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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시119:1-24)

by 똑똑이채널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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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가장 짧은 시편은 117편이었죠. 2절이 전부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119편은 전부 176절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패턴이 있습니다. 1절 윗부분에 히브리어가 표기돼 있고, 또 9절 윗부분에 히브리어 하나, 17절 위에 히브리어, 그리고 25절에도 히브리어 하나, 이런 식으로 1-176절까지 각각 8구절씩 나뉠 때마다 히브리어 하나가 표기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히브리어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히브리어 알파벳 22개를 표기해 놓은 것입니다. 그만큼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개수만큼의 내용을 동일하게 기록해 놓고 있는 시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래서 외우기 쉽고, 암송하기 쉽고, 또 그에 따라 찬양하기도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편에 반복되는 단어가 몇 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율법’ 곧 ‘토라’라는 단어가 25번 정도 등장하고 있고, 말씀 곧 ‘다바르’란 단어가 24번, 심판 곧 ‘미스파팀’이란 단어가 23번, 증거 곧 ‘에두트’란 단어가 23번, 계명 곧 ‘미쪼트’란 단어가 22번, 법규(statutes) 곧 ‘휘킴’이란 단어가 21번, 교훈(Precepts) 곧 ‘피퀴딤’이란 단어가 21번, 말씀 좀 전의 다바르와는 다른 ‘이므라’란 단어가 19번 등장합니다. ‘다바르’는 사람에게 드러내는 말씀이고, ‘이므라’는 그냥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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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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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오늘 읽은 시편 119편에는 그런 8가지의 중요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계시하고 보여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편119편을 몇 부분에 걸쳐 나눠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1-8절까지는 복된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혀주고 있고, 9-16절까지는 청년이 행실을 정결케 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17-24절까지는 119편을 기록한 시인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에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게 행하는 자들이 복된 자이겠습니까? 3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불의함 대신에 주의 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복’을 칭하는 히브리 ‘에셰르’는 ‘아사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아사르’는 ‘똑바로 가다, 나아가다, 형통하다’는 동사입니다. 복이란 똑바로 걸어가는 것,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바르게 사는 것, 그것이 곧 복이자 형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실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한 가지 행동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많은 선택을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도 정말로 많은 선택을 하죠. 몸이 피곤하더라도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인가, 아니면 불친절하게 대할 것인가, 내가 아는 것을 상대에게 자세히 말해 줄 것인가, 아니면 대충대충 말할 것인가,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기분이 나빠도 참고 좋은 표정을 지을 것인가, 그렇게 대화를 해도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복잡한 선택의 과정을 겪은 후에 행동으로 드러냅니다.

그때 선택의 기준이 내 감정이나 기분이 되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내 행동은 달라집니다. 지금 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에 따라 내 행동은 달라지기 마련이죠. 그러나 내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내 행동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지체가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똑같이 대하셨죠. 나병환자가 찾아와도, 백부장이 찾아와도 주님은 동일하게 대하셨습니다.

그처럼 주님이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불의를 선택하지 않고 주의 도를 선택하는 삶입니다. 주의 도를 선택하는 삶이 복된 삶이기 때문이죠.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느 마을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과부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 재판장은 뇌물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유리한 재판을 내리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에게 어떤 뇌물도 가져오지 않은 과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재판장은 법에 따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재판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감정 곧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인가에 따라 재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불의한 재판장’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기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복된 삶, 형통한 삶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본문 6절입니다.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인간은 죄를 지으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나뭇잎으로 자신의 하체를 가린 이유도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TV를 통해서 죄지은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얼굴을 가립니다. 부끄럽기 때문이죠. 그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 감정 곧 자기 기분을 따르지 않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곧 복된 삶, 형통한 삶입니다.

 

9절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종종 젊은 청년들이 암송하곤 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청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유아’ 혹은 ‘이유기의 어린 아기’ 또는 ‘작은 소년’ 그리고 ‘청소년’을 칭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출애굽기 2장 6절에서 생후 ‘몇 개월 안 된 모세’를 ‘갓난 아이’로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다 큰 성인으로서의 청년이 아니라, 아직 어려서 철부지 아이를 칭할 때 사용된 단어죠. 이처럼 철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은 곧 주의 말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교사, 학부모, 학생의 80-90%가 학교교육을 위기로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 위기의 이유는 과도한 입시경쟁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40번이 넘게 교육정책이 바뀌었다고 하죠. 1994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됐는데, 지난 20년 동안 17번이나 그 정책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자주 바뀌었지만 교육정책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이죠. 그렇게 정책이 바뀔때마다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요동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인데, 오늘 본문은 철부지 아이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것,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그들을 바르고 영원한 길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복이요, 형통한 삶의 근원입니다.

19절에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여기서 나그네로 번역된 히브리어 ‘게르’는 ‘체류자’, ‘거류자’를 뜻합니다.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머물다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모세도 자기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 곧 ‘나그네’라고 지었습니다. 그것은 곧 지금 자신이 사는 곳은 자기 땅이 아니라 타국임을 잊지 않기 위함이죠. 언젠가 고향을 찾아 떠나야할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자기 신앙고백으로 ‘게르솜’이라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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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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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머물 게 아니라는 것, 우리도 ‘나그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의 상태를 인식하는 자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그렇게 사는 자만 복된 삶, 형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아이들이야말로 철부지 아이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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