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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24 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표제에 나타난 것처럼 다윗의 성전 순례시로서 두 번째 시입니다. 다윗은 대적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연약한 인간을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과 2절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하는 이 구절 속에 두 번이나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만약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의미의 가정법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과연 다윗은 또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3-5절까지도 매 절마다 반복되는 게 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때에”라는 단어가 그것이죠. 매 절마다 ‘그 때에’라는 단어로 시작함으로써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대적들이 공격하였을 때, 그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그들의 노여움 때문에 우리가 산 채로 삼키지 않았을까? 그들이 물처럼 휩쓸어 올 때 우리 영혼이 삼켜버리지 않았을까? 그들이 범람하는 물처럼 우리를 질식시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적들이 점점 압박해 오고, 위협해 올 때,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던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되어 주지 않았던들, 결코 우리가 헤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역사를 달리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무수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만약 본문의 표현처럼 하나님께서 그들 편에 서지 않으셨다면, 지금 그들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그 존재조차, 이 노래조차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대적들의 공격은 4절 말씀처럼 마치 홍수 때 밀려오는 엄청난 물처럼 급속히 덮쳐오고 있고, 6절에서처럼 사나운 짐승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먹잇감을 잡아먹을 기세였고, 7절에서처럼 사냥꾼의 올무와도 같은 올가미를 쳐 놓고 기다리고 있는, 그런 모습을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포위하고, 올가미를 처 놓고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전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던 것이죠. 그들의 힘으로는 헤쳐 나올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위협과 포위 상태 속에서, 올가미와 같은 덫의 상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그 올무에서 벗어났다고, 7절에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손에서 한 두 번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집요한 사냥꾼의 올무라면, 언젠가는 걸려들게 돼 있는 것이 새의 운명입니다. 어떤 동물도 올무에 붙잡히면 스스로 거기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사냥꾼의 올무에 붙잡힌 새처럼 인생이 위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올무를 끊으시고 자유케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과연 다윗이 이런 대적의 위협과 포위를 받을 때가 언제였을까요? 정확히 어떤 대적들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본문 4-5절에 나오는 표현을 통해 볼 때, 아마도 이 대적들이 블레셋 군대였지 않나 싶습니다.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여기에서 물이 우리를 휩쓸며,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다, 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다, 하고 표현하는데, 이 물로 표현된 대적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쪼개버린 그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역대상 14장 11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이르되 하나님이 물을 쪼갬 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하나님이 물을 쪼갬 같이,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그 대적들을 흩어버렸다, 완전히 침몰시켰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 때가 언제였는가?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블레셋이 접하고서, 곧바로 다윗 왕국을 침범해오고, 포위해 올 무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가?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에 처들여 올 때,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올라가서 그들을 치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길 것이니라, 하고 힘을 북돋아 주셨죠. 그래서 다윗이 그 군대의 위협과 포위를 뚫고 저들을 물을 쪼갬같이 완전히 쳐부쉈다는 표현을 그때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물을 쪼갠 사건이 블레셋 군대의 경우에만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그 물을 완전히 쪼개신 사건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물을 쪼갬같이 완전히 가르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건넜던 요단강물,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물을 쪼갬같이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가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할 때 그 하늘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웠던 엘리사도 그 요단강 물을 이러 저리 쪼갬같이 갈랐습니다.
그 사건들이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인간의 능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그 물을 쪼갬같이 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지금 자신의 힘이나 능력이라면 결코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없었을 텐데,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물을 쪼갬같이 그 대적들을 완전히 진멸할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과정을 돌이켜볼 때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우리가 과연 존재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에게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생의 기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거듭남의 사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냥꾼의 올무에 단단히 걸린 새처럼 죄와 사망의 올무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건져 올리신 사건이죠. 죽음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우리 각자의 인생 전환점이 바뀐 바로 그때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8절에서 그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하고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짓밟고, 깊은 상처를 남기는 잔혹한 대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 속에서 하는 고백이기에, 더욱도 이 고백이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인생의 난맥과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총을 경험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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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다윗의 대적들을 물을 쪼갬같이 완전히 흩어버리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심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위급한 상황속에서 절망에 빠지기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맛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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