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일천번제가 오래 전에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1000번의 제사가 아니라 1000마리의 제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정한 수가 아니라 '많다'는 뜻의 의미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기브온 산당에서는 1000마리 번제물과 같은 많은 양의 제물을 드렸지만,
성전봉헌식 때는 22,000마리 소와 120,000마리의 양을 구체적으로 잡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가운데 자녀를 위한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분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얼마나 귀하게 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열왕기상 2장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봤습니다. 이른바 다윗의 유언대로 솔로몬이 처리하길 바라는 사람들이었죠. 그 중에는 선한 보응을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징벌 곧 심판의 보응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요압과 아비아달과 시므이는 징벌의 보응을 받았고, 군대장관이 된 브나야와 제사장이 된 사독은 선한 보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징벌을 받게 된 이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자기 유리함을 따져 기회주의자의 삶을 좇았기 때문이고, 선한 보응을 받은 브나야와 사독은 한결같이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프로세스를 좇아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보응받은 것이었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죠.
오늘 읽은 말씀은 다윗의 유언대로 숙적들을 제거하고, 그 측근세력을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시킨 솔로몬의 모습에 대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것인데, 하나는 솔로몬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 단초를 보여주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지혜로운 왕으로 세워가는 그 비결입니다.
솔로몬이 타락의 단초를 열게 된 사건이 무엇입니까? 본문 1절에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이른바 다윗 사후에 반대세력들을 제거하고 내부왕권을 견고하게 한 이후에 이웃 국가와 정략적인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를 통해 대외적으로 안정을 도모코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애굽 왕의 딸과 혼인을 맺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바이겠습니까? 그만큼 애굽의 세력이 쇠퇴일로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고, 동시에 다윗에 이은 솔로몬 왕국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에서건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한 것은 결코 옳지 못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의 일로 나중에 후비가 700명으로 늘어나고, 첩이 300명에 달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방 땅에서 온 처와 첩들이 가져온 신들이 이스라엘 땅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고, 솔로몬마저 타락으로 물들게 한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결혼을 앞두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묻지를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통치 영역을 인간적으로 넓히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도 있었지만, 본문 4-15절까지에 나온 내용은 솔로몬이 지혜로운 왕으로 세워질 수 있는 비결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모습이 그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죠. 본문 4절에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여기에 ‘일천번제’로 번역된 이 말은 ‘1000일 동안의 번제가 아니라 일천 마리의 제물(a thousand burnt offerings)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번제물이 소이든지 양이든지 염소이든지, 그걸 천 마리를 잡아 드렸다면 며칠은 걸렸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천’이라는 숫자가 정확한 정수라기보다 ‘매우 많다’는 표현이라는 것이죠.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창24:6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신5:10),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신1:11)하는 표현법이 그렇다는 점이죠. 그런데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열왕기상 8장 63절에 솔로몬이 성전봉헌식 때 희생제물을 바친 게 나옵니다. “소가 이만 이천 마리 양이 십 이만 마리”를 드렸다 하고 말이죠. 그때는 기브온 산당에서 바친 일천마리 번제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고, 훨씬 더 구체적인 숫자의 소와 양을 잡아 드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일천일 동안 드린 것은 확실히 아니지만, 그 온 중심을 다해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드렸다는 의미로 적용하면 되는 것이죠. 더욱이 기브온 산당 뿐만 아니라 성전봉헌식 때도 22,000마리 소와 120,000마리 양을 잡아드렸다면 그 중심은 그 어떤 사람의 마음보다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은 그 당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그렇게 최선을 다해 번제물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도 일천번제와 같은 소원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자식을 위해 간구하는데,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받으실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솔로몬이 그렇게 천 마리와 같은 최선의 번제물을 잡아 드릴 때, 본문 5절에 하나님께서 그의 꿈 속에 나타나셨죠. 그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러자 솔로몬은 무턱대고 자기 욕구를 구하는 게 아니죠. 먼저는 자기 자신의 현 위치를 바르게 아뢰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고백을 하죠. 6절에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고 고백이죠. 이것은 복음성가 노랫말과 같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가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19명의 왕자들 가운데 10번째 아들인 솔로몬이고, 밧세바의 부정 속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라 눈치보며 외톨이로 살았을 솔로몬인데, 그런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솔로몬이 무엇을 고백합니까? 본문 7-8절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하지 못한다는 자기 연약함의 고백입니다. 솔로몬이 자기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솔로몬이 세 번째 간구하는 게 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기 위해,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한 것이죠. 이전 개역성경에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번역을 했었는데, 개역개정판에서는 원문에 가깝게 ‘듣는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데에서 나옵니다. 우리도 나의 얄팍한 꾀와 꼼수를 좇아갈 게 아니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바른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본문 11-14절을 통해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를 멸해달라고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네 말대로 ‘너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겠노라.’ 하고 말입니다. 뿐만아니라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줄 것이고, 다윗이 행한 율례와 법도를 좇아 행하기만 하면 너의 날이 길게 해 줄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상과 같이, 우리는 짧게나마 솔로몬이 타락의 길로 가게 된 단초와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된 비결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타락의 단초와 승리의 삶의 비결, 이 두 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둘은 멀리 떨어진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을 기울이느냐, 아니면 인간의 꾀를 좇아 인생을 계획하느냐, 그 차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나는 쪽을 선택하여 사는 삶의 방향에 따라 타락의 길로 들어서느냐, 아니면 지혜로운 삶과 지위를 보장받느냐하는 차이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새벽에 저와 여러분들이 간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듣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인생 속에서 솔로몬처럼 온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죠.
오늘도 그런 심령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삶 가운데, 내 방식과 내 꾀를 좇으면 타락의 길로 들어서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좇아 살면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대로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간구합니다.
성령 하나님. 이 시간에게 듣는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사,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귀 기울이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낭비되는 것 없이 참 생명을 건져 올리며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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