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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세계적인 엘리베이터 제조회사인 OTIS에서 처음 만들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느려 이용자들의 불만이 상당히 많았다. OTIS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만큼의 시간과 기술과 돈을 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돈도 들지 않고 기술력도 필요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해결했다. 그로 인해 모든 고객의 불만이 일거에 잠잠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설치한 발상이 그것이었다. 정말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설치해보니 이용자들은 실제로 흘러가는 절대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가? 실제로 그렇지 않는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거울로 향하게 돼 있다. 거울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적한 층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아담 존스가 한 말은 지금도 깊이 있게 다가온다. “시간은 단지 느낌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허상에 불과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19:7∼11)
시편 19편은 다윗이 쓴 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고백한다. 그분이 지으신 궁창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찬양한다. 그리하여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그 지식을 전한다고 고백한다. 자자손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알리는 자연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임을 찬양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그분의 말씀은 인간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자를 밝게 해 준다고 고백한다. 더욱이 그분의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찬양한다.
1991년경 경기도 양평군 구국 성지 기도원에서 한 달 넘게 살 때 꼭 그랬다. 그 기간 동안에 나는 기도원의 문지기로 살았다. 기도원 곳곳의 고장 난 부분을 고쳤고 침례탕도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일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내 코끝에 송이꿀보다 더 달콤한 향기가 직접 스며드는 것을 깨달았다.
시편 19편은 다윗이 언제 썼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제1권의 시들이 대부분 고난 가운데 쓴 시편임을 생각한다면 이 시도 광야에 머물 때 쓴 시임을 추측할 수 있다. 광야의 도망자 신세 속에서 밤하늘의 이슬을 머금고 살 때 말이다. 그때 밤하늘의 궁창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양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영혼이 새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야’와 ‘말씀’은 히브리어로 한 끗 차이다. 광야는 ‘미드바르’(מִדְבָּר)이고 말씀은 ‘다바르’(דָּבַר)다. ‘미드바르’는 ‘∼로부터’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מ)’와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의 합성어다. ‘성소’도 ‘미크다쉬’(מִקֹּדֶשׁ)인데 그 단어 역시 ‘장소’를 뜻하는 ‘미’(מִ)와 ‘거룩’을 뜻하는 ‘카도쉬’(קֹדֶשׁ)가 결합된(시20:2) 단어다. 그만큼 ‘미드바르’(מִדְבָּר) 곧 광야란 ‘다바르’(דָּבַר)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장소요 환경을 뜻한다.
물론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에서 또 다른 단어들도 파생된다. 그 중 ‘디베르’(דִּבֵּר, 사5:17)라는 단어가 있다. ‘디베르’란 ‘목초지’ 곧 ‘목장’(pasture)을 뜻하는 말이다. 광야와 같은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때 그 인생이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의미다. 다윗은 물론이고, 모세와 바울도 광야로 부르신 이치가 그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에서 ‘데베르’(דֶּבֶר, 신28:21)라는 단어도 파생된다. ‘역병’ 곧 ‘전염병’을 칭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말씀을 떠나 살 때 그 인생에 역병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가나안 땅을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거역할 때 뱀에 물리고 전염병에 물든 일이 그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윗이기에 1편과 19편과 119편에서 말씀을 그토록 중요하게 읊조린 것이다.
유대교는 촛불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촛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맞이할 때 두 개의 촛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속적인 시간에서 신성한 시간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의식이다. 그것은 혼돈의 세상 속에 “빛이 있으라”(창1:3)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행위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떠올리는 기도다. 궁극적으로 그 빛은 인간의 영혼을 밝게 비추는 말씀의 빛이다.1)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이 속도가 느려터진 엘리베이터일 수 있다. 더욱이 왠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꼴일 수 있다. 그런 광야일수록 우리가 취해야 할 바가 무엇일까? 오직 광야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비추면 광야와 같은 환경은 결코 느리거나 답답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지금의 인생 길을 비춰주시기 때문이다.
1) https://www.jtsa.edu/torah/why-jews-light-cand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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