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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49-72)

by 권또또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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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을 쓴 러시아의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산다는 것은 고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은 굳이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제입니다. 시련이나 고통이나 고난을 일부러 돈 주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돈 주고도 피할 수도 없는 게 바로 그 고통과 시련과 고난이죠. 고난에 관해서는 욥이 전문가이지 않습니까? 그런 그가 인생의 고난에 대해 어떻게 말했습니다. 욥기서 5장 6-7절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해서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 안에서 살기를 애쓰는 이들에게조차 고난이라는 계절은 피해가지 않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사시사철이 있듯이, 인생의 사계도 있습니다. 희노애락과 같이,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도 하지만, 슬픔과 애통의 계절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조차도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다들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 고난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9)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좁은 길과 같은 셈입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은혜의 때가 지나면 고난의 시기가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홍해의 기적 체험 이후에 광야의 메마름을 통과해야 했음은 물론입니다. 큰 성읍 여리고 전투의 승리 다음엔 작은 성읍인 아이 성 전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습니다. 기쁨의 동산에 오르기가 무섭게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건, 그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성령 충만의 정점을 찍었다가도, 혹시라도 미혹케 하는 영의 시험으로 인해 시련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신앙생활엔 고공행진만 있는 게 아니라, 밝은 햇빛만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종종 진흙탕을 박박 기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밤의 계절을 맞이하기도 하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어둔 밤이 찾아온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밤을 허락하신 이유는 낮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밤과 낮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우리의 만족이요 목적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고난의 밤이 찾아오거든 오늘 본문 시편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이 말씀은 신앙의 철칙처럼, 우리가 평생 외우고 암송할 말씀이어야 합니다.

고난을 유익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만큼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질병, 사별과 헤어짐, 실패와 파산, 버림받음과 외로움, 여러 고난의 계절을 지날 때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고난 속에 더 큰 뜻이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고난 속에 숨어 있는 더 큰 뜻이라는 보화를 캐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 불평과 슬픔, 절망과 분노 속에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죠.

 

첫째로는, 고난의 밤이 찾아오면 반드시 옛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52절이 이렇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또한 55절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고난의 밤에는 우리의 두뇌가 현재의 고통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옛 은혜를 기억해 보면, 주님과의 첫 사랑을 기억하고, 처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 보면, 내게 닥쳐 온 고난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은 분명코 잠깐이요, 저 영원한 영광을 향한 하나의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크기를 확대해서 보지 않고, 작게 보는 방법은 바로 옛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해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의 밤이 찾아오면 육신의 눈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영의 귀로 듣기 때문입니다. 본문 58절과 62절이 이렇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58),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62)

‘내가 간구하였다’, ‘내가 밤중에 일어났다’, 이 고백들이 실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난의 밤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라는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호소하며, 옛 은혜들을 기억할 때, 우리가 비록 눈은 감았으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발걸음을 진리와 빛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향했던 길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임을 그때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고난은 세상을 좇느라 닫혀 있던 우리의 귀를 뚫어주시는 하나님의 확성기입니다. 고난의 밤에는 귀를 열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죠.

 

셋째로, 고난의 밤이라는 계절은 인생의 참의미를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인생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66),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71) 사실 십자가의 도는 교리시간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버림받고 조롱받을 때, 내가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할 때, 비로소 십자가에 달려 고난받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배우게 됩니다. 내가 싶패와 좌절을 겪을 때, 그 십자가의 고난을 배우는 것 말입니다. 마찬가지죠. 천국과 소망은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을 하거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그 천국과 소망을 알아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고통과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생의 더 깊고 풍부한 진리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죠. 그것이 곧 인생 학교인 셈이죠. 그런 은혜의 학교로 우리를 초청해 깨닫게 하시도록,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욥기서 42장 5절에서 욥도 그런 고난의 현장을 통해 고백한 게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과 자비에 대해 귀로 듣기만 했는데, 그 고난의 자리를 통해 직접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눈으로 바라본다고 고백한 것 말입니다. 그만큼 인생학교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의 학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찬송을 부를 때 주로 기쁠 때 부릅니다. 감사도 주로 기쁠 때 터져 나오죠. 그러나 밤에 부르는 노래, 고난 중에 눈물로 드리는 노래야말로 찬송 중의 찬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난 중에 비록 상실이라는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있더라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드리는 감사야말로 진짜 감사인 것이죠. 그래서 본문 5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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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은 나그네 인생, 천국본향을 향한 나그네 인생의 인생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나그네 여정에서 성도들 곧 우리 자신들이 종종 고난과 고생을 겪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방의 의인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바울도 겪은 고난이라면, 우리야 두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밤이 깊었다는 것은 낮이 가까웠다는 뜻으로, 고난의 쓴 물을 마셨다면 이제 단 물을 마실 때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 영원한 본향에서 하나님 품 안에 안식할 날이 있음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고통 중에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탄식과 눈물 중에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천사도 흠모할 만한 찬양이 우리 마음 속에 터져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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