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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우리는 닷새만에 그들에게 가서(행20:3-6)

by 똑똑이채널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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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지난 주일 오후에 딸아이를 대학교 기숙사에 보내주고 왔습니다.

왕복 7시간 넘게 걸리는 게 여간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그 동안 함께 살았던 딸아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었죠.

괜히 허전하고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우리는 닷새만에 그들에게 가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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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딸아이가 대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기숙사 생활을 헤쳐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뭐든지 너 혼자 일어나고 너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대학생활이 자유인 것 같지만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어떤 친구와 선후배를 만날지, 어떤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지, 딸아이 스스로의 문제임을 강조했죠.

 

대학교에 들어가 그런 목표를 제시해 줬습니다.

주일날은 학교 앞에 대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도록 했죠.

그리고 졸업하기까지 산업기사 자격증과 전기기사 자격증만 따서 졸업하도록 말이죠.

그걸 감당할지 모르겠지만, 낯선 곳에서 잘 적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모의 품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겠습니까?

때로는 상대하기 버거운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인생에 뜻하지 않는 일을 겪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때마다 그런 역풍이 순풍이 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사는 길 밖에 달리 없는 것이죠.

그런 역풍을 피해고 도망칠 게 아니라 그것을 주님의 뜻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때 주님께서 순풍으로 변화시켜 주기 때문이죠.

 

(깨달음)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다윗은 19살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죠.

하지만 20살 초반에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신세를 겪어야 했죠.

 

그런데 그 기간이 무려 8년이나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땅만 도망쳐다닌 게 아니라, 블레셋으로 갔다가, 유대 남단 광야로 갔다가, 또 룻의 고향 모압으로 피했죠.

그리고 급기야 블레셋의 시글락 지역에 숨어 삵게 되었는데, 바로 그 어간에 사울이 죽자,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죠.

 

왜 그렇게 빙빙 돌고 돌게 했던 것일까요?

그 모든 과정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 것이요, 궁극적으로 유다 지파와 인접한 그곳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역풍이 드디어 순풍이 되어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적용)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죠.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욱이 내가 원하는 바와는 달리 내가 상대하기도 버거운 사람도 많고, 그 일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왜 빨리 해결되지 않고 뜸을 들이시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죠.

하지만 지나놓고 나면 그 힘든 과정들이 주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죠.

그 과정이 없었다면 더 깊은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이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를 건너갔죠.

그 전에 바울은 3년 넘게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죠.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평일에는 텐트를 만들었고, 안식일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엔 티랄노스의 스콜레를 빌려 오수 시간에 복음을 전했죠.

그때 천막 만들 때 땀을 닦던 천조각과 앞치마 격으로 사용하던 보자기로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에게 얹을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죠.

 

그 일로 제사장 스와게의 7아들이 흉내내기도 했는데 그들은 귀신들린 자에게 되레 제압당하고 말았죠.

더욱이 바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본 마술사들도 은전 5만이나 되는 책값의 책을 모두 불태우면서 주님께 돌아왔죠.

 

그런 놀라운 역사와 함께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듣게 되었죠.

파벌문제, 음행문제, 제사음식의 문제, 은사 문제 등 여러 문제를 듣고 바울이 2번에 걸쳐 방문했죠.

하지만 그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자 바울은 네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중에 남아 있는 게 고린도전서와 후서죠.

물론 그 와중에 젊은 제자 디모데를 보내 해결해보려고 했고, 그도 안되자 나이든 디도를 보내서 해결코자 했었죠.

 

바로 그 와중에 에베소에 바울이 머물 때 그런 사단이 나고 말았죠.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동종업자들과 함께 짜고 에베소 시민들을 선동해서 연극장으로 들어가 난동을 피운 사건 말이죠.

그때 바울의 동역자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끌고 들어가서 2시간 넘게 소란을 피웠죠.

다행히 서기장이 군대를 동원해서 그들의 집회를 해산하게 되었죠.

바로 그 모습을 목격한 바울은 그때가 자신이 에베소를 떠나야 할 때를 감지하고, 곧바로 드로아로 이동해 배를 탔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은 그것이었죠.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 항구에서 배타고 유럽대륙으로 건너갔는데, 그때 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테네 그리고 고린도까지 갔다고 말이죠.

그곳 고린도에 가서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그 교회 성도들에게 대접받고 편하게 호위호식했다고 했습니까?

 

아니죠.

이전에 여러 문제로 인해 다툰 성도들을 감싸주고 회복하도록 바울은 섬겼던 것이죠.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곳에서 석달 동안 곧 3개월 동안 머물 때 로마교회를 향해 로마서를 써 보냈다고 했죠.

 

그래서 진정한 나이듦이란 어떤 나이듦인지 생각해 봤었죠.

노인이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존경받는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죠.

노인이란 말 대신에 시니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나이가 들어서 물러날 때 물러나는 사람, 그러면서도 뒤에서 묵묵히 섬겨주는 사람이 진정한 시니어라고 했습니다.

50대 후반을 달리는 바울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요, 우리가 닮아야 할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거기 석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원해) 여기에서 석달 머물렀다는 것은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물렀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있다는 단어가 그냥 머무른 게 아니고 일하다, 섬기다는 뜻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믿음으로 북돋았다는 뜻이죠.

더욱이 그곳에서 3개월간 섬기면서 로마교회를 향해 로마서를 써 보냈다고 했죠.

 

문제는 그 이후인데, 3개월이 지나 이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거쳐 안디옥교회로 돌아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공모하다는 헬라어 에피불레’(ἐπιβουλή)음모를 꾸미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는 배에서 바울을 바다에 던져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었습니다.

왜죠?

바다 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바울을 죽이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사실을 바울이 알게 된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알려줬는지는 본문에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이었죠.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는데, 바로 그 음모를 알게 된 바울이 어떻게 했냐는 점이죠.

바울은 그 사실을 알고 곧바로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이용해 아테네,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 네압볼리까지 가야 했죠.

그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고린도에서 네압볼리까지 육로로 600km가 넘습니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300km니까 두배나 더 걸리는 거리죠.

그 거리를 50이 넘은 사람, 그 당시의 기준으로 초로의 늙은 몸을 이끌고 간 것이죠.

 

다만 그때는 예루살렘교회에 기근이 든 상황이었죠.

그래서 자신이 들린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교회에 구제헌금을 요청한 터요, 그 교회의 대표자들과 함께 가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4절에 나와 있는 명단입니다.

 

(본문2)그런데 본문 5-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깨달음)여기에 우리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쓴 의사출신의 선교사 누가를 말하는 것이죠.

 

사실 누가는 2차 전도여행때 바울을 만나 복음을 영접하고 그때 전도행렬에 동참케 되었습니다.

그때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바울과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까지 빌립보로 들어갔죠.

그런데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집에 빌립보교회가 태동이 됐는데, 누가는 그곳에 남아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돌보게 되었죠.

그때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에 왔다가 안디옥교회에 왔고, 이후 3년간의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다시금 고린도에 갔다가 육로로 빌립보에 들러 누가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2차 전도여행때 바울과 헤어졌던 누가가 지금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다시 만난 셈입니다.

거의 6년 정도 걸려서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과정이 계획에 있던 일입니까?

만약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곧장 안디옥교회로 갔다면 바울과 누가는 빌립보에서 만나지 못했겠죠.

바꿔 말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갈 때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육로로 이동했기 때문에 만나게 됐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역풍이 오히려 주님의 순풍이 되게 해주신 격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누가가 6년만에 만나게 된 일과 함께 진짜 역풍이 불어닥친 일이 있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빌립보에서 드로아에 닷새만에도착했다고 하는데, 본래 이틀이면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사도행전 1611절에 나오는데,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빌립보의 네압볼리 항구까지 이틀이면 도착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닷새만에’, 5일이 꽉 차서 도착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풍랑 곧 역풍을 맞아 배가 둥둥 떠다니다가 가까스레 드로아 항구에 당도했다는 뜻입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고린도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빌립보까지 600km를 걸어오는 동안 바울이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빌립보의 외항 네압볼리에서 5일이나 걸려 배를 타고 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겨우 드로아에 도착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자를 피해 600km를 걸어 올 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의사 누가를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것이죠.

2일이면 곧장 당도할 드로아인데 지금 5일이나 걸리게 된 이 과정도 답답하지만, 이후에 드로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 앞에 바울은 또다시 감사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 다음에 살펴보면 알겠짐나 드로아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유두고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기 때문입니다.

 

(주문)그렇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 인생에 역풍을 만나게 하시지만 그것이 순풍이 되고 더 놀라운 은혜로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의 자식이 너의 품을 떠날 때 씁쓸하고 울적하겠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손에 의탁해야 하는 일이지 않겠느냐?”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이 인생의 앞길에 얼마나 많은 역풍을 만나고 힘든 일도 겪겠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볼 때 필요한 일이지 않겠느냐?”

다윗도 곧바로 왕이 되면 좋겠지만 8년 넘게 도망자 삶을 산 것도, 그것도 유대 광야를 전전긍긍한 이유도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의 왕으로 먼저 세우시려는 뜻이 있지 않았더냐?”

바울도 음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셔서 600km를 걸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를 만날 수 있지 않았더냐?”

더욱이 빌립보의 네압볼리 항구에서 드로아까지 이틀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지만 5일이 걸린 역풍을 만난 것도 주님의 섭리속에 있던 일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인생의 역풍을 만났을 때 그것을 역풍이라고만 생각지 말고 오직 믿음의 순풍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내다봐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이 음모자들을 피해 600km를 걸었지만 그속에서 누가를 만나리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겠느냐?”

“6년만에 다시 만난 누가를 통해 바울은 육신의 몸을 그때부터 맡기면서 마지막 사역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더냐?”

더욱이 네압볼리에서 드로아까지 5일이나 걸린 까닭에 드로아에서 주일예배를 통해 3층다락에서 떨어진 유두고의 생명을 주님께서 다시 살리신 은혜를 도구가 되지 않았더냐?”

네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네 인생에 역풍과 온갖 음모가 도사릴때도 바울을 바라보며 오직 주님만 의지하면 좋겠구나.”

 

(찬양) 나 약해 있을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 당할때에도 주님이 지켜 주시고

나 실망 당할때에도 주님이 위로 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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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외국 어린이 동화 중에 개미들의 사랑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 개미가 큰 길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 개미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 개미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큰 길을 건너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큰 길은 오래되어 낡고 험한 아스팔트 길이기 때문에 아버지 개미는 무척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개미는 아들에게 건너갈 때 쓰라고 아주 기다란 지푸라기 두 개를 등에다 업혀 주었습니다.

이 아들 개미는 이것을 왜 가져가야 하느냐고 아버지께 항의했지만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투덜거리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아스팔트에 상당히 넓어 보이는 갈라진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는 개미에게 깊은 벼랑과도 같은 난관(難關)이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낙담한 채 등에 업고 있던 지푸라기 두 개를 팽개치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푸라기가 그 틈새 사이로 떨어져 어느새 틈새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지푸라기가 결국은 구원의 다리를 만들게 된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그 청년 개미는 아버지 개미의 지혜에 감탄하며 감사를 드렸던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도 때론 그와 같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어 보이고, 역풍 같아 보이는 일들이 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죠.

 

(내음성)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부딪힐 때, 그것을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실 축복의 문으로 여기게 해주세요.”

아들 개미의 등에 아버지 개미가 짊어준 지푸라기 두 개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아스팔트 길을 잇는 다리였네요.”

바울이 암살하려는 음모자들을 피해 600km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그 길은 고난의 길이 아니라 누가를 만나는 섭리의 길이었네요.”

빌립보의 네압볼리에서 드로아까지 이틀이면 충분한 거리를 5일 동안 표류하며 도착한 것도 그곳의 유두고를 살려내는 놀라운 은혜를 덧입게 하시는 과정이었어요.”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데 때로 내 인생에 역풍이 불고 고난이 닥쳐올 때 낙심치 말고 주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매 순간순간 주님만 바라고, 주님만 의지하며 살게 해 주세요.“

 

(찬양)나 약해 있을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 당할때에도 주님이 지켜 주시고

나 실망 당할때에도 주님이 위로 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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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참회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제물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것을 누리게 하시길 원하신 분입니다.

 

때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인생의 역경과 역풍이 불어오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숨은 뜻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축복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시는 게 그것이죠.

다윗이 8년간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다닐 때 대부분 유대 광야지역을 돌게 하신 것도, 유대 지파의 왕으로 삼기 위함이었죠.

사울이 고린도의 음모자들을 피해 빌립보까지 600km가 되는 길을 걸어가게 한 것도, 그곳의 의사 누가를 만나 남은 일생을 육신적으로 맡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도, 우리의 자녀들의 인생까지도 친히 책임져주시고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덧입도록, 이시간 주님께 고백의 기도, 다짐의 기도를 올려드리도록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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