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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주는 한결같으시고(시102:1-28)

by 똑똑이채널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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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만 특별히 고난을 당할 때 더더욱 기도해야만 합니다. 본문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입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기도이기 때문이죠.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 도움의 대상이 가족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람의 능력과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자리에 놓이게 될 때, 그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법이죠.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시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3-7절을 보면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표현합니다. 뼈가 새까맣게 숯 같이 타들어가고 있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그 마음이 풀같이 시들어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난 앞에 어찌 이겨낼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고난 앞에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기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죽음을 이긴 믿음의 사람들이 성경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한나, 18만5천명의 앗수르 대군의 위협 앞에 어쩔 수 없었던 히스기야,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도리어 감옥에 붙잡혀 들어간 바울, 그들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이란 오직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와 응답을 성경을 통해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시는 분임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시죠. 오늘 본문의 시인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낙심치 않고 소망 중에 간구하며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아버지를 무한신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5절-2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주는 영존하시겠고, 한결같으시고, 무궁하신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난과 고난을 겪을 때 목석과 돌부처 앞에 기도하고 절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아뢰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대상자를 바르게 알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분이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내다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을 보내 예수님을 모시고 오도록 했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 즉석에서 그 자리에 오지 않고, 3일째 예루살렘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베다니 곧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왔습니다.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녀들은 둘 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였고, 다른 유대인들에 비해 더욱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던 자매들이었죠. 그런데도 주님께서 4일째 되는 날 오셨을 때, 그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께서 여기 계셨다면 저희들의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는 첫마디 말이었죠. 바꿔 말하면 그 자매들은 똑같이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 앞에 주님께서 보여준 반응은 비통히 여기면서 눈물을 흘리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흘리신 두 번째 눈물이라고 했죠.

첫 번째는 감람산에 오르셔서 예루살렘 성 아래의 사람들을 굽어보시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을 치고 살아가지만 그 목숨이 안개와 같고 들의 풀과 같다는 것을 모른 채 자기 욕심을 좇아 살기에 바쁜 모습을 보시고서 우신 것이었죠.

그리고 두 번째로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그녀들과 함께 나사로의 죽음을 통곡하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서, 너무나도 안타까워 우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못 믿어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 부모의 심정으로 예수님께서 그녀들을 보시고서 우신 거죠. 바꿔 말해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일이 뒤틀리고 어긋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우리의 심령도 실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지 않겠나 싶은 것이죠. 그런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서, 예수님께서 또다시 비통해 하시면서 우시지 않을까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고난과 고통이 닥쳐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조폭들이 검은색양복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해도, 제가 검은색양복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 그런 모습으로 주일날 나타난다 해도, 그 내용과 의미마저 똑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런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통정리해 주시려는 큰 뜻이 있다고 했죠. 죽은 지 나흘 째 되는 나사로가 시체 가운데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인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11:25-26), 하는 것, 예수 그리스께서 부활의 주인이시자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에게 괴로움과 고통과 고난이 닥쳐 올 때 어떤 마음과 자세가 필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설령 본문의 시인처럼 숯 같이 타들어가고, 먹을 수도 없고, 마음이 풀처럼 시들어 버리는 처지에 놓일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의탁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시는 분이시고,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더 맡기고 신뢰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선하신 길을 열어 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인이 정말로 위대한 고백을 하고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11-12절에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무엇을 생각게 합니까? 나는 곧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나는 비천에 처해서 완전히 망가지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나의 어떤 형편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완전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19-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내 고통을 굽어보고 계시는데, 그런 나의 탄식을 들으셔서 나를 자유케 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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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의 일을 수행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실은 그것이 온전한 종의 자세이고, 또 온전한 주님의 자녀들이 지녀야 할 태도이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간에, 그 모든 일들을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 맡길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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