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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너희 모든 나라들아(시117:1-2)

by 똑똑이채널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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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졸업한 서울신학대학원은 한 학년에 약 300명 정도의 정원이었습니다. 2000년도 대학원 입시 때 특별전형을 제외하고는 250명의 학생들을 시험으로 선발했습니다. 그 신대원을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은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250명만 선정하는 것은 너무나 좁은 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정도의 수를 뽑고 있습니다. 그때는 합격한 것 자체만도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신학생들의 수가 너무 많아 사역할 교회를 쉽게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들어가기 전과 들어가고 난 이후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듯 살면서 편협한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어설픈 기득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손에 쥐어지면 할 수 있는 데로 힘을 휘두르려고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본성이 우리의 삶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신앙속에서도 나타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2천년 역사 속에서 존폐의 위기도 있었고, 이단과 사이비의 대적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전해 왔습니다. 실수도 있었고, 교단과 교파가 수없이 갈라지기도 했지만, 진리와 복음 앞에 서기 위한 몸부림의 노력도 없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낸 마당에 한국개신교회는 정말로 성숙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성숙한 기독교란 개교회를 넘어 이웃과 사회, 그리고 민족과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죠. 성숙한 신앙, 성숙한 교회가 되어, 세상과 이웃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편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 대한 예의를 잃은 채 그들의 신상에 낙서도 하고, 심지어 훼손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처소에서 방해 행위를 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복음이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게 된 것은 그만큼 복음의 기득권에 취해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실은 과거의 유대인들도 그 복음의 기득권에 취해 편협한 신앙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우월의식 속에 살았던 때가 그것이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민족들은 개나 돼지처럼 짐승 취급하던 민족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뜻은 그들이 우월의식 속에 살도록 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선민으로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세계에 보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제사장, 곧 중보자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이 이와 같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민족을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다른 민족들까지 구원하고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은 버리고 자신들만 선택받았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이스라엘을 제사장이 아니라 지배자로 만들었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편협한 신앙의 근원도 종교적 우월의식과 내 교회 중심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개’와 ‘돼지’로 취급하는데, 나는 타종교인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의 없게 행동한 적은 없는가 하고 말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내 교회만을 최고로 여기는 그런 모습은 없는가, 하고 말입니다.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와 싸워야 하지만, 주변 교회와 싸우는 꼴을 보이는 것은 없는가 하고 말입니다. 실은 그것들이 나 자신의 편협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유대인들이나 편협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편입니다. 실로 117편은 가장 짧은 시편이지만, 동시에 그 통이 매우 큰 시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일이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에게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세계 모든 나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배재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편기자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완전한 찬양이란 우리 그리스도인들뿐만이 아닌 온 인류와 모든 피조세계가 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시편 148편에 그 목록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해와 달과 같은 자연물을 비롯해, 바다와 산과 들과 백향목과 짐승과 나는 새와 땅의 고관들과 재판관들과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 실로 모든 만물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은 실로 자기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교만과 오만 속에 있는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을 진실되게 찬양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찬양해야 할 이유가 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보통의 시편은 찬양해야 할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나, 큰 이적을 동반한 능력에 근거를 둡니다. 하지만 본문 117편에 나타난 찬양의 이유는 창조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두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기에,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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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떠올릴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 가운데 우리를 먼저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이스라엘의 기득권이나 선민의 오만함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제사장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통로, 다리 역할을 하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이 겸손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은 물론이요, 타 종교인들도 섬기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도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믿지 않는 자들의 가교역할, 구원의 통로 역할자로 살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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