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2일에 미국 텍사스 댈러스(Dallas)의 도심에서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자의 탄환을 맞고 죽어 갔습니다.
그때 거의 같은 그 시각에 또 한 사람이 영국 런던에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소식은 케네디의 죽음으로 많이 알려지지 못했지만 그 또한 유명한 사람입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요 변증가이며 〈나니아 연대기〉를 쓴 옥스포드대 교수 C.S.루이스였죠.
그는 죽기 3년 전, 그의 나이 50대 말에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아내의 죽음으로 먼저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영국인 루이스가 미국 여인 조이 그래샴(Joy Gresham)을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는 이미 악성 골수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그녀의 병을 알고서도 정식으로 청혼했습니다.
그래서 58세에 그녀와 결혼을 해서 4년간 부부로서의 사랑을 나눈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45세였습니다.
루이스는 자기 아내가 죽은 후에 〈헤아려 본 슬픔〉이란 책을 남깁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눈물겨운 사랑의 이야기는〈새도우랜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죠.
그런 아픔 후에 루이스 교수는 “사별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그 고통은 바로 우리가 누려 온 행복의 일부분이다”라는 유명한 고백을 남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다 죽느냐이지 않겠습니까?
C. S. 루이스 교수도 아내가 세상을 떠나간 후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나는 인생에서 두 번 중요한 선택을 했는데 소년 시절에는 안전을 선택했고, 노년에는 아내를 맞이하며 또 한 번 선택을 했는데 이번에는 고난이었다. 그런데 그 고난이 기대하지 않은 위로를 동시에 주었다”
인생은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때에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성도의 합당한 자리에 머물러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그날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로 품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헤아려 본 슬픔〉의 마지막 장에서 루이스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묵상을 단테가 쓴 〈신곡〉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끝맺고 있습니다.
“단테는 그리워하던 베아트리체를 만나 신 앞까지 함께 갔으나 홀연히 베아트리체는 사라지고 그녀가 영원의 자리에 올랐음을 통보받는다. 단테는 비로소 실망을 떨치고 베아트리체와 함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한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75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 인생을 주님의 뜻 안에서 선하게 마무리하는 그날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날 베아트리체의 미소가 곧 우리의 미소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품에 안겼을 때 그때 주님은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실 줄 믿습니다.
그때 우리도 루이스의 아내가 남긴 말처럼 동일한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습니다.”
'책리뷰BookReview > 예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0) | 2022.03.15 |
---|---|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샌더스, 1009번 거절당한 끝에 승낙 (0) | 2022.03.10 |
사막의 형통, 크로스비의 찬송 (0) | 2022.03.10 |
사막의 우물, 생명 그 자체 (0) | 2022.03.10 |
제가 포기하면 아들도 포기하게 될까봐 (0) | 2022.03.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