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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기뻐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왕 되심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요청합니다. 1절에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은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며, 섬들은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을 가리킵니다. 그만큼 세상 모든 만민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찬양토록 고백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왜 그 분을 찬양해야 하는가, 2절에서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이 땅을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그 분을 기뻐하고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 지금 우리나라가 난리입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정의와 공평으로 나라를 다스린 게 아니라 무당의 굿판에 놀아났다는 것 때문에 백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만큼 한 나라도 정의와 공평으로 이끈다면 백성들도 좋아하는 것처럼, 이 땅의 온 우주를 정의와 공평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의와 공평으로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와 공평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는데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드러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와 공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주님의 다스리심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이 우선시 돼야 합니다.
과연 주님의 다스리심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악을 미워하고, 정직히 행하며, 빛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그것이 10-12절을 통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정직하게 행하고 산다고 고백하지만, 실상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일터에서 빛의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정의의 공평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죠. 자기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과 상치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을 입술로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게 아니라 그 삶을 통해 악을 미워하고, 정직하게 행하고, 삶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는 그 삶을 사는 것과는 다른 모습 말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는 것과는 달리, 온갖 자기 우상을 숭배하는 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7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조각한 신상이 무엇입니까? 허무한 것은 또 무엇입니까? ‘허무한 것’ 아래의 각주를 보니까, ‘우상으로’라고 돼 있습니다. 조각한 신상이나 허무한 것은 동일하게 우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일 오후 시간에 십계명에 대해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의 십계명 제 1계명은 ‘나는 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 그리고 2계명은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그리고 제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였죠. 그에 비해 우리 개신교 십계명은 살짝 다르다고 했죠. 개신교의 십계명은 제 1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제2계명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제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였죠.
제 2계명에 나오는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할 때, 그 ‘우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다른 신들의 조각상이나 탑이나 나무로 새긴 형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그래서 과격한 그리스도인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을 그런 우상으로 생각해서 불탑이나 불상을 쳐부수는 일도 행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우상, 출애굽기 20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상’이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발랐고,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 죽음의 재앙을 넘어가셨죠.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애굽에서 나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당도한 곳이 홍해 앞 비하히롯이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폭 32km의 홍해를 가르셔서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하셨고, 이후 시내광야에 당도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언약을 체결했죠. 그리고 곧장 언약백성에게 주실 율례와 법도를 모세를 통해 전해 주시고, 그 율례와 법도의 집약체는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 두 개를 모세에게 주기 위해 40일 동안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었죠. 모세가 그 두 돌판을 받아서 이제 시내산에서 내려오는데, 시내광야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불안에 떨면서, 자신들의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붙이들을 다 꺼내서 불에 넣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그 송아지를 일컬어 아론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다’하고 말했죠. 그만큼 400년 동안 그들이 애굽 땅에 살면서 보고 듣고 새겼던 것들이 황금숭배사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그들이 어찌 황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경배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꿔 말해 그들의 마음 속에 이미 황금이라는 탐욕이 신으로 자라잡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며 빚어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그렇게 황금송아지로 빚어낸다면, 어찌 그것이 하나님일 수 있겠습니까? 그 황금송아지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하시는 영이시고, 하나님은 어디에든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땅과 바다와 하늘의 주관자이심을 목격하면서도, 당장 눈에 보이는 황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하나님 우상’을 빚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이란 이방 신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우상’을 빚어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부터 이미 그런 하나님의 우상을 비워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을 가장 사랑하시분이라는 자기애적 우상,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만을 꼭 성공케 하신다는 성공주의 우상,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신다는 마음 속의 우상들을 말입니다.
그런 우상을 내 마음 속에 지니고 살면, 어찌 삶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겠으며, 어찌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악을 미워하며 정직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내 마음 속에 우상을 두고 사는 한, 결코 10-12절의 말씀을 온전히 이룰 수는 없게 되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 속의 하나님 우상을 끊임없이 비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심령 속에 주님의 말씀을 채워넣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기도자의 자세를 통해 매일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신실한 열매를 맺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 은총의 날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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