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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무엘하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삼하20:1-26)

by 똑똑이채널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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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배당 옆 꽃밭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데 있지 않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좇는 데 있습니다. 

다만 그런 나라를 추구하는데도 때로는 분열을 꾀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욕심만 좇는 이도 있죠.

진정한 크리스천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위한 지혜롭게 헌신하는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마하나임의 피난길에 있던 다윗이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예루살렘 궁궐로 돌아갑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까지 품고 선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압살롬과 더불어 반역을 꾀한 유다 지파의 장로들, 압살롬의 군대장관 아마사, 자신의 피난길에 욕하고 저주한 시므이까지도 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품고 관대하게 대한 것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은총 때문이죠.

다윗이 그렇게 요단강을 건너오는 상황가운데 다윗이 품어야 할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다윗을 한결같이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죠. 두발이 절둑발이인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채 다윗과 함께 아파했고, 부자 바르실래는 다윗의 피난길에 떡과 음식과 침상과 대야를 제공했는데, 그것이 무슨 덕을 이후에 보고자 한 게 아니라 다윗 너머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고자 한 일이었죠. 그렇게 다윗 곁에는 자신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내다보며 이리저리 변신하는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까지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이 끝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범죄한 이후 다윗 가문에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아내마저 누군가 범할 것, 그 일들은 백주대낮에 일어나 온 천지에 알려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사무엘하 12장부터 예고한 이후 지금 19장까지 계속 진행된 상황이었죠.

이른바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2년 만에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그 암논을 보복해 죽였고, 그리고 3년간 그술 땅으로 달아나 외조부 밑에서 살다가, 정치인 욕망이 강한 요압 장군의 주선 하에 다시금 압살롬이 왕궁에 돌아오지만 2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상태로 살다가 다시금 요압 장군의 주선 하에 아버지와 만남을 가지지만, 그로부터 4년 동안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헤브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왕궁으로 회군하여 진격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이죠.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 궁을 빠져나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기드론 시냇가를 건너 요단강 마루턱까지 다다르는데, 그 길목에 자기 잇속을 챙기는 시바라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는 시므이라는 사람도 만나게 되죠. 그런가 하면 피난길에 오른 다윗과 함께 하겠다고 따라 나선 사람들도 있었죠. 블레셋의 망명자들 600명과 그 인솔자 잇대 장군,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도, 다윗의 친구이자 책략가인 아렉 사람 후새가 그들이었죠. 그러나 다윗은 제사장들과 후새는 왕궁으로 돌려보내 자신을 돕도록 했는데,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의 책사이자 밧세바의 친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다윗의 친구인 후새의 계략을 압살롬과 문무백관들이 받아들이게 했죠. 그래서 그 날밤 다윗은 요단강을 건너 멀리 마하나임까지 달아나 쉬고 있는데, 그때 다윗과 부하 장수들과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한 바르실래 같은 사람도 있었죠. 다음날 압살롬이 부하들을 데리고 벌떼처럼 다윗의 부하 장수들을 공략해 들어가는데, 그만 그의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요압 장군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하게 되죠. 그리고 나팔소리와 함께 전쟁이 끝나, 자신보다 일찍 죽은 아들 압살롬을 슬퍼하던 다윗은, 이제 모든 것들을 단장하여 마하나임에서 요단강을 건너 길갈을 거쳐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자기 유불리를 따져 이리저리 마음을 바꾸는 자들까지도 모두 품겠다는 의사와 더불어 지금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목이죠. 그것이 사무엘하 19장까지 이어진 내용입니다. 다윗의 나이 47살에 죄를 짓고, 50대에 그 모든 죄의 후유증을 겪다가 60살이 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제 20장에 이르러 그 모든 죄의 후유증이 정리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반란을 일으킨 불량자 세바를 제압하는 과정이 본문에 기록돼 있는데, 그 속에서 한 여인의 지혜로움과 용맹을 발견하게 해 주죠.

 

어제 우리가 살펴봤지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백성들은 왕께서 유다 지파만을 감싸고돈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바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은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요직을 내 주도록 하기 위함에서 한 발언들이었죠.

바로 그 상황에서 오늘 본문 1-2절이 이어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이스라엘의 무리들 가운데 비그리의 아들 세바, 불량배(בְּלִיַּעַל, worthlessness)이자 사악한 세바가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죠. 다윗과 함께 나누어 가질 분깃이 없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세바의 선동에 놀아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겠습니까? 어제도 살펴봤고 그제도 살펴봤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바라보기보다 오직 자신들의 유불리만을 따져 요동하는 자들이죠.

물론 다윗은 그들까지도 끌어안아야 했죠. 그들 역시 자신의 백성이자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당장 그들을 제압하기보다 왕궁에 돌아와 정리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게 되죠.

그래서 첫번째 한 것은 본문 3절의 말씀처럼, 이전에 피난길에 오를 때 왕궁에 남겨둔 후궁 10명, 그런데 압살롬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한 그 후궁들을 별실에 가둬 생과부로 지내게 하죠. 얼핏 보면 잔혹한 것 같지만 옛날의 절대군주 체제 속에서 보면 목숨을 살려주는 관용의 모습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제 세바의 추이를 지켜보는데,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그 반란자들을 처단하도록 합니다. 이전의 압살롬처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다윗이 아마사 장군에게 이스라엘의 군사들을 모으도록 한 일이 있는데, 그가 요압 장군과 합류하려고 하던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요압 장군이 그 아마사 장군을 환영하는 것 같이 하다가, 갑자기 그를 죽여 버리죠. 이유인 즉 요압은 그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꼴을 못 보겠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도 사울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나아와 온 나라를 다윗 왕에게 돌린다고 약조하고 돌아갔는데, 그 길목에 요압이 칼로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요압은 자기 동생 아사헬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서 죽이기도 했지만 실은 자기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질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미리 제거한 것이었죠. 이번에도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아마사를 죽인 것입니다. 그만큼 욕압은 자기 욕망에 눈이 먼 자였는데, 다윗은 지금 그를 군대장관으로 끝까지 기용하지만, 훗날 열왕기상 첫머리에 보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그를 처단토록 당부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이끄는 이스라엘 나라에 화근이 되지 못하게 하죠.

그리고 본문 14-22절 말씀은 그 반란군을 잠재운 지혜로운 한 여인의 활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세바가 벧마아가 아벨의 성에 들어가 숨어 있는데, 그 반란군을 진격해 온 요압 장군은 그 성을 정복하기 위해 토성을 쌓고 있습니다. 그때 그 성안에 있는 ‘지혜로운 한 여인’이 나서서 요압 장군과 회담을 했고, 그리고 성읍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 불량배 세바를 처단해 그의 머리를 내 주는 것으로, 반란이 진압되게 한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녀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사시대의 드보라와 맞먹는 지혜롭고 용맹한 여인이었고, 또 드보라와 더불어 가나안 왕 하솔의 군대장관이자 철병거 900승을 이끌고 온 시스라를 말뚝으로 쳐박아 죽인 ‘야엘’이란 여인과 같은 지혜로움과 용맹을 겸비한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죄에 대한 후유증이 모두 일단락됩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우리 시대와 다가오는 모든 시대에도 다양성은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분열을 꾀하려는 세바와 같은 사람, 또 그 속에서 자기 유리함을 고하려는 요압과 같은 사람이 문제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안정과 화평을 위해 지혜롭게 나선 무명의 여인과 같은 사람이 있는 법이죠. 우리가 그와 같은 여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셨음에도 눈앞에 있는 이익만 좇으려는 세바도, 요압도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당장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며 살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지혜로운 무명의 여인처럼 오직 하나님나라의 의와 화평을 위해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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