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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시131:1-3)

by 권또또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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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들의 한계를 도전하거나 그 범위를 늘려나가길 좋아합니다. 현재 100m를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은 '우사인 볼트'죠. 그는 2009년에 100m를 9.58초에 달렸고, 지금도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도전을 합니다. 올림픽이나 스포츠를 관람하다 보면 사람들은 세계신기록에 열광합니다. 만약 그 기록이 경신되면 다음날 신문기사 1면에 대서특필됩니다. 오래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킵상’ 선수가 종전기록을 15초 앞당겨, 2시간 3분 23초의 세계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42.195Km의 코스를 2시간 안에 돌파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죠. 그처럼 육상이나 수영, 사격이나 사이클 등 기록경기의 스포츠선수들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기록 도전은 스포츠 종목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과학이나 예술, 문화와 의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업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는 업적을 남긴다 해도 결국 우리 인생은 짧은 줄 하나로 표시될 뿐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들의 인생은 그만큼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한계를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쓴 다윗도, 자기 한계를 수용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그가 훌륭한 업적을 남겼고, 이스라엘 사회에서 영원히 기억될 왕이었을지라도, 주님 앞에서 자기 한계를 인정한 사람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은 이처럼 인간의 한계, 곧 자기 한계를 수용했습니다. 한계를 수용하는 것은 마음의 교만이나 눈의 오만함, 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큰 일의 욕심들을 내려 놓는 걸 뜻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아는 자만 그렇게 자기 한계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최우선시합니다. 그들은 과학적이지 않거나, 논리적이지 않으면, 이성적인 방법이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만큼 자기 논리, 자기 과학, 자기 방법들이 실은 하나님을 떠난 자기 주관적인 견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교만의 한계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두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그들은 스스로 정의의 자리,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격입니다. 그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며, 하나님조차도 자기 한계에 가둬두려고 하죠.그러나 우리는 어떤 존재들입니까?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에 이 땅에서 알 수 있는 이해력이나 지식이나 깨달음은 모두 한계가 있는 것들로 인정해야 하죠. 내 지식으로는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를 모두 인식할 수도 없고, 내가 가진 이성으로는 주님의 뜻을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안다고 하나님도, 내가 만났다고 하는 하나님도, 실은 우주의 점 만큼도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가 바로 욥과 같은 자입니다.

욥기서 42장 3절에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이 고난당할 때, 친구들 앞에서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며 주장했지만, 폭풍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때 자연계의 수많은 이치를 질문 하시는 하나님 앞에 아무런 것도 대답할 수 없는 자기 무지, 자기 한계 앞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 교만의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욥이지 않습니까? 비록 자기 의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새 발에 피라는 것이죠.

 

그것은 본문을 기록한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뒤,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심지어 사울 왕의 군대장관이자 사위가 된 마당이었는데도, 인생에 고난이 뒤좇아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로서 어찌 자기 한계를 깨닫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자기가 원하는 상황에 도달치 못하는 자기 한계를 다윗이 절감했던 것이죠.

과연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정말로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꿈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으면 됩니다. 그때 마음에 부담도 사라지고, 조급증도 없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평안을 되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정한 목표가 있으면 기를 쓰고 성취하려고 안달하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세상의 불의한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까지,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하죠. 그러다가 온 천지에 자기 죄악이 드러나고, 수치를 당하게 되죠.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생각지 말고, 자기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때, 그 심령에 평강을 얻게 되는 것이죠.

만약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뒤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만 모든 중점을 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울이 자기를 추격해 오는 것도 못 여겼을 것이고, 자신이 도망쳐 다녀야 하는 것조차도 감당치 못해,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울을 죽일 기회가 동굴 안에서 두 번씩이나 있었는데, 그 때도 기꺼이 사울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도록 하시는 그 과정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서, 오직 왕이 되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 컨트롤 하시는 모습, 자기 자신을 다루시는 것임을 알끼 때문에, 기꺼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그 삶에 순응했던 것이죠. 마음의 참된 평안과 안정이란, 바로 그런 삶의 모습 속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이 이렇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다’, 이 말씀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최고의 지성과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의 얼굴보다 더 행복한 자는 바로 어머니의 젖으로부터 배부른 자,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해맑은 어린아이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얼굴에는 그 어떤 근심도, 그 어떤 걱정도 없기 때문이죠. 천진난만하게 웃는 어린아이의 얼굴은 그토록 고요하며, 그토록 평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 한계를 수용하고 이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어린 아이의 얼굴을 지닌 자들, 바꿔 말해 그렇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모든 것들을 맡길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그 어떤 근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닥쳐오는 미래의 불안과 근심도 하나님 아버지의 미래와 희망(렘29:11) 속에서 해소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의 내일은 우리의 미래와 희망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의탁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평안함을 불어넣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이제 소리를 높여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칩니다. 본문 3절에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오직 미래와 희망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그 모든 만사를 맡기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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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교보문고] 꿈을 키우는 세상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POD도서 > 소설 POD도서 > 어린이 1년 365일, 일곱 분야의 지식을 두루 탐색하는 교양서!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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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우리 자신의 방향이 다윗의 고백과 같은 인생 방향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치열한 경쟁의 계단을 좇아 오르고 또 오르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까지 미래와 희망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미래도, 희망도 발견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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