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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무엘하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삼하24:1-25)

by 권또또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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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10년 단위를 우리 각자의 인생을 돌이켜볼때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남은 인생도 늘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각자의 인생을 의탁하며 사는 길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자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그동안의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죠. 아울러 이제껏 자신과 함께 전쟁터를 누빈 용사들,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군사들을 한 명 한 명 거론하면서 그들을 기억한 장면도 있었죠. 그를 통해 생각한 것은 우리가 주의 군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울 때 하늘나라의 생명책과 더불어 행위록에도 낱낱이 기록하여 새기고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하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전반부(1-17)는 다윗이 실시한 인구조사와 관련된 내용이, 후반부(18-25)에는 그에 따른 회개와 화목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다윗이 통치 말기에 실시한 인구조사인데, 본문 1절의 배경설명이 조금은 이상합니다. 그 동기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였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죄악을 범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다시’ 진노하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시면 되는데, 왜 하필 다윗을 격동시켜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한 걸까요? 여기에서 ‘격동시키다’라는 히브리어 단어 ‘쑤트’(סוּת)의 의미는 ‘자극하다’, ‘선동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풀어 쓸 수 있죠.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려고 다윗의 감정을 흥분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다’,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내용을 정리하고 넘어가면, 본문 10절의 말씀 앞에 약간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10절에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본문 1절에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징계하기 위한 차원인데, 본문 10절에서는 다윗이 자기 죄악을 자책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뒤가 다소 맞지 않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코 인구조사가 하나님의 의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한 차원인데, 왜 하필 다윗이 자기 자신의 죄악으로 고백하는지 말입니다.

 

 

본문 2절에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다윗이 군대장관 요압에게 인구 조사를 실시하게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요압은 그 일을 말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일까요? 그 일이 순수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다분히 군사적인 목적에서 행한 일임을 요압이 갈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다윗이 자기 죄를 자책한 이유입니다. 젊은 날의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달았던 자였죠.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님 밖에 도와 줄 이가 없”(대하14:11)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지 않았습니까(삼상17:47)?

그런데 인생 말년에 요압을 통해 인구조사를 한 것은 향후 일어날 전쟁을 대비하겠다는 뜻이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기 자신의 군사력을 더 믿고 의지하겠다는 차원에서 인구조사를 시킨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인 모습에서 벌인 일인 것입니다. 그런 의도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요압은 ‘하나님께서 그 일은 기뻐하지 않는다’고 충언을 고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후에 다윗은 인구조사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전염병에 걸려죽게 된 것을 본문 15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차원과 다윗의 인구조사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역대상 21장에도 기록돼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1장 1절에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하고 밝혀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하셨다고 밝혀주지만 역대상에서는 그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욥의 경우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욥은 우스 땅에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요, 악에서 떠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 그에 대해 사탄이 나서서 하나님께서 참소하죠.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를 치시면 분명 하나님을 향하여 욕할 것이라고 단언하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고 욥을 시험토록 허락해 주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욥을 믿으셨습니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과 역대상의 본문에 기록된 다윗의 인구 조사를 재해석하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려고 하는데, 사탄이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도록 다윗의 중심을 노렸다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다윗을 죄의 올무에 빠뜨림으로 인해 그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또 지켜보고 계신 것이죠. 하지만 사탄의 시험 앞에 놓여 있던 욥을 하나님께서 믿으심으로 사탄의 시험이 그에게 임하도록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런 맥락으로 다윗을 믿고 사탄의 시험에 노출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윗은 욥과 달리 사탄의 계략에 그만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군사력을 의지하고 또 자기 교만에 빠져 인구조사를 했던 것이고, 그 일로 7만명이 전염병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 자백하며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본문 17절을 보면, 다윗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집을 쳐달라며 백성들을 향한 중보 기도를 다윗이 올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18절의 말씀처럼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올라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땅의 주인이 무상으로 다윗에게 제공하려고 하는데, 다윗은 기필코 타작마당도 제 값을 주고 사고, 화목제물로 바칠 소도 제 값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러자 그 땅의 재앙이 그쳤다고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 내용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역대상 21장 이후의 22장에 가면 바로 그 땅이 곧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다는 점을 밝혀줍니다. 놀라운 섭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불신앙과 개인적인 교만함에 대해서 회개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사회의 죄악에 대해서까지 회개한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도 나 개인의 불신앙과 교만함도 늘 회개하며 살아야 할 것이요, 더 나아가 사회의 죄악에 대해 애통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때 그 회개의 터전 위에 솔로몬 성전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회개의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사무엘하서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15살 때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도망자 신세를 산 20대 모습이었습니다.

30살에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37살에 온 전역의 왕으로 추대 받았고, 10년간 이방 지역들을 정복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47살에 부정을 저질렀고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50대에 근 10년간 죄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던 그였습니다.

60대에 이르러 10년 동안 마지막 인생을 준비한 다윗이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지난 날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과 함께 한 군사들을 떠올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교만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것마저도 하나님께 회개케 하셔서 그를 천국으로 부르실때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불러올리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저희들도 언제나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매순간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언제라도 주님께서 부르실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세로 하루하루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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