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행21:7-9)

by 똑똑이채널 2022. 5. 11.
728x90
반응형
SMALL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hwp
0.18MB

(설교열기)(논지)지난 주 수요일날 제 친구의 죽음에 관한 말씀을 드렸었죠.

너무나 순진무구한 친구였고, 세상에 속아 너무나 힘든 삶을 산 친구였죠.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기도 합니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하고 말입니다.

그 말씀에 비추면 조금은 어리석은 세상을 살았나 싶기도 합니다.

 

더욱이 제 친구가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은 기도원 원장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친구의 여동생과 통화하다가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빠가 10여년 전에 기도원 원장을 만났는데, 그 원장은 우울증약도 먹지 말고 관 속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고 하죠.

그때 허리를 다쳤고, 우울증 약도 먹지 않고, 햇빛을 보고 걷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여동생으로부터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제게 전화해서 이것 저것 여러 가지 것을 묻던 친구였죠.

신앙적인 이야기라든지, 건강이나 세상 흐름들에 대해서도 말이죠.

그러면 저는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서 권면해줬죠.

 

그런데 저와 통화하면서 허리를 다친 그 과정에 대해서, 다시 말해 그 기도원 원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당장에라도 기도원 원장을 좇아가서 한 마디 쏘아부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욱이 그 친구에게 절대로 그 기도원 원장과 교제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권면했겠죠.

 

(깨달음)왜 제가 기도원 원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제 친구 여동생이 하는 말이 아버지 장례식장에도 어느 기도원 원장이 빨간 안경에 빨간 옷을 입고 와서 조문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목회자도 상식과 윤리를 지키면 참 좋을텐데, 안타깝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친구를 영적으로 컨트롤했던 기도원 원장이 여자 목사였다는 점입니다.

제 친구에게 우울증 약도 먹지 말고 관 속에 들어가 누우라고 했던 그 원장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여동생이 너무 속상하고 원통해서 저와 한 시간 가량 통화를 했는데, 자신의 신앙생활 이야기도 했죠.

자신이 순천에 살 때 갑상선 암 수술을 했는데, 그때 약도 복용하고 우울하기도 해서 산책을 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 산책길에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 소개받은 교회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상가 개척교회였던 것이죠.

그때 처음 교회에 발을 디뎠는데, 그곳에서 어느 여자 집사님이 자신과 다른 분을 이간질시키는 일로 너무나 힘들었다고 하죠.

 

그런 상처로 인해서 교회에 발걸음을 끊고 있지만 주님은 마음 속에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권면해줬죠.

교회는 목회자를 비롯해 모두가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어느 교회나 그런 분이 없을 수 없다

이제는 광주에서 큰 교회에 혼자 조용히 나가 예배를 드리고, 점점 주님을 깊이 만났으면 좋겠다

 

(적용)왜 제가 여자 기도원 원장이나 이간질 시키는 여자 집사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것이겠습니까?

한국교회의 절대다수가 실은 여성교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해 온 비결은 여성 교인들의 열심과 헌신이 중심이 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상한 신비주의와 환상만을 좇는 여성 교인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그 기도원 원장 여자 목사도 그렇고, 그 여자 집사님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더욱이 주일날 말씀드린 것처럼, 가부장제속에서 딸은 제쳐놓고 아들만 챙기는 일로 상처받은 여성 성도들이 많다는 거죠.

그것을 말씀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교회 안에서 성인아기 기질을 곧잘 드러내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죠.

제 친구 여동생을 이간질한 여집사님도 바로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의 여성 교인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헤어진 후에 곧바로 고스, 로도스, 그리고 바다라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바다라에서 지중해를 건너가는 큰 상선으로 갈아타고 하루 종일 구브로를 바라보면서 급기야 두로 항에 정박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일행과 함께 두로의 제자들을 찾아가 1주일간 교제하면서 선교현장에 있던 일로 설교하고 또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두로에서 배를 타고 떠나려 할 때 두로의 제자들은 처자를 데리고 다 항구로 나와 바울을 배웅했었죠.

 

두로의 제자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은 신념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모습을 아내와 자식들에게까지 보여주고자 함이었죠.

그만큼 두로의 제자들은 온 가족 식구들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이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고 도전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배를 타고 최종 정박지인 돌레마이에 당도했습니다.

돌레마이는 두로에서 남쪽으로 30km떨어진 곳인데, 그곳에서 도보로 가이사랴에 당도해서 예루살렘으로 갈 생각이었죠.

돌레마이에서 가이샤라까지는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인데, 바울 일행은 이틀에걸려 가이샤라에 당도한 셈이었습니다.

 

사실 가이샤라는 지중해 해안가에 위치한 곳으로 헤롯 대왕이 건설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의 도시 이름을 가이샤라로 명명한 것은 로마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로마 총독이 그곳에 거주하는 곳이었고, 그만큼 가이샤라는 유대 지방의 정치적인 수도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에 당도해서 누구의 집에 들어갔습니까?

지난 수요일 날 살펴본 것처럼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갔죠.

전도자 빌립은 실은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최초의 7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빌립 집사는 대활약을 한 집사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예루살렘을 넘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그때 사마리아 땅을 향해 나아가 주님의 복음을 전한 인물이 바로 그 빌립 집사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빌립 집사의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빌립 집사는 성령에 이끌려 사마리아에서 70km 떨어진 유대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마차를 타고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했고, 길 옆에 물가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만큼 빌립집사는 사도들도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모두 감당했던 입지전적인 집사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빌립 집사의 행보를 보여주는 사도행전 8장의 끝은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8:39-40)

 

빌립 집사는 그때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영에 이끌려 헤어진 후에 아소도를 거쳐 가이사랴에 당도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빌립 집사를 인도했던 것이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대로 빌립 집사는 순종해서 가이사랴에 당도한 것이었죠.

 

그런데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토록 열심이었고 헌신적이었고, 성령님께서 전폭적으로 내어맡긴 빌립집사였는데 지금은 기이사랴엘 눌러 앉은 모습니다.

그것도 바울 일행과 아가보라는 대예언자가 와서 함께 묵을만한 숙소가 있는 대저택을 소유한 빌립집사였습니다.

 

(본문)그런데 바울 일행이 빌립 집사의 대저택에 들어갔을 때, 그 빌립 집사의 자녀들을 소개하는 말씀이 본문 9절에 나옵니다.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깨달음)빌립 집사에게 네 명의 딸이 있었는데, 모두 예언의 은사를 지닌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이었다는 뜻입니다.

빌립 집사의 네 딸들은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하는 여인들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여 조망해주는 자들 아닙니까?

그것을 바로 빌립 집사의 네 딸이 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빌립 집사의 네 딸은 가이사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치 한국교회의 7-80%가 여성 성도들의 영향력 하에 세워진 교회와 같은 모습처럼, 빌립 집사의 네 딸도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 삶 속에 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균형과 조화를 잃게 되면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올곧게 믿는 자들까지 엉뚱한 길로 접어들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죠.

마치 제 친구에게 상처를 준 기도원 원장 여자 목사나 또 제 친구의 여동생이 다닌 교회의 집사님이 이간질시킨 경우처럼 말이죠.

 

(적용)과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 집사의 네 딸은 달랐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네 딸이 아무리 대단한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이사랴에서 지대한 영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지라도, 그녀들도 바울이 가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지금 빌립 집사의 집에 찾아온 대예언자, 예루살렘의 대흉년을 예언하여 맞힌 아가보라는 대예언자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더욱이 빌립 집사의 네 딸들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길목을 막아서는데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죠?

성령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환란과 결박을 당할 것을 말씀하지만 그 길목을 통해 로마에까지 나가 주의 복음을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가보도, 빌립 집사의 네 딸들도, 그 깊으신 성령님의 뜻을 내다보지 못한 채 지금 당장의 피해만 생각한 것이었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교회가 세워지는 공로가 여성 성도들에게 있지만 바른 분별력과 균형과 조화를 지닌 은혜안에 거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예전에 기도원 원장의 신유나 예언의 은사라면 영적인 컨트롤로 조정당하지 않았더냐?”

한국교회가 여성 성도들의 헌신과 열심 때문에 세워진 교회이지 않더냐?”

하지만 예언의 은사를 받은 여성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이 말씀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놓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더냐?”

빌립 집사의 네 딸들도 당시에 여성 목회자와 다를바 없었는데, 그녀들도 바울이 가야 할 길에 방해꾼 역할을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영적인 균형과 조화를 놓치지 않도록 늘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상황을 분별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신유나 예언을 받았다는 여성 목회자들, 영적으로 이간질시키는 여집사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느냐?”

늘 말씀의 중심을 잡고 있어야 영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교회생활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마귀 사탄은 한국교회의 지대한 공로가 있는 여성 성도들을 흔들어대고 있으니, 너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바란다.”

 

(찬양)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22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www.aladin.co.kr

(발췌)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 중인 복수국적자는 4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국적을 내세워 합법적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될 이스라엘 청년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것이죠.

 

이스라엘 현역 군인의 수는 우리나라 군인 수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복수국적 군인은 무려 130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군인의 현주소라면 우리나라 군인은 어떨까요?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20141월부터 201510월까지 110개월 동안 복수 국적을 지닌 한국인 가운데 미국 국적을 선택한 남성은 1,704명라고 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 국적을 선택한 남성은 30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왜 이스라엘의 복수 국적 청년들은 무려 130배에 달하는 이스라엘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겠습니까?

왜 우리나라와 미국 국적을 지닌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천명이 넘는 이들이 미국 국적을 택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청년들의 의식도 문제겠지만 그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어머니들이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과 기도를 한다는 여성 성도들도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여성 성도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심지어 예언을 하고 은사를 지닌 기도원 원장을 좇아 다닌다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여성들이 한국교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오늘 본문의 빌립 집사의 네 딸들과 전혀 다르지 않는 그릇된 영향력만 행사할 뿐이라는 점입니다.

 

(내음성)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기도원 원장이나 신유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여성 목회자나 집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끔뻑 넘어갔어요.”
한국교회의 발전에 여성 성도들이 지대한 헌신과 열성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 이면의 불합리한 모습도 많았어요.”
빌립 집사의 네 딸들처럼 한국교회 여성 성도들이 자기 아들만큼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이중국적을 취득하여 미국 시민권자로 선택하게 하는 일들도 많았어요.”

주님, 말씀과 기도 안에서 바른 분별력을 갖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하게 해 주세요.”

 

(찬양)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16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www.aladin.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의 7-80 이상의 공로는 여성 성도들의 지대한 헌신과 열심히 컸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영적인 분별력을 놓친 채 균형과 조화를 잃어버린 여성 기도원 원장과 이간하는 여성 집사들도 없지 않았죠.

 

오늘 우리교회는 신유나 예언의 은사에 너무 빠지거나 집착하지 마시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스스로 영적인 분별력을 세워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영적인 균형감과 조화를 세워가면서 성도들을 이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