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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상

칠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6:1-38)

by 똑똑이채널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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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우리는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솔로몬과 두로 왕 히람의 관계를 엮어 준 다윗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윗의 신앙열정과 성전건축 열정이 그 아들 솔로몬과 히람 왕에게까지 전이 된 것이었죠. 부모가 심은 일을 자식의 대에 열매를 거두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재료를 가지고 성전을 완공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성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사야 66장 1절에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사도행전 7장 47-48절에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사도행전 17장 24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후서 6장 16절은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그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지어놓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 어느 곳이든 계신 분이요,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결코 제한당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 말이죠. 그럼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심령 , 우리들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몸이 바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건물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기 때문에 화려한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짓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짜 성전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님께서는 왜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허락하셨던 것일까요?

우선 본문 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둘째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성전건축이 시작된 시점이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략 B.C.967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480년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할 때부터 지금 솔로몬 시대까지 굳이 붙박이 성전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때부터 이때가 여호와의 법궤는 어디에 안치돼 있었습니까? 성막에 있었죠. 다윗도 그래서 자기 자신은 화려한 왕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법궤가 성막 곧 텐트 안에 거하고 있는 게 정말로 송구해서 실은 성전을 짓고 싶어했던 것 아닙니까? 물론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걸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7장 6-13절에서, 그리고 역대상 22장 6-8절에서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무엘하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해 주신 부분이 기록돼 있는데 반해 역대상에서는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왜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막으셨는지, 자기 생각을 밝히고 있다는 그 차이입니다. 사무엘하서에서는 광야생활부터 다윗 시대까지 언제 내가 성전 건축을 원한 적이 있었느냐, 하고 다윗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역대상에서는 다윗이 스스로 깨닫기를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를테면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했던 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때 성전건축을 막으신 것이다, 하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 생각을 피력한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22장 9절에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된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온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온순한 사람’이라는 히브리어 ‘메누아’의 뜻이 중요합니다. ‘안식처가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위해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능력이 있고, 그가 흠이 없고, 그가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지닌 의미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안, 곧 샬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전건축도 그와 똑같은 격입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누구나 찾아와 쉴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일은 반드시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는 일은 반드시 사람을 위한 집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이 안식처의 의미로서 성전을 짓게 되었다면, 그 성전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구나 와서 안식처럼 삼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오늘날의 의미에서 적용한다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죄에 사로잡혀 죄의 종노릇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장소로서의 예배처소, 죄를 사함 받는 은총을 경험하는 장소로서의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이 나도 그들 중에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가정 처소도, 비늘하우스도, 깡통창고 안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면 그 어느 곳이든 예배처소요 교회당이 되는 것이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말씀이 성전 완공 후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규모는 본문 2절을 보면 길이가 육십규빗(약 30m), 너비가 이십규빗(약10m), 높이가 삽십규빗(약15m)입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 만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모두 금으로 입혀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은 본문 27-38절을 보면 7년에 걸쳐 완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외형에 있는 게 아닙니다. 성전건축을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우리가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 11-1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에게 성전의 외형이나 화려함에 대해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며 그 모든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절대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시죠.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솔로몬뿐만 아니라 그 일에 참여한 일꾼들 감독관들은 물론이요,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이후에 성전만 자랑한 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무시하며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성전 안에 계신다고 착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났고,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했고, 남 유다도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성전 그 자체에만 몰두한 체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성전건물 자체에 주술적인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성전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에 나와 제사하듯,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그 모습을 삶속에 지키며 순종하는가, 바로 그것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때에만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참된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과 함께,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사람의 마음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더 크고 더 화려한 건물을 지을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원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신 이유를 잊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나 자신이 먼저 성전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화려한 성전을 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비록 가정집이라해도, 비늘하우스라해도, 깡통창고라 해도, 그 어느 곳이든

주님의 말씀을 모시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모시는 심령들 곧 참된 성전된 이들이 모인 교회라면,

그곳이야말로 참된 예배당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참된 성전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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