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요즘은 ‘곱창 김’이 인기 있나 봐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고창에서 나는 김인줄 알았어요. 모양이 곱창처럼 길고 구불구불하다 하여 ‘곱창김’이라 불린다고 하죠. 바다에 띄우는 부유식이 아니라 지주를 박아 생산하는 김이고요. 10월 말부터 11월에 햇 곱창 김을 맛볼 수 있는데 작년 그 무렵 신옥희 권사님이 ‘증도 햇 곱창 김’을 가져왔어요. 2004년 KBS 교양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출연한 소악도 분교 학생 현우가 서른 세 살의 청년이 돼서 생산한 김이라면서요.
김 양식 방법은 부유식과 지주식이 있다고 해요. 부유식은 깊은 바다에 닻을 놓고 부표를 띄워 김발을 매달아 양식하지만 지주식은 수심이 얕은 바다에 기둥을 세우고 김발을 매달아 양식한다고요. 다만 지주식 김은 밀물엔 물속에서 갯벌이 내준 영양분을 섭취하지만 썰물엔 햇볕에 노출돼 성장이 멈춘다고 해요. 그만큼 지주식 김은 천천히 자라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탓에 그 풍미가 더욱 깊다고 하죠.
알아보니 김현우는 전교생 1명에 교사도 1명뿐인 소악도 분교를 다녔더군요. 유일한 친구가 흰둥이 강아지였고요. 그곳엔 진학할 중학교가 없어 14살 때 할머니가 있는 목포로 유학을 떠났었죠. 그 후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부친이 운영하는 김 공장 일을 도우며 순례길을 위한 〈쉬랑께 카페〉도 운영하는 중이고요. 그곳에서 받는 기부금으로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에 기부를 많이 했더군요. 다들 찾아 섬을 떠나고 있지만 그는 검은김 속에 자기 영혼을 꾸역꾸역 갈아 넣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빛 하나 없는 깊은 밤에 피워 놓은 장작불의 검붉은 불꽃을 떠올리게 된다. 잘 마른 둥치 굵은 장작이 타닥타닥 거칠게 타오르듯이, 그의 삶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던 그의 영혼을 따라 격정적으로 타올랐다가 어느 한순간, 어쩌면 너무 허무하다 할 만큼 빠르게 꺼져버렸다.”(17쪽)
고일석의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 그리고 죽음〉에 나오는 말이에요. 카라바조의 재능은 앞날의 불꽃과 같았지만 그 인생에 따라다닌 외상은 목숨조차 허무하게 꺼버렸다는 것이죠. 살아선 패배자였지만 죽음 이후 지금까지도 찬사받는 그라고 하죠. 20대엔 그의 그림이 로마인들을 매료시켰고 30대엔 살인에 연루돼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로 도망쳤고 39세엔 로마로 가는 길에 병에 걸려 죽었고요. 그의 작품은 테네브리즘(Tenebrism)으로 어둠과 밝음을 대비하는 ‘명암 대비 화법’인데 그가 빚어낸 빛은 인물과 사건을 표현할 뿐 아니라 신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였다고 하죠.
중세 흑사병이 창궐하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은 그는 머잖아 어머니도 잃었죠. 21살에 밀라노를 떠난 그가 28살에 로마 미술계의 거장으로 떠오른 일이 있었고요. 콘타렐리 채플을 장식할 두 개의 제단화 〈성 마태의 순교〉와 〈성 마태의 소명〉을 그린 뒤에요. 그 후 로마의 뒷골목에서 술판과 폭행으로 일곱 번 투옥됐는데 교황청으로부터 제안받은 제단화 〈그리스도의 매장〉을 그려 재기했다고 해요. 살인사건 후에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는 자기 자화상을 그려 넣었는데 불안한 자기 내면과 심리적 외상을 표출했던 거라고 하죠. 어쩌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려는 속죄 행위로 그려 넣지 않았나 싶어요.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막15:33)
‘어둠’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코토스’(σκότος)는 ‘그늘’을 뜻하는 ‘스키아’(σκιά)에서 파생된 단어에요. ‘흑암’과 ‘그림자’를 뜻하죠. 어둠은 빛과 반대(창1:3∼5,사45:7)되고 생명과 대조되는 사망(요8:12)을 뜻해요. 오전 9시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제 육시 곧 12시쯤 시작해 오후 3시까지 계속된 어둠과 흑암이었죠(마27:45,눅23:44) 자연계의 7분 안팎에 일어나는 일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둠이죠. 하나님의 심판(출10:22)을 의미하는 것이자 주님께서 이룰 대속과 찬란한 빛의 부활을 예고한 사건이에요(욜2:31).
소악도 청년 김현우가 생산하는 곱창김은 단순한 검은색 김이 아니겠죠. 비빌 곳 없는 작은 언덕의 소악도(小岳島)에서 그의 영혼까지 꾸역꾸역 갈아넣는 생명의 김이죠. 카라바조가 빚어낸 검은색도 어두운 물감색이 아니라 그 영혼이 깃든 색이고요.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자 자화상까지 그 어둠 속에 몰아넣었으니 말예요. 부활절 전 40일간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삶을 참회하는 사순절(四旬節,Lent)이네요. 온 땅에 어둠이 지배하는 시국 같아도 머잖아 빛이 드러나겠죠. 그를 위해 내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도 어둠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으면 해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테네브레 예배는 더욱 성스럽게 빛나지 않을까요?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www.aladin.co.kr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