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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고소장을 쓰게 하라(욥31:1~40)

by 똑똑이채널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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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욥의 세 친구와 대화가 끝나고, 이제 젊은 사람이요 욥과 세 친구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 엘리후가 등장하기 직전에, 막간, 곧 휴지기를 통해 욥의 독백을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욥이 고백하는 최후 진술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자기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 극렬해 세 친구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까지 조롱하고 비난하는데,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이라고 했죠. 그 침묵의 기간이 너무 길면 의로운 욥이라도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게 아닌지 의아해한다고 했죠.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불의한 자들이 설치고 잘되고 승승장구하고, 그러나 의롭게 사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고 어려움에 빠진다 해도,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코 악한 자를 징벌하시고, 선한 자를 상급으로 채우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 땅의 현실에만 시선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은 지금 코 앞의 현실만을 두고서 평가하고 비난하게 되죠. 하지만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과 이 세상의 현실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시선을 갖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분명코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항변하고, 한탄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무죄, 곧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진술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서 11절을 읽을 때 욥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었습니까?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온전하고 곧 퍼펙트하고, 정직하고 곧 거짓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그의 세 친구조차, 심지어 욥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조차 욥을 비난하고 나섰지 않습니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다 거둬가시게 하겠느냐, 다 인과응보식의 관점으로 욥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상황이었죠.

이때 욥이 괴로운 것은 지금 처한 굶주림, 악창 곧 피부암,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는데,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친구들이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평가하는 것처럼, 인과응보식의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아심을 갖는다는 점이요, 더욱이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더욱더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독백을 알리는 마지막 내용에서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이전에 세 친구에게 고백했던 자기 의로움, 또 욥기서 서두에서 말한 온전한 삶, 정직한 삶,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그 삶을 실제로 변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7~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내가 거짓된 길을 쫓았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을 묻혔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뿌리째 뽑아버리도록, 그런 손해가 입도록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자신은 그런 거짓된 삶을 살지 않고, 정직한 길을 걸어왔다는 주장입니다.

9~12절을 또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자기가 다른 여인에게 유혹받아 그녀를 범하기 위해 숨어 기다렸다면, 자기 아내가 그렇게 놀아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내가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했을 경우에 자기 소출이 모두 뿁혀 버리기를 원한다고 말이죠. 그만큼 다른 여인을 범한 적도 없고, 그로 인해 재판석에 앉아 본 적도 없이, 나는 온전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자신이 거느린 남종과 여종에게 행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어긋나게 행했거나 악하게 행했던 적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있겠느냐는 것이죠.

16절에서는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욥은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돕고 살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먹을 것, 곧 떡덩이와 조각을 과부나 가난한 자에게 베풀며 살았다는 것이죠. 그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며 기를 정도로, 베풀고 사랑하며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의복이 없이 죽어가거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게 없어 못 본 체 했다면, 내 팔과 어깨가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을 돕고 섬기며 살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24~28절이 이렇습니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순금을 의지하거나 소망을 두지 않았다는 것, 재물을 탐하거나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뜻이죠. 만일 재물에 유혹되어 그릇된 방법으로 재물을 취했다면 분명코 세상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는 말이 본문 35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누구든지 내 변명에 거짓이 있다거나 불의함이 있다면 고소장을 써서 나를 고발하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욥이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나는 남의 재물을 탐한 적도 없고, 남의 아내를 욕보이려고 한 적도 없고, 만일 그랬다면 벌써 세상 법정에 서지 않았겠냐고, 오히려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를 돕고 베풀며 섬긴 자였다고, 이렇게 정직하고 온전하며 의로운 삶을 산 자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세 명의 친구들이 세 차례에 걸쳐 이야기한 인과응보론에 대한 반박이요, 또 그들뿐만 아니라 어제처럼 나이 어린 사람들조차 자기를 비판하고 조롱하니까 최소한도의 자기변명을 정확하게 밝히고자 함이죠.

그러나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걸 믿어줄 리가 없죠. 바로 이때 크리스천이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 정직함과 자기 의로움을 믿어주지 않을지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믿어주신다는 확신 속에 인내하는 것이죠.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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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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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욥의 세 친구도,

나이 어린 사람들도,

현실의 관점으로 욥을 믿어주지 않고 비난했습니다.

저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럴 때가 있는 줄 압니다.

그때 저희는 세상 사람들의 지지보다도 오직 주님의 신뢰와 주님의 지지 속에서 하루하루 인내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더욱 새롭게 해 주실 때가 있을 줄 믿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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