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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바울이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행21:17-18)

by 똑똑이채널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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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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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주일오후 시간에 성경기초교리를 배우고 있죠.

그중에 하나님은 부성과 모성을 지닌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보호하신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와 같은 성경기초교리를 배우는 이유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이단에 대해 대처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그런데 하나님의 부성과 모성을 인간에게 실제 대입하여 인간을 신격화한 이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곳이죠.

목포 가톨릭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그곳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죽은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믿고, 부인 장길자를 하늘 어머니로 믿고 있는 이단이죠.

 

이슬람교는 또 어떻습니까?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마호메트입니다.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읜 마호메트는 할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죠.

그 할아버지마저 죽자 그는 성인이 되기까지 숙부인 아부 탈리브 집에서 살았습니다.

숙부의 소개로 25세의 마호메트는 40세의 부유한 과부 하디자와 결혼을 했죠.

부유한 아내 덕에 마호메트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3남 4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모두 일찍 죽었는데 그때부터 마호메트는 메카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과 기도생활을 시작했죠.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주후 610년에 알라의 계시가 그에게 임했다면서 그때부터 이슬람교가 태동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리고 632년 그가 죽을 때는 아라비아 반도 전 지역이 이슬람교로 통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호메트가 죽자 이슬람교는 교권 다툼으로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이 가장 대표적이죠.

수니파는 유일신 알라와 그의 사자인 마호메트를 믿고 따른다는 단순하고도 소박한 교리를 으뜸으로 삼는 종파입니다.

현재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우디가 그들의 종주국입니다.

 

그에 반해 시아파는 이슬람교의 윤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과격파입니다.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고 이슬람 사제들이 주요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이란이 그 종주국이죠.

국제 테러집단인 IS가 출현하기 전까지 이슬람교도에 의해 자행된 무력 테러가 대부분 시아파에 의해 일어났죠.

 

그런데 최근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국제 테러집단 IS는 시아파 척결을 표방하는 수니파의 극단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시아파 정부군을 돕고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수니파인 시리아 반군을 후원하죠.

그리고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국제테러집단인 IS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본래 마호메트로부터 출발했는데, 왜 그렇게 분열되었을까요?

마호메트는 부모와 조부가 죽자 고아가 된 마호메트는 숙부의 집에서 컸고 숙부의 도움으로 결혼까지 했죠.

그래서 훗날 대지도자가 된 마호메트는 숙부에게 은혜를 갚고자 숙부의 아들인 알리를 자기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촌동생이자 사위였던 알리에 의해 이슬람교가 분열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촌 동생 알리가 마호메트의 뜻이나 가르침과는 달리 교권을 거머쥐려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죠.

 

(깨달음)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열된 것은 로마제국이 국교가 되면서 권력에 눈먼 인간들의 교권 다툼에서 비롯된 일이죠.

그로부터 프로테스탄트가 나왔지만 오늘날의 개신교는 수없이 많은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교권다툼, 교권의 욕심 때문에 비롯된 일들이죠.

이를테면 마호메트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 리가 마호메트의 뜻과 다른 길을 걸으며 자기 교권을 강화할 때 이슬람교가 분열한 것처럼 말입니다.

 

(적용)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단 사이비에 대해 바르게 깨어 있기 위해서라도 성경기초교리를 배워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더 나아가 우리 성결교회도 미주성결교회가 한국성결교회로부터 탈퇴했는데, 그 또한 교권싸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죠.

 

그만큼 우리 자신도 내게 어떤 권한이 주어질 때 그것을 겸손하게 비우고 주님의 뜻을 받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죠.

그래야만 끝까지 존중받을 수 있는 목사요 권사요 집사요 성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바울은 드디어 자기 일행과 함께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0km입니다.

목포에서 부안까지의 거리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평지가 아니라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에게는 더욱더 힘이 들었겠죠.

그런데도 바울은 자기 일행과 함께 환란과 결박과 투옥이 기다리는 그곳 예루살렘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갔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전하고자 자기 몸을 쳐 순종하는 바울을 위해 벌써부터 예비해 놓으신 게 있었죠.

예루살렘에 큰 저택을 지니고 있는 구브로 출신의 ‘나손’이란 사람이 바울 일행과 함께 동행하도록 한 게 그것이었죠.

그때 바울과 그 일행의 수가 최소한 15명 정도 됐을텐데 그들이 묵을 수 있는 방을 지닌 사람이 나손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던 빌립 집사는 젊은 시절의 열정과는 달리 28년이 지나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 순응하고 말았죠.

그 때문에 바울이 가려는 환란과 결박과 투옥의 예루살렘 행을 적극적으로 말렸던 것이죠.

하지만 같은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나손은 자기 집을 내주기 위해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었죠.

 

(깨달음)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자기 것을 내어드리는 자들의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씀을 주시고 감동을 주실 때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선한 예비하심의 길을 열어주신다고 말이죠.

 

(본문)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인데, 바울이 그 일행과 함께 드디어 예루살렘교회에 당도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본문 18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도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원해) 우리말 ‘들어가다’는 헬라어는 ‘에미세이미’(εἴσειμι)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들어가다’(to go into, enter)는 말이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을 만날 때’ 하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할 때 쓰는 표현과 같은 격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기 일행과 함께 야고보를 만나러 들어갔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야고보를 존중했다는 뜻입니다.

 

(전개) 대체 야고보가 어떤 인물이었기에 바울이 일행과 함께 어른을 대하듯 찾아뵌 걸까요?

본문에 나오는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 2절에 나온 야고보가 아닙니다.

그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로서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함께 투옥된 베드로도 참수형 당할 뻔했다가 주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온 일이 있죠.

 

그렇다면 바울이 자기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와서 찾아 뵌 야고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본문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고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 밑으로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마13:55) 그리고 적어도 2명의 여동생이 태어났죠.

그러니 예수님과 네 명의 남동생들은 한 피 받은 형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식구처럼 살았습니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자 예수님은 네 명의 남동생과 두 명의 여동생을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서 목수 일을 하셨죠.

 

그러던 30세가 되어 공생애 사역을 하고자 가족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그만두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집중하고자 말이죠.

그러니 어머니와 가족을 팽개치고 자신들을 떠난 예수님의 동생들이 좋아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더욱이 집을 나간 예수님께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유대 당국자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니 말입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을 보면 예수님의 동생들조차 예수님을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는 모습이 생긴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었습니까?

예루살렘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면서 미쳤다고 할 정도였죠.

그러니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데려오려고 할 정도였죠(막3:21).

 

그만큼 예수님의 동생들은 형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대장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자칭 랍비라고 하면서 12명의 제자를 데리고 다니고, 귀신의 힘을 빌려 귀신을 좇아내는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런 형을 좇는 군중들도 있어서 유대 당국자들이 감시하고 경계하면서 가족인 자기 자신들까지 눈여겨보고 있으니, 어찌 그 동생들이 예수님을 좋아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런 형의 모습,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그 동생들은 못 마땅해 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누가 가장 못마땅해 했겠습니까?

야고보과 요셉과 시몬과 유다와 2명의 여동생 중에 가장 첫 번째인 야고보가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겠죠.

그 전에는 형인 예수님이 가족과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목수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고 예수님을 싫어했던 동생들 그리고 그 중에 야고보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은 그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가, 최고 지도자가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죠.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에게 보여주신 이후에 야고보에게도 보여주신 일이 있습니다(고전15:7).

그때 야고보는 그전과는 달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곧 메시아요 구원자로 완전히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예수님께서 선포하고 외친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헌신한 것이었죠.

 

더욱이 성령강림절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사도들과 여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기도했다고 증언(행1:14)해 줍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그 중에 야고보는 가장 헌신한 이였죠.

 

그리고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더 혈통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야고보는 그 후에 예루살렘교회의 초대감독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후엔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참수형당하고 베드로가 투옥됐다가 돌아왔는데, 그때 베드로는 자기 일을 야고보에게 알리라고 당부하는 장면(행12:17)이 나옵니다.

바로 그때부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우두머리 격이었음을 알 수가 있죠.

 

또한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교회에 돌아왔는제 할례 문제가 터진 일이 있었죠.

그때 그 문제를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를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1회 예루살렘교회 공의회였는데, 그를 두고 교회내에서 수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최종 해결책 곧 최종 결의를 한 사람이 야고보 의장이었죠.

그때 야고보는 자기 교권을 내세우는 판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고 올곧게 지키는 쪽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로 막지 말도록 하라는 게 그것이요,

또한 유대인들이 입장을 헤아리도록 했는데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판결을 했죠.

그로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서로서로 존중하며 하나님의교회를 함께 받들도록 결정한 야고보였습니다.

 

그처럼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의장이자 최종 의결권자로 활약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도행전 15장으로부터 2·3차 전도여행을 마친 이후에 만나는 상황이니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상황이죠.

지금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마게도냐 교회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10년의 세월이 흐른 상황이라면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의장으로서 교권을 더욱더 강화할 수 있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총회장의 위치를 10년 넘게 누리고 있는 야고보죠.

그런데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의장으로 있으면서 무슨 교권다툼이나 교권분열이 발생했습니까?

마호메트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교는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사촌조카이자 사위인 알리에 의해 분열되고 말았는데, 예수님의 동생 야보고에 의해 예루살렘교회가 분열되었습니까?

 

결고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의 의장이자 지난 10년간 총회장과 같은 교권을 지키고 있었지만 결코 자기 강화를 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이 그 일행과 함께 야고보를 만나러 ‘들어갔다’고 아주 정중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죠.

만일 야고보가 자기 교권만 강화하는 인물이었다면 결코 그런 정중한 표현을 쓰지 않았겠죠.

 

(깨달음)그렇다면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야고보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될 때 그때도 야고보와 같은 마음으로 겸손하게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요 장로와 권사도 평신도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교회를 받을 때 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어야 하지 자기 중심이 되면 이슬람교처럼 분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늘 내 욕심이 생기고 내 권한이 클수록 야고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더 올곧고 바른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직분이나 위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더 겸손하게 받드는 직분자가 되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의 음성으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교회도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실수나 허물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을 너는 잊지 말도록 해라.”

특별히 그 실수와 허물이 목회자인 너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살도록 해라.”

다만 너에게 교권이 주어졌을 때 너는 이슬람의 마호메트의 사촌동생 알리가 될지 아니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럼 할지 생각하며 살도록 해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목사와 권사와 집사로 세우심은 너의 교권을 강화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겸손히 주님의 뜻을 받들도록 하려 함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맞든지, 어떤 직분이 주어지는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럼 더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받들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너의 욕망 때문에 너 스스로 상처받고 너 스스로 더 큰 권한을 원하다가 이슬람처럼 분열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성결교회와 미주성결교회가 분열된 것도 모두들 자기 교권을 강화하려는 것 밖에 되지 않더냐?”

너는 너의 교권이 아니라 오직 야고보처럼 주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더욱더 받들도록 하려무나.”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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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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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김제에 금산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가 유명한 것은 옛 예배당 건물이 ‘ㄱ자교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간증을 안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죠.

 

1907년, 그때는 우리성결교회가 태동된 시기인데, 그당시 금산교회는 장로선출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금산교회는 두 명의 장로 후보 중에 한 명을 뽑아야 했습니다.

이른바 조덕삼 장로 후보와 이자익 장로 후보가 그들이었죠.

 

장로 후보라고 부르기 때문에 둘 다 그 당시 돈 많은 지주 출신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지역에 돈 많은 지주는 조덕삼 장로 후보뿐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자익 장로 후보는 조덕삼 장로 후보의 마부 곧 머슴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둘 다 장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겠습니까?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 장로란 그 당시의 목사님들처럼 모든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며 살았던 분들입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신명을 바쳤고 동네에서도 모범을 보이며 살았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투표 때 집 주인이자 땅이 많은 조덕삼 장로 후보는 떨어지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뽑힌 것입니까?

마부요 머슴 출신인 이자익 장로 후보가 장로로 당선된 것이었죠.

그만큼 머슴 출신인 이자익의 믿음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그 집 일과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죠.

 

물론 그것은 그 홀로 잘해서 된 게 아니죠.

자기 집의 종이요 마부인데도 주일날이나 수요일날이나 새벽에도 교회에 나가 헌신할 수 있도록 품어준 조덕삼 장로 후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깨달음)그런데 만약 우리 자신이 조덕삼 장로 후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오늘날 많은 교회가 분열된 이유는 장로 후보에서 떨어진 사람이 교인들을 데리고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조덕삼 장로 후보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그런데 그 당시 조덕삼 장로 후보는 자신이 떨어진 사실을 더욱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이후에도 더욱더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금 장로에 선출이 돼서 더욱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후에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가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고 목회자로 섬기는 물심양면 도왔다고 하죠.

 

(내음성)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10년 넘게 교권의 최고 수장으로 총회장의 자리에 있었네요.”

그런데도 야고보는 오직 주님의 뜻을 받들어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했네요.”

김제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도 후보에서 떨어졌지만 그런데도 분열하지 않고 교회를 충성되게 받들었어요.”

그 후에 이자익 장로가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묵묵히 후원하고 섬겼는데, 오늘 저도 그런 믿음의 본을 따르게 해주세요.”

내 권한이나 내 교권이나 내 직분을 강화하기보다 어떤 직분을 주셨든지간에 주님의 뜻을 더욱더 받드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럼 자신의 직분을 다하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을 주님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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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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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교주의 죽음 이후에 분열을 거듭하다 사라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후계자 다툼에다 자기 교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죠.

이슬람교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로 된 것도, 사우디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국제테러집단인 IS를 돕는 것도 다 교권다툼때문이지 않습니까?

 

가톨릭교로부터 분열된 개신교의 종교개혁모토는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criptura)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이 넘는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회가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교권다툼이자 자기 직책의 강화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럼 어떤 직분과 직책을 부여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충성디게 받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토록 훌륭했던 야고보가 10년 넘게 의장직을 감당했을지라도 사도행전 21장을 끝으로 더 이상 예루살렘교회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사라진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충성을 다한 뒤에 주님께서 부르실 때 영광된 나라에 입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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