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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시79:1-13)

by 똑똑이채널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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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79편은 아삽이 쓴 시입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삽의 자손들이 쓴 시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상황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처참한 결과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빚어졌음을 고백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죠. 그래서 다시금 구원을 받아, 옛 영광과 번영을 회복시켜달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1-3절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바벨론 제국이 예루살렘을 처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더럽히고 그 안에 있는 성구들을 꺼내서 자기 나라로 약탈해 간 것이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었다는 말은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지고, 파괴돼, 길거리에 폐허처럼 쌓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특히 주님의 일을 맡은 제사장들, 아삽과 같은 찬양대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극심한 박해와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나라의 6.25한국전쟁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여기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헤아릴 수가 없죠. 특별히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는 230여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6.25 전쟁 3년 동안에 순교하신 분들이라고 하죠.

그렇게 비참한 실상 앞에 그 당시 국민들이 겪었던 정신적인 아픔은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6.25 전쟁 직후에 수많은 한국 전쟁 고아들이 전 세계 여러 나라로 입양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외국에 유학을 갈 때도 자기 힘으로 간 사람은 극히 드물었죠. 선교사님이나 정부 장학제도, 그리고 국제기구의 원조 자금으로 유학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여권조차 받기 힘든 때였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 그런 국민이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던 유대 민족들이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사실 망하는 것 자체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 이웃과 친척,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비방거리가 되고, 조롱을 받는 것이 가장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가까이 있는 분들을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품어줘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까운 교우들이면 더더욱 그 교우를 품고 격려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방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신앙인은 그럴 때면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죠. 5절에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원히 노여워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하심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까? 악인들은 잘되고, 힘이 넘치는데 왜 저에겐 침묵하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처참한 일들이 제게 일어난단 말입니까?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적들과 같은 원수들에게 복수를 해 달라고 요청하죠. 6-7절에 그 부분이 나옵니다.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10절에서는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2절에는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조금 유치한 것 같아도, 이런 간절함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고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벌을 칠 배나 갚아주시고, 우리 눈앞에서 복수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죠. 저 악독한 바벨론 제국이 우리나라를 유린하고 성전의 성물들을 다 약탈해갔는데, 저들을 보복해주시고, 멸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통이라면 우리의 마음에는 그런 기도가 터져 나오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은 저절로 그런 기도가 나올 수 있죠. 오늘 본문처럼 아삽 자손이 지금 그런 기도를 드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내 생활 속에 적용해야 하는 걸까요?

그 중요한 지침은 복수하는 게 내게 달려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망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요, 상대방이 쓰러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관이라는 점입니다. 만일 아삽이나 아삽의 자손이 예루살렘이 멸망당했을 때, 그들이 바벨론을 멸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께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저 바벨론 제국보다 그래도 착하고 선한 유대 민족들인데, 왜 저희들이 저들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야 하는 것입니까? 저들을 멸해 주시는 게 공의의 하나님 아니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죠.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답이 무엇입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맡기고, 너는 너에게 주어진 삶에 신실하게 감당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살면 불의한 자들에게 그 끝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밝혀줍니다.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8:20) 그래서 우리 자신들도 악한 자들, 포악한 자들, 죄 속에 살아가는 자들을 우리가 벌해달라고 기도하고,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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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 함께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에 처할 때, 원수 같은 사람을 심판하고 벌해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이죠.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내 조상과의 관계속에서 잘못 행한 것은 없는지, 먼저 살피는 것 말이죠. 아삽과 아삽의 자손이 바로 그 점을 중요시여겼습니다. 본문 8절에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왜 우리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는가? 그것은 바벨론이 악한 면도 없지 않지만,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결과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죄악 자기 죄처럼 회개하며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 한 가지 더 간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본문 9절에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이른바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족하지만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고, 건져주시라고 간구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의 회복을 간구하며, 마지막으로 외치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에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절망의 한 복판에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결코 내팽개치지 않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실 것을 소망하면서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소망으로 오늘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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