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시101:1-8절)

by 똑똑이채널 2022. 7. 8.
728x90
반응형
SMALL

시편 101편은 표제가 ‘다윗의 시’로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언제 이 시를 썼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의 내용을 관찰하면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쓴 시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왕위에 오르기 전에 다윗이 결단한 시라고 할 수 있겠죠. 왕이 되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결단 말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문법적으로 8개의 절마다 나오는 시제가 미완료형이고, 시의 내용이 통치자와 관련된 포부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 시는 다윗이 왕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의 시임과 동시에,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닌 시입니다. 이른바 ‘가장의 시’라는 게 그것입니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에게 필요한 원리의 시 말입니다. 더욱이 가정을 넘어 작은 회사나 기업의 경영진, 그리고 공동체의 리더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의 시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영국의 왕,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가 신임하는 공작, 조지 빌리어즈(George Villiers, 1592~1628) 경을 수상으로 임명을 했는데, 그에게 앞으로 신하를 등용할 때 이 시편을 원리로 삼으라고 충고해 줬다고 하죠. 그만큼 이 시에는 실제로 인사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6-7절 말씀이 그것이죠.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이 말씀을 본으로 삼아,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뿐만 아니라 귀족과 주교들 그리고 종교개혁가들도 이 시를 애송했다고 하죠. 그래서 다윗이 나라의 통치자로서 밝힌 포부를 보면, 거기에 흥미로운 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가 담겨 있다는 게 그것이죠. 다윗의 결단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자기 의지를 이 시를 통해서 밝힌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은 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입니다. 1절의 ‘정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를 번역한 것으로 성경에는 이 단어를 공의, 공평, 판결, 심판, 법도, 규례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정의로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데 그것은 사랑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하나님의 그 속성을 좇아 이스라엘 나라를 이끌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다윗은 왕이 되면 완전한 길을 주목하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인재를 등용할 때에도 완전한 길을 행하는 자를 선임하겠다고 의지를 밝히죠.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이 시에서 사용한 ‘완전한’이란 단어는 사실 2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타밈’인데 그 뜻은 “흠이 없고 진실하고 순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길’이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가 담겨 있는 길이죠. 그 길을 어떻게 인간이 완전히 주목하고 그 길을 똑바르게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윗이 말한 완전함이란 인간의 노력에 의해 가능한 완전 무결한 사람, 완전 무죄한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골로새서 1장 28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해 실수하고 허물이 있고, 넘어지는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해바라기처럼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을 바라보며 살려고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죠. 다윗이 그런 길을 좇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다윗처럼 그 길을 좇는 자들이 되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좇을 수 있겠습니까? 내 능력이나 내 방법이나 내 의지로는 부족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집니다. 완전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완전한 길인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에 헛된 길을 주목하는 사람과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다윗은 3절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이죠. 여기서 ‘비천한’의 의미는 ‘쓸모없음’, ‘파괴’, ‘악함’을 뜻합니다. 악하고 파괴적이고 쓸모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나 인터넷과 같은 매체에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면 결코 완전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길도 걸어갈 수가 없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온전하신 길, 그 길을 위해 비천한 것들, 쓸모 없는 허망한 것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비워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 때에만 4절에 언급한 ‘사악한 마음’이 떠날 수 있고, ‘악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결단한 것들이 나라의 통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과 가정에서도 적용돼야 하죠. 더욱이 믿음의 가장에게도 필요한 덕목이죠.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이나,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보다도, 다윗은 비천한 것, 악한 것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런 돈과 명예와 부귀를 원했다면, 아마도 하나님께 그런 것들을 구하지 않았겠습니까? 더욱이 세계만방에 그런 포부를 밝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이 가정을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비천한 것에 집중하지 않는 것, 범죄하지 않는 것, 악한 것, 쓸모없는 것에 시간도 정열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길을 좇아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도(正道)를 벗어난 자가 어떤 고난을 겪는지, 어떤 풍파를 겪는지, 이미 자신은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문 2절에 나온 말씀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라고 결단한 것과 7절에서 내 집 안에라고 언급한 것을 기초로 이 시를 ‘가장의 시편’이라고 부른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집’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말한 ‘내 집’은 비단 자신이 살던 집을 가리키는 게 아니죠. 오늘날에도 정치인들이 당원에게 또는 기업인들이 사원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집안 단속을 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집이란 단순한 집을 넘어, 그들의 정당 또는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모두가 연관된 것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말한 ‘내 집’이란 자신의 가정을 포함하여 넓게는 왕궁까지를 의미한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윗의 결단을 통해 가정의 중요성을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흔히 사람이 큰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 큰 조직체, 기업, 그리고 나라에서 일을 잘 해야 하는 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는 큰 직무을 맡아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을 기억해 볼 때 가정을 제대로 이끄는 리더가 어떤 조직체도, 국가도 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북팟

www.bookpod.co.kr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은 내 가정을 잘 이끌며, 내가 맡은 일이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모든 마음과 자세가 다윗이 결단했던 그 마음과 자세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한 길, 비천한 것이나 쓸모없는 것에 눈을 두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가정과 일터를 이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