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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는 다양한 양식의 시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양식들로는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그리고 ‘신뢰시’ 등이죠.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시편 18편은 ‘감사시’로 분류됩니다. ‘감사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고난과 역경, 환난을 이겨낸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고백하는 시입니다.
오늘 시편 18편의 표제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런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는 이가 누굽니까? 이스라엘 왕조의 두 번째 왕 ‘다윗’이었죠. 그러나 다윗은 수많은 고통과 시련, 위기와 고난의 날들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많은 환난과 위기의 상황들을 뚫고,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그런 지난 날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게 오늘 읽은 시편 18편입니다.
본문 3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에게는 많은 원수들이 있었습니다.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블레셋 족속이 있었고,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끌고 갔던 아말렉 족속들이 있었고, 하눈 왕을 중심으로 한 암몬 족속 들이 있었죠. 그것이 외부 세력의 적들이라면 내부의 적도 있었고, 가장 가까운 장인 사울이 다윗의 최대 적이었죠. 외부의 적도 적이지만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적이 바로 그의 가족, 곧 장인 사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와 유사한 점이 있죠. 우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 사람들을 통해 다가오는 고난과 역경, 환란과 핍박이 있지 않습니까? 복음을 좇는 삶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충돌할 때 빚어지는 갈등과 번민과 혼란이죠.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더 큰 고통은 가족과 부딪히는 면들이죠. 복음이 믿는 자들에게는 ‘지혜로운 것’이지만 주님을 모르는 가족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기 때문이죠. 가족들이 순간순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지, 눈여겨보는 것, 그 또한 무시 못할 일들이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가족들, 그 중에서도 자식들 앞에서임을 알 수가 있죠.
그렇다면 다윗은 내부세력의 가장 큰 대적인 사울을 어떻게 대했는가? 다윗은 그 사울을 대적으로 여긴 게 아니라 자신을 가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포석으로 여겼습니다. 더욱이 모름지기 왕이 될 자는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살아야 하는 지를 미리 보여준 하나님의 거울과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런 뜻으로 사울을 받아들이고, 사울의 칼날을 받아들였기에 때문에, 그가 도피행각을 벌일 때에도 사울과 맞서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나아갔죠. 더욱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공의의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그를 살려뒀던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끝 날에 사울은 죽고 다윗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죠.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또 때론 경쟁상대가 나를 모함하고 헐뜯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는 언제나 공의로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자세죠. 심지어 경쟁자나 나를 힘들게 하는 자를 단 번에 제압하거나 짓누를 기회가 있음에도 그를 기꺼이 포용하는 것은 그를 내 곁에 붙여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까닭이죠. 그렇게 신실하게 그를 대하게 되면, 곧 그를 내 곁에 둬서 나를 갈고 다듬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끝날에 내 신원과 지위를 높여주시고 새롭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 시편 18편의 말씀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읽은 18편을 통해 깨닫는 교훈은 1-2절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은 주님이 나의 힘이시라고, 그런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라함’은 보통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여기에서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라함은 결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쓸 수 없는 표현이기에, 그 사랑을 충성과 헌신으로 재해석하기도 하죠.
사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에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어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실은 하나님에 대한 방향성이겠죠. 어떤 대적들이 자기를 위협하고, 심지어 자기 장인과 같은 사울이 나를 힘들게 하고 죽이려 해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요새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사실을 다윗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헌신을 고백해도, 그 고백의 출처는 다윗에게 비롯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죠. 그것은 마치 바울이 일평생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주님께 내어드리며, 순교로서 자기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죠. 바울이 주님을 향해 충성과 헌신을 한 것도 바울을 사랑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죠.
바로 이것이 오늘 시편 18편을 통해 깨닫게 되는 두 번째 신앙교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뜨거운 믿음을 고백하는 것 같지만, 우리 자신에게서 그 믿음과 사랑과 충성과 헌신이 나오는 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인함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과 충성은 자랑할 게 없다는 것,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을 늘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죠.
마지막 세 번째 교훈은 20-2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면 마치 다윗이 율법을 잘 준수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급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 주셨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행동이 아니라 그 중심,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믿음을 보시고 왕으로 택한 것이죠. 그런 은총으로 보상해주실 때 다윗이 남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남은 일생을 더욱더 하나님께 의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정금같은 믿음으로 빚어질 수 있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 신원을 회복시켜 주시고, 내 기도 제목에 응답해 주셨을 때, 그 모든 공로는 내게 있는 게 아니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죠.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다루시고 이끄시는 것이죠. 그런 사람이 주님 앞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그렇게 악조건의 상황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게 되면, 그 삶을 보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신실한 삶을 사는 동안 세상 동료들도 그 자리에서는 핀잔을 줄지 몰라도 돌아서면 진실된 크리스천이라고 인정을 해 주겠죠.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주님의 은혜 속에 하루하루 주님의 구원에 응답하여 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하게 보답할 수 없는 부족한 저희이지만 주님께 대한 ‘라함’의 고백, 사랑을 고백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그 사랑 안에서 어떤 역경도 힘듦도 고난과 곤고도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윗을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저희들이 신원도 회복시켜 주실 때를 바라보고 하루하루 신실한 믿음의 삶, 온전한 그리스도인 됨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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