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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14편은 어제에 이어 ‘할렐 시’ 곧 감사시의 일종으로 분류됩니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점인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출애굽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그 여정길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떠올리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신 부분들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총 5개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그 첫 번째는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유다가 여호와의 성소가 될 수 있었던 것, 이스라엘이 그분의 영토가 될 수 있었던 것,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으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 없었던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한 광야의 백성들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집도, 전토도 없는 방랑객들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빼내서 광야 40년을 거친 다음에 드디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토록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집도, 영토도, 주권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들 결코 세계 만방에 그들의 자주권을 알릴 수 없었던 것이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위대하심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 본문 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그들을 홍해 바다 앞에 이르게 하셔서, 애굽 군대가 뒤쫓아 오는 그 추격전을 펼치는 그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른 땅처럼 갈라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마찬가지였죠.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거쳐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앞에 두고, 느보산에서 출애굽 1.5세대와 2세대를 향해 고별설교를 하고 자기 사명을 다했죠. 그리고 그 바턴을 여호수아가 이어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지 않습니까?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모세와 함께 하던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하면서 말입니다. 그때 맨 앞에 놓인 관문이 바로 요단강이었죠. 그 강을 건너야만 여리고성으로, 아이 성으로, 그리고 가나안 땅 중부지역과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을 차례로 정렴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때 40년 전 홍해를 건너던 그 때처럼 이번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갈 때 그 요단강이 홍해처럼 쫙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역시 마른 땅처럼 통과했죠.
그 역사 역시 하나님께서 베푸신 위대한 역사였다는 점입니다. 그 역사가 없었던들 그들은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후에 여리고성은 물론 아이 성도 그리고 가나안 전 지역들을 차례로 점령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점령케 된 그 배경이 요단강 도하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다시 말해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역사가 무엇인가? 본문 4절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또 6절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여기에서 수양들과 어린 양들이 산들과 작은 산들에서 뛰논다고 밝히는데, 과연 그 산들 작은 산들은 어느 산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보통 하나님을 목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양으로 비유한다면, 수양과 어린 양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들이 뒤놀던 산은 바로 시내산 다시 말해 호렙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그 언약이 없었던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언약식은 중요한데, 그 언약의 장소가 시내산 곧 호렙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산에서 언약식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부터 진정한 선민이 되었던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역사가 무엇이었는가? 본문 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셨다,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실 물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그들에게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사건을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실은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오늘 본문에는 단 8구절로 밝혀주고 있지만, 실은 40년의 여정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처럼 우리의 지나온 인생도 실은 단 몇 줄로 정리되고, 또 평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가 70평생을 살고, 또 강건하여 80평생을 산다 해도, 앞으로는 100세 시대를 산다 해도 수많은 책으로 엮어지는 게 아니라, 단 몇줄로 우리 인생이 정리된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수르 협곡을 지나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하시고,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또 요단강을 건너게 하셔서, 궁극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것이 40년 인생이라 할지라도, 본문의 기억은 단 8줄로, 더 짧게는 네 줄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듯 우리들의 인생 여정도 그렇게 단 몇줄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기억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어떤 평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삶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신앙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충성된 사람으로 남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무슨 일이나 무슨 행사를 할 때, 그게 아니라도, 매사에 전도인의 삶을 살고, 누가 보든 누가 보지 않든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세우는 신앙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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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그런 삶을 한때 한 순간으로 그치는가, 아니면 일관되게 살아가는가, 그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일관된 삶을 살기 위한 자세가 있죠. 바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생전 처음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의 이끄심대로 살아왔는데, 그래서 주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기 위해 열심을 냈는데, 그것을 평생토록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초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직 나의 구원자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를 사랑하고 계시니, 나의 삶으로 그 분에게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그 초심을 잃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어떤 순간에 어떤 모습을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었도다, 하고 각인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우리는 또다시 이 땅에 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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