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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04편의 기자가 가지는 관점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연유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인이라는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이 스스로 취하시는 기쁨과 만족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만족하시며 스스로 완전하셔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31절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나의 행위나 선행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며, 그것으로 마치 세상이 변할 것이란 생각이 그것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시고, 그럴 필요도 없이, 만물과 만사를 당신의 뜻과 주관대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마치 내가 하나님께 도움이 되며, 내가 선행을 하거나 구제를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도움을 받아 세상을 그 만큼 거룩하게 이끄시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구원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시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구원과 은혜와 사랑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시는 것이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절망적인 인간들, 곧 소망이 없는 시체와 먼지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영생을 부여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 임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구원과 주권에 관한 한 우리로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에 대해 27-29절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dust)로 돌아가나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창조물들의 실존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면 받고 거두시면 잃게 되는 존재들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시기에 이 땅에서 호흡할 수 있고, 움직이면서 살 수 있습니다. 생명을 취하시면 우리는 흙에 묻히고, 궁극적으로 흙 곧 먼지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마태복음 13장 10-12절에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천국의 비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주시면 받게 되고, 안 주시면 못 받는 것입니다. 선택된 자는 받고, 그렇지 않는 자는 영원히 받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며 누구도 막을 수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빼앗으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죠.
그와 같은 우리 존재에 대해, 본문 29절은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그야말로 우리 인간을 먼지에 빗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창18:27절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을 바라본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dust)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소돔성을 멸망코자 하시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과 관련하여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하지 말라고 간구하면서 밝힌, 자기 자신의 실상에 관한 고백입니다. 티끌과 같은 존재, 먼지와 같은 존재인, 자신이 감히 하나님께 아뢴다면서, 한 고백입니다.
우리말 ‘티끌’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파르’가 실은 성경 곳곳에서 ‘흙’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창세2장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dust)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성령)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에서 ‘흙’이 곧 ‘아파르’ 먼지와 티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여기에서도 인간을 흙, 곧 ‘아파르’, 더 구체적으로 ‘먼지’와 같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언제라도 먼지처럼 날아갈 존재임을, 허망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망각한 인간들이 인생의 주도권을 잡고자 어떻게 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 앞에 자기 존재를 망각한 짓을 벌였지 않습니까? 이른바 선악과를 따 먹는 죄악 말입니다. 창세기 3장 4-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먼지와 같은 존재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사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악을 범한 꼴입니다. 그야말로 꼴값을 떤 꼴이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아담과 하와처럼 꼴값을 떠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늘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심령속에만 하나님의 선악과를 심을 수 있고, 그런 심령이라야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기독교가 어떻습니까? 더 많이 가지게 해 주고, 더 견고하게 지탱시켜 주고, 세상에서 더욱 강화시키는 모습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앞세워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큰 힘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마치 하나님 앞에 자격이 있고, 세상 사람들 앞에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소리치게 되죠. 하지만 그런 기독교의 모습은 헛된 욕망만 부추길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먼지에 불과한 모습일 뿐입니다.
먼지와 같은 기독교가 진정한 가치를 지닌 기독교, 생명을 지닌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을 지니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때에만 나는 죽고 예수로 채워지는 기독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24-25절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나의 옛 자아와 내 교만과 허영이 죽는 것, 권력화된 기독교, 세속 욕망으로 가득찬 기독교가 죽어야만 진정으로 주님이 살고 교회가 살 수 있는 것이죠. 내가 죽어야만 예수 그리스도가 살 수 있는 이치입니다. 진정으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걸 늘 기억하며 살 때, 우리는 진정 주님 안에서 죽고, 주님안에서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의 34절에서도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자신인지를 자각하는 자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은 자임을 고백하고, 나의 흙이요 먼지임을 자각하는 자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5절의 결론에서 이렇게 밝혀줍니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자신이 먼지요 흙임을 알지 못하는 악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렇기에 내가 먼지요 흙임을 아는 자만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나는 죽은 자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리고 계심을 내게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셔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사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이 땅에서 살아도 매일매일 천국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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