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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레미야 12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1-4절까지로 악한 자가 왜 형통한지 예레미야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묻는 모습이 담겨 있고, 둘째는 5-13절까지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예레미야의 탄식과 슬픔이 담겨 있고, 셋째는 14-17절까지로 이스라엘 곧 유다의 이웃나라의 죽음과 삶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악한 자가 형통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은 그런 악한 자의 형통을 내버려두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신정론’이라고 말합니다. 신은 과연 정의로우신 분인가?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인가? 하나님께서 정의롭다면 왜 악한 자가 형통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물음입니다. 예레미야가 왜 그런 질문을 기..
오늘 읽은 예레미야 11장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언약이 그것이죠.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땅은 언약의 땅입니다. 언약의 땅이란 언약으로 주어진 땅이라는 의미이죠. 그러므로 언약의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집주인과 세입자가 계약을 합니다. 깨끗하게 잘 살겠다는 계약을 하고 세입자는 집주인이 제공한 집에서 살게 되죠. 그런데 그 계약과는 달리, 세입자가 들어간 날부터 그 집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정성껏 심어 놓은 나무를 뽑아버리고, 마당도 시멘트로 포장해 버린다면..
오늘 읽은 예레미야 10장도 이전의 말씀처럼 남유다의 심판, 곧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흐르는 가장 주된 이유는 우상숭배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우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상을 좇는 자들의 종국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 1절입니다.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곧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주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을 주실 때에, 신명기에서 하신 명령과 똑같은 격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곧 “들으라 ..
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죄악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게 멸망당할 유다 백성들, 폐허더미가 될 예루살렘 성읍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속이 타들어가겠죠. 자기 동족이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는데, 누가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 해도, 얼씨구나 잘 됐다, 한 번 당해 봐라, 너희들은 심판을 받아도 싸다, 고 이야기할 선지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통해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
어제도 우리가 살펴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뜰을 밟을 뿐,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자세가 없었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위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아래로 하나님의 자녀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 속한 그 백성들을 품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실제 삶 속에서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간음을 행하고, 거짓 맹세를 일삼고, 우상 곧 바알에게 분향하고,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전 뜰만 밟으면 안전할 것이요, 평안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가증스럽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읽은 말씀도 바로 그와 같은 삶의 연장..
오늘 읽은 예레미야 7장의 배경은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서 죽고, 그 애굽에서 강압적으로 유대 왕으로 앉힌 여호야김이 이제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른바 B.C. 609년에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성전 설교’라고 불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성전설교는 오늘 본문 26장이 유사합니다. 다만 두 곳의 차이가 있다면 오늘 읽은 7장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행한 설교의 내용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면 26장은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차이입니다. 성전의 문에 서서 외친 예레미야의 설교를 듣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매우 격분합니다. 당장이라도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반면에 관료들과 일반 대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