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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날은 예수님께서 포박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목요일날 한 밤중까지 세 번씩이나 깊이 기도하신 주님은 마지막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자 가롯 유다가 이끌고 온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그때부터 날이 밝기까지 예수님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녔습니다. 맨 처음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자 실세였던 안나스의 법정에 끌려가셨습니다. 이후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가셨는데 70명의 산헤드린 의원 가운데 그 새벽엔 23명만 찬성해도 십자가에 죽일 수 있었지만 증인들의 증언이 맞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냈는데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어떤 죄목도 찾지 못하자 헤롯 대왕에게 보냈죠. 헤롯 대왕 역시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목을 발견치 못하자 다시 빌라도 법정으로 보내버렸죠.
그렇게 예수님은 새벽녘부터 날이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녔습니다. 마지막 빌라도 법정에서 섰을 때 빌라도는 유대 군중들을 의식해 예수님께 십자가 사형을 선고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매달릴 육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향해 갔습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날이 밝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니느라 지쳐서 길에 쓰러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로마 군사는 그 길목에 구경하던 구레네 출신 시몬을 지목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게 했습니다.
오전 9시 예수님은 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위에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힌 채 매달렸습니다. 그로부터 3시간이 흐른 정오 12시 온 땅에 어둠이 내리깔렸고 3시간 동안 흑암이 온 땅을 뒤덮었죠. 그 3시간 동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마디의 ‘가상칠언’을 하셨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하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전자책]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예스24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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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의 다섯째 날인 금요일 이 새벽에 디도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디도서는 3장으로 돼 있는데 누가 이 편지를 썼을까요?
본문 1장 4절에 이렇게 소개하죠.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디도서는 바울이 디도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도는 언제 바울을 만났을까요? 언제 이 편지를 썼을까요? 사실 디도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죠. 갈라디아서 2장 3절에 “헬라인 디도”라고 바울이 밝혔습니다. 그처럼 디도는 본래 주님을 알지 못한 이방인이었는데 바울을 통해 주님을 영접케 된 것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디도가 주님을 믿게 된 시점을 1차 선교여행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른바 바울이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주님의교회를 섬길 때, 그때 복음을 듣고 안디옥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이 디도였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디도는 갈라디아서 2장 1절을 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1차 공의회에 참석할 때 함께 동행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 깊게 생각한다면, 디도는 안디옥교회의 지도자 그룹에 속한 사람이거나 지도자 그룹을 가장 가까이서 수종드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죠. 그렇지 않고서야 예루살렘 1차 공의회에 바울이 디도를 데리고 가진 않았겠죠.
그때부터 디도는 바울의 수종자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모습은 그때만 있었던 게 아니었죠. 주후 56년, 바울이 56세 때 3차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간 복음을 전했죠. 그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훼방했습니다. 그러자 ‘티란노스의 스콜레’, 곧 두란노서원을 빌려 점심시간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죠. 2년 넘게 그렇게 했는데, 그 무렵 고린도교회의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죠. 음행, 파벌, 제사음식, 은사문제 등 말이죠. 그래서 바울이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죠(고전2:1).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에베소에 돌아와 편지를 섰는데, 그 역시 그들이 귀담아 듣지를 않았죠. 오히려 그들은 서로가 옳다는 걸 인정받고자 바울에게 질문조로 편지를 썼죠(고전1:11). 그때 바울은 젊은 제자 디모데를 보내 수습코자 했는데(고전4:17, 16:10), 그와 동시에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죠.. 하지만 디모데도, 고린도전서도, 빛을 발하지 못했죠. 바울은 그래서 두 번째로 방문(고후2:1-2)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외면해 버리죠. 왜냐하면 그때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들어와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바울은 아픈 마음을 안고 에베소로 돌아와 세 번째 편지를 썼는데, 그때 바로 나이 많은 제자 디도 편(고후12:18)에 함께 보냈죠. 그 무렵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연극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있었죠. 그래서 바울은 그 일도 내려놓고, 또 디도를 직접 보고자,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죠. 그런데 온순한 디모데와 달리 강단 있는 성격의 디도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잘 매듭짓고 왔다면서(고후7:5-10) 바울에게 전하죠. 그때 바울은 너무 기뻐했고, 마게도냐에서 네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써 보내면서 그들을 만나보겠다고 했죠. 그만큼 디도는 소중한 동역자였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예스24
이 책은 ‘원시 사건 속에 담긴 7가지 질문’, ‘노아의 홍수 속에 담긴 7가지 질문’,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 담긴 7가지 질문’, ‘이삭의 이야기 속에 담긴 7가지 질문’, 그리고 ‘야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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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디도의 역할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아니죠. A.D.60년 곧 바울의 나이 60세에 로마의 셋집에 가택연금으로 갇혔는데, 2년 만에 풀려났죠. 그때 바울은 누가와 디모데를 비롯해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에베소로 가는 길목에 크레타(Creta Island) 섬에 들리죠. 크레타 섬은 사도행전 27장에 나오는 곳입니다. 바울이 가이샤라에서 로마로 압송될 때 276명이 탄 알렉산드리아 배로 갔죠. 그때 구브로를 지나 맞바람을 피하고자 크레타 섬의 해안가를 지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크레타 섬의 미항에서 정박한 일도 있었죠. 물론 바울의 만류에도 선장의 말을 믿고 곧장 출발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 무렵에 들렀던 크레타 섬을 그때 다시 들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크레타 섬의 담임목회자로 디도를 세웠고, 이후 에베소로 와서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세웠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과 아가야 지역의 교회 곧 고린도교회를 돌아보고 격려하고자 두로아 항구와 밀레도 항구를 오가면서, 디도서와 디모데전서를 써 보냈습니다.
그런데 디도와 관련된 모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뒤 바울은 마게도냐에 이어 아가야 지역 곧 고린도교회에 들러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뒤에 고린도의 위쪽 도시, 곧 ‘니고볼리’, 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그 무렵인 A.D.64년 7월에 로마에 대 화재가 발생해 그 책임을 뒤집어 쓴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고 처형당했죠. 그때 바울도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돼 로마의 마메르틴 감옥에 수감되었고, A.D.67년 봄에 참수형을 당했죠. 바로 그 직전에 디모데후서를 써 보냈는데, 그 내용 가운데 한 번 더 디도를 언급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하고 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로마의 황제 네로가 그 화제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릴 때 바울이 체포당하면서 디도에게 ‘달마디아’로 피신한 게 아니었겠느냐, 하고 추정을 합니다. 지금의 ‘알바니아’ 지역이 그곳 달마디아 지역이죠.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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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이런 총체적인 상황을 볼 때 디도는 바울에게 둘도 없는 동역자였습니다. 디도는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첫 목회를 하던 47살 때부터 지금 참수형 당하기 직전의 67세까지, 거의 20년 동안 디도는 바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이런 동역자가 바울에게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위로요 은혜였겠습니까?
그런 디도를 향해 바울이 오늘 1장 4절에서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하고 말입니다. 디모데전후서에서 디모데를 향해서도 ‘나의 아들’이라고 밝혔는데, 오늘 디도를 향해서도 “나의 참 아들”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사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때인 53세때 만나 아들 뻘 되는 제자였고, 디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빨리 만난 제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딤후1:5)로부터 신앙심을 이어받는 믿음의 가문 속에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에 비해 디도는 헬라인 출신이었죠. 다시 말해 그에게는 신앙의 가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디모데와 함께 바울 곁에서, 아니 디모데보다도 먼저 바울과 동역했던 막역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참 아들”이라고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들과 같은 디도를 향해 바울이 언제 이 편지를 써 보냈습니까? 로마의 셋집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디도를 크레타섬교회의 담임목회자로, 또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의 담임목회자로, 각각 세운 이후 바울이 마게도냐교회와 고린도교회를 둘러볼 때 이 디도서를 써보냈다고 했죠.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이 디도서를 써 보냈겠습니까? 디모데전서처럼 크레타섬교회에서 목회하는 입장에 있는 디도에게 목회서신 차원에서 이 편지를 써 보낸 것이죠. 교회의 선한 일을 위해 장로를 세울 때 기준이 무엇인지(딛1:1-9), 이단자들이 어떤 모습인지(딛1:10-16), 주님의 교회를 세울 때 공동체 안에 비방거리가 되지 않는 태도는 무엇인지(딛3:1-15), 그리스도인이 왜 세상에서 관용과 온유함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딛3:1-11),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말과 인사말(딛3:12-15)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디도서를 써 보내면서 아들과 같은 디도에게 어떤 인사말을 합니까?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 된 것,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 받게 된 것,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택하심 속에 있는 일이요 영생을 위해 영원부터 계획된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는 거죠.
고난주간의 다섯째날인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바울 곁에 충직한 디도를 일찍부터 동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로 역사해주셨다는 사실 아닙니까? 마찬가지죠. 주님께서는 금요일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부활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님은 영생의 동역자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내 삶이 괴롭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주님의 최후 십자가와 부활 승리를 바라보며 복음으로 인내하며 살 때 주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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