시 그를 공경하고, 존경하고, 그 삶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는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없이 무턱대고 가르치려고 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결코 덕이 되는 가르침일 수가 없죠. 그래서 아버지나 어머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뻘 되는 분이나, 나이 어린 청년이라 할지라도, 혹여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사는 분이라도, 가진 게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누가 됐든 그가 살아온 인생의 무게를 존중하고 무겁게 여기며 대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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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바울은 3-16절까지 긴 지면을 할애하면서 과부에 대한 자세를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여기에서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는 말로 포문을 열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 번역된 헬라어 ‘온토스’(ὄντως)는 ‘참으로’ 또는 ‘실제로’하는 뜻입니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를 칭하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의 과부는 재앙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고아나 나그네와 함께 사회의 소외 계층에 속한 자들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0장 18절을 통해 그들을 깊이 사랑하시며 돌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약시대의 예수님께서도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16절을 통해 교회가 ‘참 과부’를 존대하고 돌보야 함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온 바가 있었죠. 예루살렘교회가 과부들을 접대하고 구제하는데 헬라파 과부들을 그 구제 대상에서 빼버린 것 말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바로 그 모습을 거울삼아 에베소교회에 모든 과부들은 빠짐없이 잘 돌보라고 권면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17-25절을 통해 교회 ‘장로’에 대해 권면합니다. 17-18절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잘 다스리는 장로를 존경하라고, 또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도 더욱 존경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하는 신명기 25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런 장로들이 교회에서 받아야 할 삯은 마땅한 일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장로란 누구를 칭하는 말입니까? 당시 디모데와 같은 목회자를 칭하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잘 가르치고 교회를 이끌기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존경하라고, 그리고 그 받는 삯도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로, 곧 그런 목회자는 22절에서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아무나 안수하지 말라고, 곧 직분자를 세울 때 경솔하게 세우지 말라는 것이죠.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이나, 세상의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함부로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를 세우지 말라는 뜻이죠. 다만 너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그들을 함부로 세우지 말고 네가 그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이 말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선교하면서 제 때에 먹지도 못하고 자주 굶는 상황에서 위장병이 생겼다는 걸 알고서, 그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이라도 마시는 게 좋겠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쪽 소아시아 지역은 석회수가 많아 생수가 좋지 않는 상황이죠. 그래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병을 달래고 강건토록 권면한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술을 마셔도 경건생활에 유익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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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직분이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그들 모두를 서로 서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 어긋난 길을 걸어갈 때도 함부로 말하거나 가르치려고 들거나 하지 말고, 그의 삶을 무게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네가 모범이 되는 삶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거울로, 걸어 다니는 성막이요, 성령을 모신 성전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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