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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할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성기에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던 절대 군주였죠. 그런 절대 권력을 마음껏 누렸던 솔로몬이, 나이가 들어 “지혜의 보물 창고”와 같은 잠언과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가 인생의 경륜 속에서 깨닫고 겪었던 것들을 후대에 전하며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시행착오를 겪지 말라고 당부하기 위해서 쓴 잠언과 전도서였습니다. 그런 것처럼 오늘 읽은 127편도 솔로몬의 삶의 지혜가 본문의 짧은 몇 구절 속에 압축돼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하나하나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 본문은 다시 새기고 또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집을 세운다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문을 세우는 것,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물을 모으고 얻는 것도 그에 해당되는 일이겠죠. 가장이라면, 가정주부라면 누구라도 “집을 세우는 일”에 관심이 높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우리 행복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집은 내가 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솔로몬이 그 인생의 경륜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집과 그의 왕궁을 건설해 본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이복형제들의 정치적 도전과 반란도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정치적 모함과 권모술수가 가득한 궁궐에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셔야 한다고 더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문회 때 보면 정치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이룬 사람들이 황당한 사건들에 연루돼, 그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공적인 일을 사적인 일로 사용하려다가, 그렇게 수십 년간 쌓아올린 명성과 성공이 한꺼번에 와르르 몰락하는 모습들이죠. 예전의 이화여대 총장도, 청와대 수석들도, 그 외 정치권과 연줄을 닿은 사회적인 기업인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렇게 그들 자신들은 나 스스로가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같지만, 그 인생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지 아니하시면, 우리 인생은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말라기 1장 4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그이른바 열면 닿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 말씀입니다. 인간이 그 위대한 바벨탑을 쌓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리면 한 순간 다 허물어지는 게 그들의 인생 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도 한 순간에 다시 세우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1절 후반부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이 의미하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 곧 예루살렘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의 지경 곧 공동체의 영역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정이나 성읍, 사업과 공동체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파수꾼이 아무리 노력한들 적의 공격 앞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정의 풍요와 안전도 하나님께, 일터와 사업도, 나라의 안보와 평화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죠.
솔로몬의 본래 이름은 ‘여디디야’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삼하12:25)라는 뜻이죠. 여호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인생만이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인생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파수꾼이 아무리 밤이 새도록 깨어 있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몸소 체험한 장본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이 본문을 읽으면 ‘일중독(workaholic)’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가정이나 다른 것보다 일이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말입니다.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여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옳은 것이라고 배워왔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 W. 오츠는 그의 저서 <워커홀릭>에서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신의 모든 가치기준을 일에 두는 사람들에 대해 경종을 울립니다. 그런 ‘업무제일주의’ ‘성과제일주의’는 단순히 성격적인 성향보다는 일종의 병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일뿐이겠습니까? 성공하는 것과 자본을 축적코자 하는 것,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자 하는 명예심, 그 모든 세속적인 성취가 현대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도록 현대 사회가 설계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심한 경쟁에서 탈락될 때 마다 “루저(loser) 곧 진사람”이 되고 마는 사회가 현대사회입니다. 그 일로 인해 우울증, 정신불안과 같은 마음속의 병이 깊어가게 되죠. 솔로몬은 그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들을 지새우며 “여호와의 사랑을 입지 않으면” 잠조차도 달콤하게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예레미야는 31장 24-26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마음의 평정과 만족감을 주십니다. 현재 주어진 것을 편안하게 누리게 하시며, 장차 올 것을 편안하게 기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것이죠.
본문 3-5절입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앞서 읽은 1절에 “세우는 자 곧 건축자들”이란 히브리 원어와 방금 읽은 3절의 “자식들”을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같은 문자입니다. 이것은 집을 짓되 벽돌로 세워지는 집이 아니라 자식들 곧 사람들로 세워지는 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집은 껍데기가 중요한 게 아니죠.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이 더 중요한 법이죠. 그래서 집은 있으나 가정이 없고, 첨단 가전제품이 가득하나 웃음이 없는 집이, 그것이 현대인들의 가정 모습이죠.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몫이고, 상급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내 삶 속에 친근하게 품고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죠. 그것이 온전한 가정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11장 38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자녀들과 함께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견고한 집을 세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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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도, 오늘 말씀처럼, 내 열심과 수고와 땀과 정성보다도, 하나님께서 내 집과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을 세워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의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의 전 영역에 걸쳐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인도하시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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