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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시20:1-9)

by 똑똑이채널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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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전쟁을 앞둔 왕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 시를 당시의 왕이었던 다윗이 쓴 자작시로 보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자신을 객관화하여 백성의 위치에서 왕인 자신을 위해 중보하는 기도 곧 섬김의 기도로 기술한 것으로 보고 있죠. 다윗은 본문에서 전쟁을 앞둔 자신과 민족의 상황을 두고 환난의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말 환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라는 괴로움, 고통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정적이었던 수리아와의 전쟁, 그리고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우리가 이미 읽었던 사무엘하 10장에 나와 있는 배경이죠.

그런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를 드립니다. 본문 1절에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환난, 다윗의 괴로움은 앞서 말한 정적 수리아와 암몬이었습니다. 그들과 다윗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죠. 그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심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괴롭게 하고, 고통가운데 절규하게 하는 배경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에게는 다윗과 같은 외형적인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보다 더 치열한 영적전쟁이 놓여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세상 주관자들과 영적전쟁의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적인 전쟁에서 다윗이 경험한 동일한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고백은 그것이죠. 내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 삶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다고 고백을 합니다. 똑같은 세상이고, 똑같은 꽃과 별들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 별과 꽃을 보면 그것들이 나를 위해 방긋방긋 웃고 즐거워하고 말을 거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죠.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성화의 삶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 처절한 괴로움과 고통도 맛본다는 점이죠. 이 전쟁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깨닫고 이 전쟁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런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우리의 구원까지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과 고통과 갈등은 구원받지 못해서 하는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한 과정 속에서 겪는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은 동일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갈등하고 번민했다는 사실을, 로마서 724절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우리말 곤고한으로 기록된 헬라어 탈라이포로스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바로 본문의 다윗이 전쟁을 앞두고 고백했던 그 마음의 상태와 동일한 뜻입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눈의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그의 영혼의 비늘이 벗겨지는 거듭남,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죠. 주님께 직접 사도의 직분을 받아 복음으로 초대교회를 세우고 그들의 영적 멘토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쓸 정도로 대단한 복음의 사람이죠. 그런데 그런 바울조차도 여전히 죄에 반응하고 환경에 반응하는 사망의 몸 안에서 자신의 괴로움과 비참함을 토로하고 있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곤고, 그런 괴로움을 주님을 모르는 상태 속에서 한 게 아니라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겪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뒤따른 게 영적인 전쟁이라는 걸 말입니다. 신실한 믿음, 보다 성숙한 믿음을 좇는데 갈등하고 번민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서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바꿔 말해 바울에게 찾아온 영적인 전투를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본문 6절에서 다윗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다윗은 기도문 서두에 이 전쟁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처음은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의 기도는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선포의 기도 곧 응답하시리로다하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자신을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다윗이 확신한 것이죠. 그 확신의 근거는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수많은 병거와 말에 있었던 게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6절 상반절에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세 가지 직분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먼저는 제사장이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을 세울 때에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죠. 둘째는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왕을 뽑을 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죠. 마지막은 선지자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세울 때 그들의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그리스도’(Christ)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란 단어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곧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구약의 세 가지 직분,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했던 그 모든 역할을 다 성취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친히 그 제사의 제물이 되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왕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지자가 되셔서 말씀으로 친히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뒤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각 사람이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성령강림절이라 하죠. 그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신도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셨죠. 그 강림사건을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 곧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와 같은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영적인 번민과 갈등 속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영적으로 흔들렸지만 로마서 81-4절을 통해 이런 다짐의 고백을 한 것이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의 기름부으심 속에서 모든 갈등과 번민에서 해방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죠. 저와 여러분은 성화의 삶을 살고 있지만 고민과 갈등의 영적인 괴로움이 없을 수가 없죠. 하지만 성령 안에 거하는 자들이기에 그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야긴과 보아스

북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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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모두는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고통과 괴로움의 상황, 영적인 전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이 너무 커서 때론 포기하고픈 마음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러기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 큽니다. 부디 성령의 기름부음 속에서 모든 영적인 싸움들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새 힘과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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