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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젊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기운이 빠지고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는 때가 머잖아 닥칠 것이니 말예요.
다만 몸이 젊고 건강해도 영적으로 늙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은 쇠약해도 영적으로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열왕기서의 히브리어 명칭은 '멜레킴' 곧 ‘왕들’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열왕기 상하서로 구분돼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단권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열왕기서가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었을까요? 그것은 70인역 성경을 편찬할 때부터입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언어를 헬라어로 통일시켰고, 로마의 황제는 세계의 길을 하나로 다졌죠. 로마의 황제가 집권할 무렵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졌죠. 그들을 일컬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라 하죠.
바로 그런 유대인들, 곧 외국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히브리인들을 위해 성경학자 70명을 동원해 단권의 히브리어 성경을 두 권으로 새롭게 편찬케 되었는데, 그것이 곧 70인역 성경이고, 그때부터 열왕기서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라틴어 벌게이트 역본과 영어 역본이 이어받았고, 오늘날에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왕기 상하서의 저자가 누구일까요? 유대 전승의 탈무드에서는 예레미야로 생각한다지만 그에 따른 반대 의견도 많습니다. 아마도 포로기를 거치면서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후대에 알려야 겠다고 생각한 제 1차 포로귀환 이전의 한 편집자가 여러 자료들을 수집해서 정리하지 않았나, 하고 봅니다. 그 사람이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왕상11:41)을 비롯해, 이스라엘 왕의 역대지략(왕상14:19)과 유다 왕의 역대지략(왕상14:29, 왕상15:17)을 종합해서 열왕기 상하서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열왕기상의 내용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크게 나뉩니다. 전반부는 1-10장까지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를 보여주고 있고, 11-22장은 분열왕국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2장까지는 다윗 왕의 왕권을 솔로몬이 계승하는 내용, 3-8장까지는 솔로몬의 통치. 9-10장까지는 솔로몬의 타락과 징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후반부는 11-22장까지인데 분열왕국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11-14장까지는 남북분열 왕국의 과정을, 15장 1-24절까지는 남 유다에 속한 두 명의 왕들을, 15장 25절-16장 28절까지는 북 왕국에 속한 다섯 명의 왕들의 통치모습을, 16장 29절-22장 40절까지는 북 이스라엘에 속한 아합 왕의 통치 모습, 22장 41-50절까지는 남 유다 왕국의 여호사밧 왕의 통치, 그리고 마지막 22장 51-53절까지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아하시야 왕에 관한 통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 오후 시간에 신구약 파노라마 성경에 대해 배운 적이 있죠? 구약과 신약에 담긴 굵직한 역사의 고속도로였죠. 남북통일왕국이 120년(사울-다윗-솔로몬)이었고, 남북분열왕국은 400년 간 지속되었는데, B.C. 1000년경에 다윗이 왕이 되고, B.C. 931년에 분열왕국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런 분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열왕기상 11장의 내용이고, 열왕기상 12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남북 분열왕국이 시작되는데, 그때부터 남왕국 유다는 20명의 왕들이, 북왕국 이스라엘은 19명의 왕들이 통치했다고 했습니다. 그 중 남왕국 유다에는 8명의 선한 왕이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죠. 그래서 열왕기상에는 남왕국 유다의 20명들 왕 가운데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필두로-아비얌(아비야)-아사-여호사밧으로 이어지는 4명의 왕들이, 또 북왕국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 가운데는 여로보암을 필두로-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 등 7명의 왕들의 행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열왕기하서에는 남왕국 유다의 16명의 왕들에 관한 행적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12명의 왕들에 관한 행적을 밝히고 있는 셈이 됩니다. 물론 열왕기상하서가 여러 왕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주관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땅과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만큼 열왕기서는 신정사(神政史)를 담고 있습니다.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되죠.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열왕기상 1장은 다윗 왕의 마지막 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는 상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다윗 왕을 시중들게 할 처녀를 수넴에서 데려오죠. 성경은 수넴 여인 ‘아비삭’이 이스라엘에서 경국지색, 가장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임을 소개합니다. 그녀로 하여금 다윗 왕을 시중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토록 빼어난 경국지색을 다윗이 잠자리, 곧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밝혀줍니다.
그것은 47살의 다윗이 죄의 유혹에 못 이겨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할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아닙니까? 어떻게 다윗이 이렇게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견지한 것입니까? 단지 몸이 늙어 성적인 관계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까닭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나이 47살에 저지른 성적인 죄악에 대해 침상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음을 오늘 본문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가 단지 감정의 변화나 뉘우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돌아섬을 의미하는데, 다윗이 지금 그와 같은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회개를 70세까지 굳게 지켜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가 그런 회개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회개한 이후 10년간 겪은 죄의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죠. 큰 아들 암논의 죄악, 압살롬의 살인죄, 그 뒤 압살롬의 쿠데타, 다윗의 예루살렘 궁궐을 떠난 피난길, 그리고 전쟁터에서 당한 압살롬의 죽음 등, 다윗이 10년 동안 겪은 그 죄의 후유증 때문에 다윗은 나이 70세가 되기까지 동일한 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사무엘하서의 마지막장인 24장에서 다윗이 인구조사한 일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린 모습도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실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모리아산이 있는 곳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골고다이고, 솔로몬 성전터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생각케 합니까? 70세의 노인 다윗은 몸은 늙고 기운이 빠져 나가지만,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육신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할 날이 가까운 그 시점에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와 동시에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본문 5절의 첫마디에 “그때에”라고 밝히면서,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그입니다. 그는 스스로 높여 ‘내가 왕이 되리라’ 하는 자요, 자기를 위해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한 상황입니다. 다윗의 큰 아들과 둘째와 셋째까지 죽은 마당이니, 아도니야는 실질적인 장자의 명분을 지닌 자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아버지 다윗에게 책망 받을 일도 또 섭섭케 한 일도 없었고, 책임감이 강한 아들이었죠. 거기다가 외모까지 준수한 자였으니, 명분도, 내용도, 외모도,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아들이었죠.
문제는 그런 아도니야가 영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늙어버린 사람 곧 영적 암흑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죠. 5절 상반절에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른바 교만함에 빠져 있는 모습이고, 본문 9절에서는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하고 밝혀줍니다. 여기에서 소헬렛 바위란 히브리어로 “사탄들의 돌”이란 뜻입니다. 그곳은 그전부터 우상숭배의 제단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자가 우상숭배의 장소에서 정치적 연회를 베풀고 있는 모습이죠. 그만큼 그는 겉으로는 젊고 매력적이며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자였지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다윗은 몸이 쇠하고 늙었지만 영적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싱싱하고 활기차 있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육체적으로 젊고 활력을 보이는 아도니야는 영적으로 늙은이 곧 영적 암흑의 상태에 처했다는 점이죠. 우리도 나이가 들어 겉사람이 쇠퇴할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때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를 바라보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좀 더 젊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때에 성령님과 더 깊은 관계, 충만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도 언젠가 다윗처럼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도 다윗처럼 영적인 감각이 살아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뵙는 순간이 더욱 가까울수록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엮어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을 더 높이고 내 곁의 사람들을 더욱 섬기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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