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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야긴이라 하고 보아스라 하였으며(왕상7:1-51)

by 똑똑이채널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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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열왕기상 6장에서는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둘째 달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고, 7년 동안, 정확히 말해 7년 6개월에 걸쳐 건축했습니다. 성전 건축이 끝나자, 솔로몬은 자신의 궁전을 건축했습니다. 무려 13년이나 걸렸죠. 그렇다면 솔로몬은 왕으로 재위한 기간이 40년이었는데, 그 절반가량인 20년 동안을 성전 건축과 궁전을 건축하는 일에 쏟아 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궁을 건축하는 오늘 본문 1절이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하고 말씀하는데, 이것의 영어 NIV번역본이나 KJV번역본에는 ‘그러나’가 들어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7년 6개월이 걸렸는데, 궁전을 건축하는데는 13년 곧 두 배나 더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2절에 보면 궁전의 길이가 백 규빗, 너비가 오십 규빗, 높이 삼십 규빗입니다. 높이만 성전과 같지 나머지 길이나 너비는 성전의 규모보다 2배 가량 큰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를 한 면도 그렇습니다. 최고의 건축자재인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용했는데, 2절에 나오는 ‘레바논 나무’는 원어로 보면 ‘레바논 숲의 궁’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한 건축자재료 백향목을 사용한 게 아니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백향목을 사용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손쉽게 말해 솔로몬의 궁전은 백향목으로 온통 도배를 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향기나는 편백나무로 온 안팎을 도배했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본문 8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이른바 자신이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해 똑같은 궁전을 지어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규모가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엄청났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 세종시에 건축하고 있는 총리공관에 대한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지방분권화 취지에 맞게 수수하게 건축하겠다고 했던 총리공관을 2만 제곱미터의 대지에 약 3백억원의 예산으로 추진했는데, 그 무렵 보안상의 문제를 내세워 추가로 만 제곱미터를 더 늘려서 짓겠다고 했고, 그것도 국회 예산 심의도 받지 않고 67억원의 다른 사업비를 끌어다가 거대한 공관을 건축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총리가 가끔 서울에 들를 때 머무는 현재의 삼청동 공관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서민들이 어떤 처지에 몰려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국가 지도자들이 이렇게 국민세금을 펑펑 쓰고 있는 모습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솔로몬의 왕궁에 견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성전과 비교했을 때 그 왕궁의 규모는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왕궁은 단순히 왕이 사는 공간만이 아니라 7절에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하는 말씀처럼 재판하는 공간도 필요하고 국정운영하는 많은 인력도 함께 해야 하죠. 그러니 성전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야만 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을 위해 따로 지은 궁궐에 대해서도 역대하8장 11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역대하 8:11) 솔로몬이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에게 왕궁을 지어준 것은 결코 왕으로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보다는 이방인인 바로의 딸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죠. 그녀로 인해 하나님을 저버린 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결코 더럽히지 않으려는 뜻에서 그렇게 왕비의 궁전을 지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이 비록 왕비를 위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출발점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지만, 그의 국정 후반기에는 타락의 길로 들어선 단초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단일집회로는 제일로 많이 모일 수 있는 예배당을 보유한 교회들, 그것도 화려하고 멋진 건축술을 자랑하는 교회들이 많지 않습니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잠실의 임마누엘교회, 또 명성교회 등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큰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건축비가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 교회도 없지 않죠. 31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하 7층, 지상 17층 규모의 메가톤급 교회를 지은 사랑의 교회가 그랬었죠. 목포에도 엄청나게 무리해서 지은 ‘꿈○ 교회’도 있죠. 60억원이나 들었다는 소문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공사비를 들여서 예배당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예배당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 속에 함께 하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예배 인원이 많으면 그에 맞게 1부, 2부, 3부 4부로 늘리면 될텐데, 그 교회 목사의 마음속에는 엄청나게 많이 모아서 예배드리는 걸 자랑거리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예배석 규모로 건물을 짓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그런 예배당을 짓고 난 뒤죠.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솔로몬이 재위 40년 동안의 절반 가량을 성전과 왕궁을 짓는데 쏟아부었고, 나머지 20년간을 통치하다가 그 인생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그 나머지 인생 20년이 어땠느냐는 것입니다. 그 인생이 도리어 수 많은 여인들의 치마폭에 빠져 방탕과 우상숭배에 젖어든 삶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성전만 또 왕궁만 으리으리하게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 규모는 그 수준에 맞게 지으면 될 일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후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순종하며 사느냐, 아니면 자신이 우상화가 되느냐, 하는 것이죠.

 

물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또 왕궁을 건축한 그 왕정 전반부에는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왕궁을 건축한 이후에, 성전 내부의 제사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드는데, 본문 13절의 말씀처럼 두로에 사는 대장장이 히람을 데리고 와서 그 모든 공사에 심혈을 기울여 만들게 했죠. 이때 솔로몬이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운 두 기둥에 큰 의미를 두면서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야기간과 보아스는 단순한 두 기둥이 아닙니다. ‘야긴’(יָכִין)이란 히브리어 뜻은 ‘그가 세우신다’(He will establish)는 의미이고, 보아스(בֹּעַז)란 말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fleetness, Ruth 2:1)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면서 무엇을 생각하면서 두 기둥을 세웠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과 자녀들과 나라와 백성들도 세워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그 나라와 백성들을 온전히 이끌 능력도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고백이죠. 그런 신앙고백으로 그 기둥 둘을 세웠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죠. 그 이후에 솔로몬은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한 채 이방 국가들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면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죠. 많은 교회의 후유증이 언제 나타납니까? 교회 예배당을 멋지고 화려하게 짓고 임직자들을 세운 그 이후죠. 왜요? 그 일로 목회자도 교만해지고, 임직받은 분들도 교만해지기 때문이죠. 예배당 건물보다 높으신 그 하나님, 임직보다 더 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인간적인 능력만을 과시하는 경향성 때문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너의 심령 속에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느냐? 성령님께서 지금 묻지 않으시겠습니까? 네가 일생에 어떤 예배당을 짓고, 어떤 공적을 세워도, 그 후에도 오직 하나님의 율레와 법도를 겸손하게 받드는 긍휼의 심령으로 살기를 바란다, 하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그와 같은 주님의 헤쎄드의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본문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과 이방 두로에 살던 히람을 하나님의 도구로 세우신 분이 바로 야긴의 하나님이시오,

그들에게 능력을 주신 분도 보아스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솔로몬과 히람의 하나님이 바로 저희들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저희들이 이 땅에서 어떤 예배당을 짓고 어떤 공적을 세워도, 늘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인생과 가정과 자녀들과 일터와 사업장을 세우실 분은 오직 야긴의 하나님이요,

그 능력이 보아스의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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