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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22편은 120편-134편까지 이어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세 번째 시편입니다. 다윗에 의해 기록된 첫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예배 때 초대받은 그 감정과 그가 드린 기도 내용들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1절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자로 초대받은 다윗의 첫 번째 반응이 무엇인가?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다’는 히브리어 ‘사마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즐거움’의 차원을 뛰어넘는 ‘감격’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이 감격스러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해주시고, 세워주시고, 보호해주신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그 하나님께 엎드려 그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 그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전예배가 그 무엇보다도 기쁨의 원천이자 감격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죠. 본래 죄와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 구원받은 자신들 아닙니까? 그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만 생각해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감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자리보다,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그릇된 본성을 충족시키는 육적인 자리에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사망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건져주신 그 하나님을 망각할 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그 어떤 자리보다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자의 자리, 기도자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며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볼품없는 배다른 형제들의 막내 아들이자, 시골 촌뜨기에 양치기에 불과한 자신임을, 그런 자기 자신을 일국의 왕으로, 그것도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초석으로 삼아주신 그 영광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 예배자의 자리를 놓칠 수 있습니까? 자기 인생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감격을 어찌 망각할 수 있겠습니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사울의 칼날에 피해 다니는 동안에도, 그리고 왕이 된 이후에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도, 그 숱한 인생 속에서 은혜를 베푸신 그 하나님 앞에, 어찌 예배자의 자리를 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인식의 틀을 제공해줍니다. 또한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바른 삶을 구현해 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영혼의 각성장(覺醒場)’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통해 우리 영혼은 다시금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예배를 통해 우리의 거룩성을 회복할 수 있는 법이죠. 그러기에 바른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자리보다도 예배자의 자리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리를 사모하며 감격하는 자들이죠. 예배의 감격에 빠질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지 않는 자, 그 영혼이 날로 새롭게 됨을 체험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예배자의 자리에 대한 기대와 그에 따른 감격으로 1절을 시작한 다윗은 마침내 2-3절을 통해 이런 탄성을 자아냅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다윗이 바라본 예루살렘은 ‘정교하게 잘 짜여진 완전한 도시’였습니다. 여기에서 ‘잘 짜여진’이란 뜻은 ‘연합하다’는 수동태의 동사로 ‘서로 견고히 연결되다’는 뜻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건물이 느슨하게 배치되지 않고, 빈틈없이 잘 배치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탄성은 단지 예루살렘의 외형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피조물인 자신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교제의 공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크나큼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로 인해 인간에 내재해 있던 하나님의 성품이 훼손된 것이죠. 그로 인해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주이시며 완전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죄로 물든 불완전한 인간과 만나주십니다. 그 만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흠이 있는 인간과 소통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통해 인간이 회복되는 것이죠. 우리가 예배 속에서 감격하며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 감격과 탄성 속에 나아간 예배의 자리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 바로 그것이 예배자의 마음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 16장 16절에 보면 1년에 세 차례에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었죠. 무교절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주심에 대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고, 칠칠절은 처음으로 곡식을 수확함에 대하여 감사하는 절기이며, 그리고 초막절은 열매 맺는 나무로부터의 소출에 대해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찾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그 중심에는 현재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 먹고 마시며 살 수 있는 삶의 근간을 제공해주심에 대한 감사 말이죠.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서 그 중심에 하나님께 감사가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에 대한 감사, 오늘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심에 대한 감사, 그리고 연약하지만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시는 주님의 신뢰에 대한 감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만큼 ‘날 구원하신 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 외로운 가을날에도 감사할 수 있고, 장미꽃 가시를 보고서도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바꿔 말해 모든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6-9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다윗이 드렸던 기도의 내용은 한마디로 그들 삶의 영적 구심점인 예루살렘 성과 형제와 친구로 대표되는 민족공동체의 평안을 구하는 섬김의 기도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고 감격스러워하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중심통로요, 영적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를 위해 섬김의 기도를 하는 분들, 곧 중보기도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이 나라, 우리 민족을 위해 섬김의 기도를 드리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다윗은 ‘자신’이라는 이기적인 울타리를 뛰어넘어 영적 구심점인 예루살렘과 민족 공동체를 위해 섬김의 기도를 드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나의 유익이 아닌 우리교회 교우들을 비롯한 한국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섬김의 기도자들이 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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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오늘 시편 122편을 통해 예배에 대한 감격, 예배 안에서의 감사, 그리고 바른 예배자로서 섬김의 기도를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더 큰 감격과 감사의 일들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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