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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유다와 시온산을 택하시며(시78:40-72)

by 똑똑이채널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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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시편 78편은 이 시를 쓴 시인이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구제불능이었는지, 얼마나 패역하며 악한 길을 걸었는지를 폭로하고 있는 시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그 후손들이 바른 길을 살도록 촉구하는 역설적인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읽었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3-17절입니다.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 또 32절에서는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무엇을 고발하고 있습니까?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는 것, 불평하고 원망했다는 것, 광야에서 어찌 식탁을 베풀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인지,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긍휼하심에 대해 의심하고 불순종했다는 것이죠.

 

오늘의 본문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40-42절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그야말로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평하고 불순종하는 삶, 구원의 손길을 의심하며 살았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56-58절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저들을 압제에서 구해내시고,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며,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리시며, 고기와 새를 바다의 모래같이 내리셔서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범죄하며 여전히 패역하며,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며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기적과 이적을 베푸셔서 현재의 염려와 문제가 다 해결되면,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는 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만 봐도 훤히 알 수 있잖습니까? 저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홍해를 건넌 자들이고, 광야의 생수를 공급받고,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자들입니다. 그런 기적과 이적을 체험한 그들이 과연 순종과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거부하고, 미워하고, 고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도 실은 우리 자신이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 자신들이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몇 가지 종교적 행위만 할 뿐이지 세상과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일에만 경건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그 외에는 세상과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런 이중성을 지닙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삶의 영적제사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요한복음 12장 37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요한복음 1-12장까지의 예수님의 공적인 가르침과 행함의 결론은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을 보여주고 기적과 이사를 행하여도, 그것도 예수님이 직접 하셨어도 믿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의 신앙과 과연 유대인들과 차이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더욱이 요한복음 12장 47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분명히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내 말을 듣고 지켜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기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죠.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고 예수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주님의 말을 잘 지켜서 자격을 취득하여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6절에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강조가 어디에 있습니까? 잘 보시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갈 수 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기적도, 이사도, 자기의 노력도 애씀도, 선행도, 구제도, 선교도, 헌금도, 최선을 다하는 예배도, 새벽기도도, 그 어느 것도 행위로 가능한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강조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고 이적을 맛보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맛보았어도,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출중한 것 같고, 우리의 의지가 뛰어난 것 같아도, 실은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인간 내부에 있는 어떤 원인도 선을 창조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고 100%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의 속사람을 완전히 재창조하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바꿔주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서 고쳐내셔야만 가능하죠. 내가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68-69절입니다.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유다지파란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유다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69절의 ‘성소’ 역시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죠. 그러니까 이 구제불능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사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구원의 문제를 하나님이 손수, 직접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성소와 관련하여,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소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0장 19-20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성소의 휘장, 즉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성소에 들어갈 때 죄 사함을 위해 드리는 제물의 피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산 제물이 되어 자신의 피를, 제사를 위한 피로 내놓으셨고, 또한 성소 휘장인 자신의 육체를 찢어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새 길을 내어주셨죠.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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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우리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우리의 공로나 노력이나 행위를 자랑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아무런 선행이나 구제나 하나님 앞에 헌신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게 아니죠. 그런 선행과 구제와 헌신조차도 주님의 긍휼함 속에 있을 때에 온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저와 여러분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피값 없이는 우리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욱 감사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임을 잊지 않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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