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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점심무렵 ‘조선쫄복탕’에 들러 밥을 먹고 성옥기념관갤러에 들렀다. 아는 목사의 교인이 그곳에서 개인전 초대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포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정윤태의 작품 ‘매화마당 품속으로’가 그것이었다.
“남도의 향기가 묻어나는 동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삶의 따뜻함을 화선지에 수 놓았습니다. 유달산 자락 아래 다닥다닥 붙어 목포 앞바다를 굽어보는 동네, ‘다순구미 마을’에 들러 짠기 가득한 바다 내음과 여기저기 모여사는 동네를 겨울 향기에 담아 따뜻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작가 정윤태의 예술 작업일기에는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도시 개발로 점점 사라져가는 남도 곳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생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매화 향기로 표현하고자 말이다. 그가 그린 다채로운 빛깔의 매화 작품들을 관람하는 동안 모진 겨울을 맞서며 피어오른 매화 꽃향기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1∼3)
‘시온’이란 말은 다윗이 여부스 성읍을 점령한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킨다(삼하5:7). 하지만 성경을 통틀어 150회 기록된 ‘시온’은 예루살렘을 넘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더욱이 성경에서 언급한 ‘시온’은 특정 지명보다 ‘현실이 되고픈 꿈’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상화된 시온의 갈망’은 19세기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하도록 장려한 게 그것이었다. 훗날 그것은 ‘시온주의’ 정치운동으로 발전했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으로 이어졌다.1)
그처럼 억압된 삶에서 해방을 맞이한 모습은 구약성경에 많이 등장한다. 형의 칼부림을 두려워한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고생한 끝에 얍복강을 건너 형과 화해한 장면이 그렇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나 돌보고 훗날 그의 유골을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으로 메고 간 것(출13:19)도 그렇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도 마찬가지다. 꿈꾸는 것 같은 일들이 그야말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Berachot 31a)에서는 미래에 메시아가 도래할 때 우리 입에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는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찰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만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이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삶이다. 머잖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은 '영원한 시온성'에 입성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을 꿈꾸는 것도 머잖아 현실이 될 것이다.
Kumbaya my lord, Kumbaya
Kumbaya my lord, Kumbaya
Kumbaya my lord, Kumbaya
Oh! Lord, Kumbayah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Oh! Lord, Kumbaya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흑인 영가 〈쿰바야〉다. 이 노래의 가사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의 흑인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 가사인 ‘Come by here’(여기에 임하소서)를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대로 압축해서 ‘Kumbaya’로 부른 것 말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자신들만의 콩글리쉬로 표현한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무력을 앞세워 아메리카 대륙의 금광을 유럽에 빼돌렸다. 노동력이 부족하자 아프리카 흑인들을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렸다. 그런 노예 착취는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도 예외이지 않았다. 그 당시 흑인 노예들은 일주일 내내 고된 일을 했고 주일이면 주인댁 식구들을 모시고 예배당에 갔다. 하지만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던 그들은 예배당 안에서 울러퍼지는 백인들의 ‘Come by here, my lord’(주님, 여기에 임하소서)를 자기들 식으로 ‘Kumbaya, my lord’(쿰바야, 나의 주님)로 부르며 그 모진 세월을 견뎌냈다.
1863년 1월 1일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해방을 선포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흑인노예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55년 12월 1일 앨리바마 몽고메리의 시내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로자 파크스(Rosa Parks)가 구속되자 흑인인권운동이 들풀처럼 번졌다. 그 무렵 조인 바에즈(Joan Chandos Baez)라는 여성 가수가 통키타를 치면서 ‘쿰바야’를 부르자 그때부터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
코로나19로 어려운데다 물폭탄까지 겹쳐 고통에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물난리로 죽은 이들도 있고 이재민이 된 이들도 많다. 예전 서울의 빌라 반지하에 살 때 여름철 물난리로 화장실 변기가 역류한 일이 있었다. 그날 밤을 지새우면서 물을 퍼낸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 물난리로 그런 고통에 처한 이들이 많은데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이 땅에서 겪는 고통이 그것들만은 아니다. 지금도 온갖 거짓과 악이 창궐해서 그 세력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정윤태 화가의 작품속 그리처럼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면 좋겠다. 암울한 현실속에서도 ‘쿰바야’를 부르며 주님의 임재를 사모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닦에서 살아도 주님을 바라볼 때 머잖아 꿈에 그리던 영원한 시온성이 현실로 다가올 테니 말이다.
1)https://929.org.il/lang/en/page/693/post/90136
2)https://929.org.il/lang/en/page/693/post/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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