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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시132:1-18)

by 권또또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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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편부터 시작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134편까지, 총 15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중 오늘 본문, 시편 132편은 단연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과 바램,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예배자라면 의례히 꿈꾸는 내용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본문을 통해 겸손에 대해 일깨워준다는 점입니다. 시편 기자는 대표적인 예배자, 다윗과 하나님의 깊은 관계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에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겸손은 신앙생활에 참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교문화에서 자라나며, '겸손'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매우 좁습니다. 국어사전에도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표현하는 겸손은 그러한 명분을 드러내기 위한 소극적인 겸손이 아닙니다. 적극적 겸손이죠.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예수님은 나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점한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셨지만, 그것을 비워내는 것, 그것이 곧 적극적인 겸손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삶은 스스로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본문의 시편 기자도, 그리고 다윗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겸손은 단지 하나님 앞에서 단순히 목소리를 낮추고, 몸가짐을 제대로 하는 소극적 겸손이 아니었죠. 그의 겸손은 하나님 앞에 더 낮추는 자기 생명까지 내어 놓는 적극적인 겸손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겸손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2-7절에 그 내용이 잘 기록돼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여기에 나오는 ‘나무 밭’이 실은 기랏 여아림을 가리키는 곳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법궤가 에브라임 지방의 나무밭, 곧 기랏 여아림에 25년간 방치된 것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할만큼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서원대로 즉위하자마자, 하나님의 법궤를 되찾아왔고, 그는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오는 행렬에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과 삶을 표출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의 몸부림이었고, 신앙의 근간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겸손을 신앙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작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겸손을 단지 신사적인 예의 정도로만 여깁니다. 오늘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은 세상의 윤리적인 겸손, 다시 말해 소극적 겸손보다는 다윗이 걸었던 적극적인 겸손, 곧 예수님이 취하셨던 적극적인 겸손을 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는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속성을 일깨워 준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겸손한 자세를 취하자, 적극적인 겸손의 모습을 취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대해 응답해 주심을 고백합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다윗이 세운 그곳,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머물고 휴식을 취한다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곧 다윗의 정성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처럼 여겨집니다.

또 17절에 이와 같이 약속합니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여기서 사용된 '뿔'이라는 단어는 영원한 왕권에 대한 약속입니다. 다윗의 혈통이 영원히 이 땅을 다스릴 것, 그것이 곧 ‘다윗언약'이라고 부르는 언약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언약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언약으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쌍무언약’입니다. 쌍방이 서로 약조를 맺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은 ‘시내산 언약’이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쌍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언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편무언약’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이행불가능한 것을 하나님 스스로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무지개언약’이 있죠. 노아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 이 땅을 심판치 않으시겠다는 하나님 스스로의 약속입니다. 인간은 그 언약에 대해 어떤 영향도 미치질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홀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등장한 다윗 언약은 쌍무언약일까요 아니면 편무언약일까요? 다윗언약은 다윗이 하나님을 잘 공경했기에 언약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윗과 하나님께서 맺은 언약은 편무언약,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신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든 그 유한한 성전에서 쉼을 찾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보호가 필요하신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법궤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다곤 신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머무르는 지역마다 전염병을 일으켜, 스스로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입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든 작은 성전에서 쉼과 보호를 찾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피조물 인간에게 기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다윗이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의 행위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러한 언약을 맺은 것은 하나님의 속성, 곧 그분의 사랑에 기인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언약은 다윗의 혈통을 위한 은혜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마침내 인류의 영원한 구원 계획, 다시 말해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의 성취 차원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곧 당신의 언약과 계획을 성취해 가시는 것임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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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POD도서 > 소설 POD도서 > 어린이 1년 365일, 일곱 분야의 지식을 두루 탐색하는 교양서!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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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마치 쌍무언약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해서 복을 받고, 이행치 않아서 화를 당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그렇게 약속하지만, 그것은 그 복을 받도록 하시는 동기부여요, 또 그것을 목표로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시는 차원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원래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킬 능력 역시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다윗 언약에서 다윗의 자손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때 왕위는 영원할 것이라고 약조했지만, 다윗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주셨고, 그들의 자손에게도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즉, 우리 스스로 인생의 어떤 부분도 책임질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필요를 아시고 그분의 방법을 통해 우리는 이끌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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