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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주의 아름다운 복(시21:1-13)

by 똑똑이채널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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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21편은 20편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 20편의 내용이 수리아와의 전쟁, 그리고 암몬과의 전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갔던 이들의 간청과 간구였다면, 오늘 읽은 시편 21편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감사의 기도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최민순 신부가 번역한 그 시편 책에도 20편은 싸움터로 나가는 임금을 위한 기도로 또 21편은 개선한 임금을 위한 감사의 기도로 각각의 제목을 짝으로 정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시편 20편과 21편은 다윗이 자신을 객관화하여 백성의 위치에서 고백하고 있는 시라고 했죠. 백성의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도와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수리아와 또 암몬과의 전쟁에 나가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했는데, 오늘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도와주심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하는 상황입니다. 왜죠?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윗은 알고 있죠. 자기 힘이나 지략이나 군사력이나 무기력 때문에 승리한 게 아님을 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가? 2절에 그의 마음에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의 소원과 입술의 요구를 거절치 않는다는 것이죠. 사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전투에서 승리에 대해 갈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전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순위를 결정하는 게 아니죠. 그 전투는 생사가 걸린 전투죠. 그러니 더욱더 간절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본문 3절은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전투에 참전한 군사들과 왕에게 하나님께서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을 그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또 전리품을 취한 그 모든 상황을 왕에게 순금의 왕관을 그 머리에 씌워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을 일컬어 주님의 아름다운 복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입니까? 일상에서 가장 많은 을 대할 수 있는 곳이 중국집 아닙니까?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복자를 써서 걸어두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부적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원하는 탐욕이라는 복 말이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모든 것에 질서가 있고, 모든 사람을 화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발견할 수 있는 복입니다. 두 번째 발견하는 복은 6절의 고백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영원한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유통기한이 있죠. 권좌도, 부귀영화도, 그 어떤 화려함도 끝이 있기 마련이죠.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병원에 있다가 끝내는 숨을 거뒀죠. 그만큼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 것 같아도 끝이 있기 마련이죠. 그 유한함을 아는 인간은 그래서 영원하신 복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도 지금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래서 전리품을 취해 개선장군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그러나 일시적인 승리일 뿐임을 알고 있는 것인죠. 참되고 영원한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영원한 복임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복이 중요한 것입니까? 인류의 시작을 살펴보면 환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1:27-28a)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에게 제일 먼저 주신 게 실은 이었죠. 며칠이 지나서, 혹은 1년이 지나서 복을 주신 게 아니라 인간을 지으시고 곧바로 복을 주셨습니다. 그 복은 단순히 호의호식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복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 그것을 위해 복을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른 인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인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바른 인간이 되도록 복을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소유형의 인간이 되도록 복을 주신 게 아니라 존재형의 인간이 되도록 복을 주셨다는 점이죠.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일깨워주는 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 11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여기서 복음이란 유앙겔리온으로,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선한 소식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복음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며, 하나님이 주신 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서 다루었던 2절의 말씀처럼 마음의 소원과 입술의 구함을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왜 굳이 내게 알 수 없는 결핍과 고통을 허락하시는가에 대한 질문 때문이겠죠.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쓸 것과 먹을 것에 있는 게 아니죠. 부모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입니다. 부모와 함께 있으면 나머지 것들은 다 해결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녀들은 집나간 탕자처럼 자기 것, 자기 분깃을 요구하고 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죠.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기다려주고 품어주고 그런 철부지 자식을 이해하는 부모의 깊은 사랑을 알 때 진정으로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요, 복임을 알게 되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은데, 그런데 종종 우리는 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제쳐두고 복의 부산물에만 관심을 둘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뿐만아니라 자녀가 아프거나 또 다른 체질 때문에 고생하는 자녀에게는 그만큼의 관심과 신경을 쓰는 게 부모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런 우리들의 체질, 우리들의 형편을 전혀 모르실 리가 없죠. 그렇기에 때로 남이 알지 못하는 결핍이나 병마나, 다른 악조건들도 실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더욱더 돈독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더 큰 복의 비밀을 깨닫고 사는 자이죠. 그만큼 어떤 상황속에서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식하며, 의탁하며 사는 것, 이것이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실로 다윗이 그랬습니다. 수리아와 전투하는 현장, 또 암몬과의 전투 현장에서 승리한 것만 기뻐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장인어른 곧 사울의 광기어린 살해 위협속에서, 자녀들의 참담한 행동들을 통해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모든 형편 속에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 앞에 어떤 형편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큰 전쟁의 승리나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 없어도, 오히려 악조건과 같은 상황이 펼쳐져도 나를 위해 더 선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오늘도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북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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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저희는 하나님의 복으로 시작한 인생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새롭게 사는 존재들이요, 매일 성령충만함이 없으면 주저앉을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어떤 형편과 어떤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져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하루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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