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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만 바라보면 안전하다고 가르칩니다. 시편 121편에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않도록 지켜주시며,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해주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정말로 모든 위협 앞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안전하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염려와 불안이 안 찾아 오는 것은 아니죠. 마음에 평강이 가득 차 있는 상태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에 환난도 없고 만사형통만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도 갑작스럽게 세상과 작별하기도 하고,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의지하는 자에게도 삶의 불안정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기도 하죠.
도대체 그 불안과 염려와 같이 우리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사건들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요? 첫째로는 인간 실존의 핵심이 불안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늘 불안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심리전문가들이 진단하는 바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4분의 1 정도가 ‘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잠재적인 불안장애 환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보다는 ‘나는 불안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정의가 우리의 존재를 훨씬 더 잘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불안도 있죠.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장의 단계마다, 인생의 계절이 변할 때마다, 불안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면, 우리 마음의 중심축이 흔들리게 되고, 우리는 마치 감기에 걸리듯 크고 작은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죠.
바로 이런 상황에 우리가 오늘의 시편 125편을 되뇌일 수만 있다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예루살렘은 사면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와 같은 곳입니다. 그 중심에 나지막한 시온산이 있죠. 병풍처럼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시온산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위아래 안팎으로, 시인을 둘러싸고 계시기에, 시인의 중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우리의 역경이나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을 우리가 의지할 때, 그 어떤 위험스러운 것들이 우리의 앞과 뒤, 좌와 우에서 위협한다 할지라도, 결코 넘어뜨릴 수 없는 법이죠.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쳐도, 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강하게 붙잡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베드로가 그 태풍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봤을 때는 올곧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 풍랑과 파도를 의식할 때는 곧장 물에 빠져가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개인의 심령이 흔들리지 않는 길은,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잡고, 의탁하며 사는 데 있습니다.
둘째로, 왜 우리 삶에 불안이 찾아오는 것인가? 우리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불안은 우리 실존에서 발생할 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서 쳐들어오는 악과 적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지배하는 거룩한 땅에 살고 있는 거룩한 사람, 거룩한 무리, 곧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삶 속으로도 종종 악의 손길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악은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 옵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내 수고의 상징인 재물을 노리고 사기를 치기도 하죠. 평생토록 지켜온 내 소중한 명예를 겨냥하여 거짓과 중상모략의 함정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믿고 의지해 온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해 가슴에 구멍이 뚫리기도 합니다. 황망하게도 어쩔 때는 이 모든 악의 공격이 한꺼번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마치 욥의 고통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 우리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그 여섯 번째인 오늘 본문의 시편 125편을 또다시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때로 의인의 땅 한 가운데, 성령의 지배하에 있는 성도의 삶 한 가운데에, 악은 불청객처럼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은 성도의 삶을 흔드는 고난의 바람은 될 수 있어도, 성도의 삶 속에 안주하는 왕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성도가 고난과 시험에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이렇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악의 바람이 불지라도 성도의 나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폭풍우처럼 앞길을 막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게 사도 바울의 지론이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잠간일 뿐이요 영광은 영원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가 그런 고난을 직접 겪은 장본인이었고, 그 속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자 하는 자세로 고난을 맞이하면 주님께서 살 길을 열어 주신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죠. 물론 그가 최후에 로마의 메마틴 감옥에서 죽어갔지만, 그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는 관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살아생전 고난의 현장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매번 확인했던 까닭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불안정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도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거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함께 동행 한 마가 요한은 선교여행에서 낙오했습니다. 베드로는 목숨 걸고 맹세했지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착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경고의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그렇듯 우리의 불안은 안팎에서 끊임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외부에서 사단의 세력이 우리를 걸고 넘어지려고 불안을 몰고 오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아는 내부 사람을 통해서도 그런 엇갈린 길을 요구하며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5절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잡아야만 합니다.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착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서 파선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가롯유다가 취한 길이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걸어간 길이었습니다. 그만큼 믿음을 굳게 붙잡지 못한 까닭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연약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보듬어 안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늘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믿음에 관해 뒤로 후퇴할 수 있겠으며, 어찌 자기 굽은 길로 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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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산이 흔들리거나 땅이 갈리지는 불안이 일어나도,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오직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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