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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무엘하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삼하21:1-22)

by 똑똑이채널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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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부부지간의 대화, 부모자식간의 대화처럼,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의 시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내 뜻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애통해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죠.

그것이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옆 꽃밭 낮달맞이꽃

 

성경에 하나님께서 기근을 내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징계하기 위한 차원이죠. 아브라함 같은 경우가 첫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시험을 참지 못해 애굽 땅에 내려가다가 화를 당할 뻔했죠. 그런가 하면 사사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징계하기 위한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기근을 내렸죠. 그래서 기근을 내리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삶을 바르게 정돈하고 살아가면 될 텐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했죠. 예를들면 베들레헴 사람 나오미도 그런 경우였죠. 기근이라는 하나님의 징계 앞에 그녀는 이방의 모압 땅에 흘러들어가 새로운 꿈을 펼쳐보고자 10년 동안 살았는데,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말았죠. 그리고 다시금 고향 땅,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룻기서를 통해 살펴본 내용이었죠. 그런가 하면 솔로몬 이후 남북이 분열될 때 19명의 북왕국 왕들이 통치했는데, 그 중 7번째 아합 왕이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 징계 차원으로 기근을 내린 적이 있었죠. 그때 엘리야는 아합에게 회개하도록 외쳤는데 그가 돌이키자 않았죠. 그래서 3년 동안 기근으로 징계하신 일이 있었죠. 그런가 하면 신약시대에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전역에 흉년이 들끓 때 강타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자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당신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죠. 이른바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긍휼어린 마음, 애통해 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산 것을 일깨우기 위함에서 말이죠.

 

 

오늘 본문은 그 기근을 다윗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윗이 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안정기를 맞이하는데, 하필 그때 3년 동안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근 앞에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이 사울이 흘린 피 때문이라 하십니다.

여호수아 9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중부와 남부와 북부 지역의 가나안 땅 거점지역을 정복해가는 과정 중에, 기브온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여호수아와 평화조약을 체결한 일이 있었습니다. 기브온 족속들은 그때 자신들이 가나안 땅의 족속임을 밝히지 않고, 거짓을 꾸며 허름한 옷을 입고 먹을 것도 오래된 빵을 가지고 나와 여호수아와 백성들 앞에 자신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들의 자초지종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죠. 그런데 후에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르다가 알게 된 게 그 기브온 족속들이 실은 가나안 원주민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께서 완전히 진멸토록 한 그 원주민들 가운데 한 족속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살려주겠다는 맹세한 까닭에 그들을 죽이지 않고 다만 물을 깃고 장작 패는 허드렛일을 하는 종으로 부리게 되었죠. 어찌됐든 기브온 족속들은 졸지에 몰살당할 위기에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브온 족속들을 사울이 왕이 된 후에 모두 도륙냈던 것입니다. 이른바 여호수아와 맺은 평화조약, 곧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그 조약을 사울이 일방적으로 깨트린 것입니다. 성경은 그 일에 대해 사울의 열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밝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열심히 아니라 사울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자행한 일이이었습니다. 지금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 땅에 삼년 기근이 임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속죄할 방법을 묻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3절에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6절을 통해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그래서 다윗이 또 말하죠.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하고 말이죠. 이른바 사울의 피를 이어받은 일곱 자손을 속죄물로 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 8절처럼 사울의 첩 리스바의 두 아들, 또 사울의 딸 메랍의 다섯 아들 곧 7명을 한 날 한 시에 처형토록해서 제물을 삼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윗이 3절에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라”, 곧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게 과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인가, 하는 점 말입니다. 민수기 35장 33절에서는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사람의 피를 희생제물로 삼으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사사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누구든지 먼저 환영한 이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한 예가 있지만, 그때 입다는 자기 딸을 서원 제물로 죽여서 바친 게 아니라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으로 바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도 그런 차원에서 기브온 주민들의 원성을 해결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보다도 단지 기브온 주민들의 원성을 잠재우는데 것으로 그 일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기브온 사람들의 전통 의식을 따라 그렇게 행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의 후손 7명을 내주어 죽게 했는데, 그때 곧바로 내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아야의 딸 리스바’가 자기 자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신을 지키는데, 그녀가 언제까지 지킵니까?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입니다. 그만큼 비는 그 즉시 내린 게 아니라 적정 기간이 지난 후에라야 비가 내린 것입니다. 본문 13-14절은 그때가 다윗이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그 선조의 묘에 함께 이장한 이후임을 밝혀줍니다.

왜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그때 이장하게 된 것입니까? 본문 11절의 말씀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하는 상황 때문이죠. 다윗이 기브온 주민들의 요구에 너희를 위해 행하겠다고 약조한 이후 7명 자식들을 희생제물로 내 주었는데, 그 중에 자기 자식의 죽음 앞에 애통해하는 그 엄마의 처지를 보면서 다윗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녀의 슬픔과 애통을 생각하면서 자기 아들 압살롬을 잃은 똑같은 비통함과 슬픔을 느낀 다윗이 그때 비로소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그 조상의 묘실에 이장토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비도 내리셨고, 기근도 그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5-22절은 블레셋 군사가 일어나서 다시금 다윗의 나라를 쳐들어오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죽을 고비를 맞이할 때 그 곁의 부하 장수가 도와서 다윗의 목숨을 보존한 것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골리앗의 동생 하르미 같은 경우도 있었는데 그를 베들레헴의 장수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쳐서 물리친 것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애통해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그런 은혜와 승리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상한 심령의 기도요, 애통해 하는 마음의 기도라는 점입니다. 성경도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의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애통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땅이 되는 것이죠. 우리들도 누군가 아파하고 애통해 할 때 함께 아파하고 애통하는 그런 심령의 소유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 자세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깊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소통의 장벽을 넓혀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의 열심이 사람을 살리는 열심이게 하시옵소서.

타인을 위한다는 소리를 앞세워 다른 이의 삶을 갉아먹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시옵소서.

오히려 주님의 마음을 좇아 타인의 아픔과 애통에 함께 아파하고 애통해하며 사는 가난한 심령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귀하고 복되다고 하는 찬송처럼,

주님과 더 깊이 있는 인격적인 대화를 늘려가는 기도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성령님께 수시로 묻고, 성령님의 음성과 감동을 좇아 사는 하루로 삼아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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