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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그 처자와 함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행21:4-6)

by 똑똑이채널 202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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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자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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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목사님인데, 그 분이 20대 말기의 청년 시절에 교회에서 겪은 일화입니다.

그때도 그는 선데이크리스천이었지만 가끔씩 새벽기도회와 금요기도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금요기도회 날에 담임목사님이 옆 사람의 기도제목을 듣고 서로 기도해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 옆에 앉아서 있던 부부는 남편이 대기업의 임원이었고,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존경을 받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날 금요일 밤에 그 부부가 그 20대 말기의 청년에게 내 놓은 기도제목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기 부부의 아들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제목을 그 청년에게 내 놓은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부부의 아들은 신체검사에서 체중미달로 불합격 판정을 받기 위해 매일 같이 금식하다시피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런 기도 제목을 듣게 된 그 20대 말기의 청년은 어떻게 했을까요?

대기업 임원으로서 교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그분들의 기도제목대로 그 청년이 기도를 해 줬을까요?

그 당시 그 청년은 비록 선데이크리스천이라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기도제목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만약 그런 내용을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는 것은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 아들은 신체검사에서 연이어 체중미달 판정을 받고 군면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대기업 임원 부부는 자신들의 작정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면서 그 청년의 손을 잡고 기뻐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 청년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군면제를 받은 것은 불의한 시도의 결과물일 뿐, 하나님의 응답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깨달음)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이제는 20대 말의 청년이 목회자가 된 상태죠.

그때 듣게 된 소식은 그것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군면제를 받은 뒤에 남들보다 3년 빨리 사회에 진출한 그 아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가정을 일구긴 했지만 홀로 남은 어머니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외아들의 군입대 면제를 위해 40일 작정기도를 하면서 외아들에게 심어준 그 이기심의 독소가 결국 그 어머니에게까지 돌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자식은 그 부모가 한 대로 보고 배우고 본받기 때문에 말입니다.

 

(적용)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자신이라고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자식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피할 길을 위해 기도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어려운 일일수록 더 성실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식도 그 모습을 닮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 자식은 내가 한 대로, 내가 보여준 대로, 내가 심은 대로, 그대로 본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바울과 그 일행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어렵게 작별을 했습니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들을 가까스레 떼어내고서야 배를 타고 헤어질 수 있었죠.

 

그때 바울 일행은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고스’, ‘로도스’, 그리고 바다라에 이르렀습니다.

밀레도에서 남쪽으로 70km떨어진 고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스에는 유명한 의학교가 잇었고, 좋은 의사로부터 육체의 질병을 고치기 원하는 병자들이 그곳 고스를 찾았죠.

육체의 지병이 있던 바울도 고스에서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주님의 복음을 위해 곧장 떠났습니다.

 

그 후에 바울과 그 일행은 고스에서 동남쪽으로 80km 떨어진 로도스섬에 도착했습니다.

로도스는 일조량이 풍부해서 가는 곳마다 화려한 장미꽃이 눈부시게 피는 섬이었고, 수사학과 웅변으로 유명한 대학도 있었죠.

바울은 그곳에서 휴양을 하면서 웅변술과 수사학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도스섬에 머물지 않고 곧장 뱃머리를 돌렸는데, 오직 주님의 복음을 위한 사명 때문이었죠.

 

그래서 바울은 그 일행과 함께 로도스에서 동쪽으로 85km 지점에 위치한 소아시아 반도 남쪽 항구 바다라로 갔습니다.

당시 무역 항구도시였던 바다라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인해 계절에 상관없이 수백척의 상선들이 드나드는 해상교통 요충지였죠.

바로 그곳에서 바울은 눌러살면서 천막을 만들어 판다면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노후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곳에서도 머물지 않고 곧장 지중해를 가로질러 팔레스타인의 베니게로 가는 상선을 갈아났습니다.

 

그때 바울과 그 일행이 탄 그 상선은 지중해 물결을 가르며 구브로 섬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구브로 섬은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200km 넘게 뻗은 섬인데, 바울 일행은 그날 하루 종일 보면서 지나가야 했습니다.

사실 구브로 섬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섬이었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그 섬이 나타났다, ‘다가왔다고 기록했죠.

 

(깨달음)과연 그 뭘까요?

이때 바울이 구브로 섬을 바라본 것은 1차 선교여행 때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한 때로부터 13년이 지난 것입니다.

13년 전 구브로 섬에 들렀을 때 바울은 사울 왕의 후손임을 자처하던 사울이란 이름에서 작다는 뜻의 바울로 개명된 후였죠.

더욱이 구브로 섬은 1차 선교여행 때 처음 들린 곳이라 부족함 투성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도 주님께서 당신의 손길로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셨죠.

 

지금 그 구브로 섬이 다시금 나타난 것, 그 섬이 바울에게 다가온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13년 전 처음 선교지로 나설 때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그때도 주님의 손길로 인도해주셨다는 시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것 말이죠.

13년이 지난 지금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도 주님의 손길로 지켜주실 비춰주는 화면 말입니다.

 

(적용)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이 땅에 100년 안팎의 삶의 살지만 그 삶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명을 이루는 삶이지 않습니까?

처음 주님께서 내게 찾아와 나를 구원해주시고 성령을 보내서 내 안에 내주하시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죠.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첫사랑의 감격을 재확인시켜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죠?

주님께서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너에게 찾아와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격려해주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고 너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기 위함이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로 때로 힘들고 지칠 때도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찾아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재확인시켜 주실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양)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주님은 여인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여인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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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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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후에 일어난 일인데, 바울 일행이 지중해를 지나 베니게의 두로에 정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4-6)

 

(깨달음)두로 항에서 내린 바울과 그 일행은 이레 곧 1주일간 두로 항 근처에서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1주일간 머문 이유는 그들이 탄 배가 1주일 이상 정박한 후에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 항구에 당도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1주일간 바울과 그 일행이 한 게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 1주일간 제자들곧 주님의 제자들을 찾아가 거기서 머물렀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때 만난 주님의 제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마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를 방문해서 귀신 들린 소녀의 귀신을 쫓아내주신 일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두로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제자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더욱이 사도행전 153절을 보면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두로에 들러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펼쳐보여주셨는지, 1차 복음전도 현장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 것이었죠.

 

그러니 바울이 일행과 함께 두로의 제자들에게 찾아간 것은 약 10년 만에 다시금 만난 것임을 알 수 있죠.

그러니 그 제자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또 기뻐했을지 알 수 있겠죠.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사람이라면 10년 후에도 정말로 기쁨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죠.

반대로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아픔과 해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10년 후에 만나도 결코 웃을 수가 없는 사이가 되겠죠.

10년 후의 모습은 나 자신이 지금 관계맺고 살아가는 모습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적용)중요한 것은 이때 바울이 1주일간 머물 때 무엇을 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두로의 제자들에게 2차와 3차 전도여행때 있었던 일들, 복음 증거의 생생한 역사를 전해줬겠죠.

그를 통해 두로의 제자들도 더욱더 믿음으로 주님을 본받아 살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때 두로의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에게 말하는 게 있죠.

바울 사도여, 성령님께서 지금 감동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예루살렘에 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여, 그런 가시 마세요.”

 

그러나 바울은 이미 드로아에서 앗소로 걸어올 때 성령님의 확고한 음성을 들었고, 끊임없는 성령님의 격려를 받았죠.

그래서 밀레도의 장로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할때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울이었죠.

그러니 두로의 제자들이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바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막지 않았죠.

 

그렇게 여러 날 동안 지내다가 이제 배를 타고 떠나가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두로의 제자들만 바울 일행을 전송하는 게 아니라 처자가 함께바닷가에서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깨달음)왜 두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처자아내와 자식들까지 대동해서바울 일행을 전송하러 나오도록 했겠습니까?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그 마지막 모습을 자신들의 아내와 자식들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아내들과 자식들까지도 바울이 좇았던 주님을 위한 삶을 온 가족 식구들이 닮고자 한 것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을 본받아 사는 삶이 자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의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믿음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어떤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겠느냐?”

교회에서 존경받는 대기업 임원 부모가 자식의 군면제를 놓고 20일작정기도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일이겠느냐?”

선데이크리스천으로 살던 20대 말의 청년이 느끼기에도 무당 앞에 굿을 하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바울이 두로의 주님의 제자들에게 1차때 있었던 일을 나눈 후에 10년의 세월이 흘러 만났을 때 기뻐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순수한 그 복음의 열정,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는 바울의 모습 앞에 두로의 제자들이 감동을 받지 않았더냐?”

더욱이 두로의 제자들은 자기 처와 자식들까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함께 인사하며 함께 나누지 않았더냐?”

오늘 네가 심은 그대로, 오늘 네가 뿌린 그대로 너의 자녀들이 선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도록 해라.”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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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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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로의 제자들이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바울을 전송하면서 집에 돌아와 무슨 말들을 나눴을까요?

 

여보, 바울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데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내가 주님의 제자로 살면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는 고사하고 아직도 이 땅의 것에만 너무 집착한 게 부끄러웠어요.”

이제부터라도 바울 선생처럼 나도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한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살기로 다짐했어요.”

 

그런 남편의 말을 들은 그의 아내는 또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여보. 당신이 그렇게 결심을 했다니 정말로 놀라운데요.”

저도 바울 선생의 말을 듣고 큰 도전과 울림을 받았어요.”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서도 주님을 위해 몸을 던지는 그 모습 앞에 제가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저도 남은 인생을 주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며 살기로 했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식들은 또 어떻게 말을 했을까요?

아버지 어머니. 이번에 바울 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서 너무나도 놀랐어요.”

“1차 선교여행과 2차와 3차 선교여행을 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텐데, 마지막 목숨을 예루살렘을 향해 나가는 모습이잖아요.”

그 길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의연하게 나가는 용기와 신념이 무엇인지 바르게 배웠어요.”

저도 앞으로 참된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살기로 주님 앞에서 맹세했어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성실하게 감당하고, 다른 공적인 영역의 일도 신념을 다하겠어요.”

이런 저를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도 항상 기도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그렇게 온 가족 식구들이 바울 선생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눌 때, 어찌 성령님께서 그 가족과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을 친히 도와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친히 그 가족의 자식들을 선하고 아름답게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녀들이 그런 가정과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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