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담대하라(행23:10-11)

by 권또또 2022. 8. 11.
728x90
반응형
 

(설교열기)(성화)리오넬 메시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입니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에서 20년 넘게 뛴 그가 작년에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으로 이적했죠.

하지만 생제르맹 선수로 활약하면서 5골 밖에 터트리지 못한 채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죠.

그런데 지난 7일 개막전에서 2골을 넣었는데 그 중에 한 골이 멋진 오버해드킥이었습니다.

그때 축구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메시, 메시’하면서 그를 열광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더욱 응원했습니다.

 

그 정도로 축구를 잘하고 인기가 많은 메시지만 사실 어릴 때 아픔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5살 때부터 경기에 뛴 그였지만 9살 때 병원에서 ‘성장호르몬 결핍’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죠.

당시 의사는 메시에게 ‘150cm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는데, 축구선수로서는 끝난 거나 진배없었죠.

다행이 치료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매일 키를 크게 하는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땐 치료비를 아버지 회사에서 냈고, 성장해서는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 FC바르셀로나에 입단해서 지원받고 성장하게 됐죠.

 

2016년 6월 27일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 메시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뛰었죠.

그런데 전후반 120분 다 뛰고 승부차기에서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첫 번째 키커이자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나섰는데 그만 실축하고 말았죠.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흘렸는데, 29살의 메시는 그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죠.

 

“나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이제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챔피언이 되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끝났다. 모두를 위해서다. 나는 할 수 없다.”

 

그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민들이 메시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호소했죠.

그때 메시의 마음을 움직인 편지 하나가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의 초등학교 여교사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리오넬 메시에게,

당신은 아마 이 편지를 읽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 축구팬이 아닌 한 명의 교사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비록 교사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 많은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지금 영웅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표팀 은퇴는 당신을 깎아 내리는 사람들에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패배를 통한 성장을 무시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당신이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우선이고 유일한 가치라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인생의 목적을 내 재능으로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희귀병을 앓은 당신이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며 성장했는지를 보아 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은퇴하면 이 나라 아이들은 당신에게서 배웠던 노력의 가치를 더이상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처럼 졌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한다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당신을 이야기할 때 당신이 얼마나 멋지게 축구를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단 한 골을 넣기 위해 당신이 같은 장면을 수천 번이나 연습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당신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벗어선 안 됩니다.

모든 팬들이 당신에게 승리와 우승만을 트로피와 메달만 바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2등은 패배라고 경기에서 지는 것이 영광을 잃게 되는 일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말아 주세요.

진정한 영웅은 패했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이길 때는 같이 이기고 질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 줘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때만큼은 리오넬 메시가 아닌 아르헨티나 그 자체라는 마음으로 대표팀에 남아 주었으면 합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위대한 우승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세요.

 

(깨달음)얼마나 감동적인 글입니까?

승부차기의 실축 때문에, 코파 아메리카의 패배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한 메시였죠.

하지만 그 편지 때문에 그는 다시금 돌아와서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그 편지가 주는 감동이 무엇입니까?

1등만 알아주는 세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죠.

메시처럼 희귀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다리가 되는 길을 보여달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대회에서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 자신의 승리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패배와 절망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다리가 되고자 말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악한 세력들이 공중권세 잡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나의 승리와 나의 성공만을 위함입니까?

이 거대한 악의 세력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도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믿음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을 심문하기 위해 루시아 천부장이 소집한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격돌했습니다. 

바울이 바리새인이라고 말하면서 부활에 대해 말할 때 사두개파와 바리새는 서로들 자기 진영의 논리를 내세우며 다툰 것이었죠.

사두개파는 부활도 천사도 영도 믿지 않는 자들로서 오직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부활과 천사와 영을 믿는 자들로서 혹시 바울이 말한 이야기가 천사가 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논리였죠.

 

물론 그 두 세력간의 다툼은 말로만 다투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밀치고 잡아 당기면서 다투는 격돌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 틈에 끼어 있는 바울이 찢겨지지 않을까 싶어, 천부장 루시아는 병사들에게 명령해 바울을 빼앗아 로마군의 요새로 데려오게 했죠.

 

물론 그 일은 루시아 천부장이 주도한 일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분, 루시아 천부장의 심령에 감동을 줘서 바울을 빼오게 하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죠.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해야 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위해 바울의 목숨을 건져내신 것이었습니다.

 

(깨달음)바로 그것이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이요, 그를 통해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천국으로 데려가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했죠.

비록 연약하고 흠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없이도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일이 아주 작고 미천해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는데 우리를 사용하여 역사하신다는 사실이죠.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야긴과 보아스

북팟

www.bookpod.co.kr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내용인데, 본문 1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깨달음)여기에서 말하는 ‘그날 밤’이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곤욕을 당하고 봉변을 당한 바로 그 날 밤을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바울이 그런 수모와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고관대작의 침실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 밤도 그 전날과 다를 바 없이 차디찬 감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 억울하다고 절망스럽다고 한탄했겠습니까?

그러지 않죠. 

본문 11절은 그날 밤, 그 차가운 감방 안에서 일어난 대반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날 밤에 바울 혼자 차가운 감방에 갇혀 있었다면 암울한 절망의 밤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차가운 감방에 있는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죠.

늘 그래오셨듯이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 곁에 함께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원성)이것은 오늘 새벽에 읽은 시편 121편의 고백과 같은 격이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4-8)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통로요 다리였던 다윗이 8년간 도망쳐 다닌 광야의 삶을 지켜주신 것 아닙니까?

그런 다윗처럼 하나님나라를 전하고 세우는 바울도 하나님께서 그의 출입을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지켜주시는 것은 당연하죠.

그러니 지금 차가운 감방 안에 갇혀 있어도 바울 곁에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바울은 담대한 마음을 지녔던 것이죠. 

 

그러니 주님께서 바울에게 “바울아, 로마에서도 내 복음을 증언해야 될 거야.”하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감격하고 또 감격했겠습까?

 

(깨달음)바울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로마제국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바울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영생을 전하고자 하는 그에게 누가 과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천지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바울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시면서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죠. 

바로 거기에 바울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지위나 많은 소유물이나 안락한 주거지가 아니겠죠.

지금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 아닌가,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다윗도 죄악을 저지른 후에 간절히 회개하면서 고백한 게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0-11)

다윗은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간구하며 고백했는데, 바울도 마찬가지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골방에 처해 있을지라도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면 그곳이 천국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차디 찬 골방 감옥에 갇혀 있어도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주님의 복음을 로마에까지 가서 전해야 한다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바울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담대하라”하고 격려하셨는데, 바울은 주님의 그 격려 속에서 지금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죠. 

 

(원해)그런데 오늘 본문에 ‘담대하라’는 헬라어 원어 ‘싸르세오’(θαρσέω)입니다.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죠. 

로마군 요새의 차디찬 감방에 갇힌 바울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용기를 지니도록 주님께서 격려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대하라’ 그 말씀은 바울 개인의 성공과 승리를 위한 말씀이겠습니까?

아니죠.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은 바울 개인의 승리이기 이전에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일들이 새 힘을 얻는 길이죠.

바울이 담대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함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믿음의 징검다리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성화)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목전에 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요한복음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2-33)

 

그 말씀은 제자 강화의 시간을 삼고자 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나누기 전에 하신 말씀이자 격려였습다.

그런데 환란이 닥쳐올 때 담대하라던 제자들은 막상 주님께서 사로잡히자 혼비백산하며 줄행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때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군졸들에게 체포당하고 질질 끌려가셨지만, 그때도 결코 혼자가 아니셨죠.

그때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면서 주님 곁에서 함께 하고 계셨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날 날이 밝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심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담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실지라도,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혀 죽는다 해도, 다시금 살아나는 부활의 은총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안겨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승리하고 만 왕의 왕이 되는 영광을 예수님 홀로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 우리에게도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시고자 예수님을 통해 부활의 징검다리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깨달음)바로 그것을 내다보신 주님께서 성찬식 전에 제자 강화의 시간을 가지면서 ‘담대하라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고 격려한 것이었죠. 

앞으로 내가 부활 승천하게 되면 너희들이 이 세상의 어둠과 환란과 싸워나가야 하지만 그때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받들며 사는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라 부활의 영이신 주님께서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더욱이 너희들이 어떤 환란과 고통을 겪다가 설령 죽는다 해도 부활의 징검다리가 되신 주님처럼 너희도 부활의 은혜를 누릴 것이니, 담대하라고 격려한 것이었죠. 

 

바로 그런 이치로서 주님께서 바울에게 ‘담대하라’하라고,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격려한 것이었죠.

메시가 실축을 해서 절망 속에서 은퇴를 선언했지만 당신은 당신 혼자의 성공만을 위해 뛰는 자가 아니라 실패와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다리임을 잊지 말라는 그 편지와 똑같은 격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도 주님은 함계 하시고, 악과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살라고 격려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세계적인 축구 스타 메시도 어릴적 ‘성장호르몬 결핍’이라는 희귀병을 싸워왔는데 그의 성공은 그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지 않느냐?”

“그가 겪은 아픔과 고통을 아는 아르헨티나 국민들 중에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징검다리’이지 않느냐?”

“바울도 지금 차디찬 감방에 갇혀 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에게 ‘담대하라’고 격려하신 이유가 무엇이더냐?”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위함이고, 그가 어떤 고통에 처하든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의 징검다리임을 알게 하시는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군졸들에게 체포당할 때 다들 달아났지만 주님께서 묵묵히 십자가 잔을 마시고자 하신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 수치와 수모와 굴욕과 죽음의 쓴 잔을 받아들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시는 그 은혜의 징검다리임을 아셨기 때문이지 않더냐?”

“지금 이 세상의 악과 거짓이 판을 치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 속에서도 네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도 믿음의 징검다리임을 보여주려는 주님의 뜻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기까지 성령님이 곁에서 보호하시는 것이고, 그 자녀의 믿음의 징검다리를 통해 이 세대에 참된 믿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격려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제자들에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시며 격려하신 이유를 네가 깊이 헤아리며 담대하게 살도록 해라.”

“너는 약하지만 네 안에 계신 주님은 강한 분이시니, 그 분이 지금 내 곁에 계셔서 ‘담대하라’고 격려하지 않겠느냐?”

 

(찬양)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강을 영원토록 누리게 함이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사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리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함이라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북팟

www.bookpod.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신 이유는 부활이 있기 때문임을 아셨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활의 징검다리로 삼고자 하시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며 그 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에게도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보여주시려 말입니다.

차디찬 감옥에 홀로 갇혀 있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위로하시면서 ‘담대하라’고 격려하신 이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악과 거짓이 판을 치는 이 사탄의 세력 속에서 우리가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믿음의 징검다리를 삼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메시가 성장호르몬결핍을 이겨내며 축구스타가 된 것은 그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지금도 절망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쏘아올리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주님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믿음의 징검다리가 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누군가에게 소망과 위로의 힘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