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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34:1~37)

by 권또또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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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우리는 엘리후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보다도 훨씬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 세 명의 친구들처럼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입장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었죠. 오히려 욥에게 소망과 격려를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죠.

사실 이전에 등장했던 욥의 세 친구는 현재 욥이 겪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 대경실색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숨겨둔 악행이 없다면 그런 고통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욥의 고통이 무서운 죄악의 결과임을 확신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단죄, 그 정죄를 31장까지 이어나갔습니다.

물론 욥도 그에 뒤질새라 자기 의로움을 그 친구들에게 계속 항변했죠. 욥은 자기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게 다 잘못된 해석이고, 근거 없는 추론이라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 친구와 욥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등장한 사람이 엘리후였습니다. 그는 비록 세 친구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욥의 세 친구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욥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욥이 주장한 자기 의로움이 왜 잘못된 것인지 바로 짚어 주었고, 또 그 친구들의 무지함도 바르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37장까지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욥도 그렇고 그 세 명의 친구조차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엘리후가 이야기하는 게 옳다는 뜻이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상징이기도 하고, 또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죠.

 

 

오늘 본문에서도 엘리후가 욥을 향해 깨우치도록 이끄는데, 그것이 근거 없는 이야기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엘리후는 처음부터 양측의 대화를 주의 깊게 경청했던 것이고, 그래서 욥이 했던 발언이나 태도를 통해 욥의 오류를 짚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엘리후를 제외한 욥의 세 명의 친구가 욥을 범죄자처럼 몰아간 데 대한 변론이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는 욥이 자기 무죄, 곧 자기 의로움을 변론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 의로움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이죠. 바로 그 점을 엘리후가 어리석다고 지적하는데, 그런 지적은 하나님께서도 나중에 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욥기서 408절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는 대개 권선징악으로 결론을 내지 않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 말이죠. 그러나 인생사의 복잡한 문제들을 권선징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법이죠. 그래서 종교는 좀 더 고차원적인 해법을 제시하는데, 예를 들어 불가에서는 사람의 업보로 인해 고해(苦海)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다가 회귀한다는 윤회설을 말하죠. 인간의 삶 자체를 고통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길은 욕심집착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라고 말하죠.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이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때문이죠.

욥의 세 친구도 그렇듯 전래동화가 지니고 있는 권선징악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러한 친구들의 논지에 휘말려, 자신의 고난이 자신의 행실 때문이 아님을 변론하다가 그만 자신은 죄가 없고 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죠. 그래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면서 공의의 하나님을 놓고 저울질했던 것이죠.

엘리후가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욥의 오류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다가 하나님의 절대성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오류를 범한 것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욥을 향해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오히려 정죄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엘리후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5~37절입니다.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엘리후의 비판은 앞선 세 친구의 신랄함에 비해 그 강도가 세면 셌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욥은 엘리후의 지적에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뼈아프기는 해도 그의 지적이 근거 없는 지적이 아니라 충분히 근거 있는 지적이고 정당한 지적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욥기는 지혜서로 분류됩니다. 그 이유는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욥이 친구들과 변론에서 자기 의로움을 입증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그 의로움을 인정받는 데서 끝나버렸다면 욥기서는 지혜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욥은 앞선 세 친구의 근거 없는 비방과 정죄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치밀한 논리와 강한 어조로 항변하고 스스로를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자신의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짚어냈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했을 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후의 비판에 이어 하나님께서 최종 결론을 내리실 때에도 욥은 더 이상 자기 의로움을 주장치 못했죠. 오히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서 423절에 그렇게 말하죠.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만큼 욥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정당한 지적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욥의 지혜와 욥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고난의 의미를 탁월하게 해석해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고난 앞에서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참된 지혜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욥기서가 분명한 지혜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탁월한 정치력과 지도력을 지닌 왕이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범죄했을 때, 그리고 그 죄를 신랄하게 지적받았을 때,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그를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던 것이죠. 위대한 인물은 허물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위대한 사람조차도 크고 작은 허물과 약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위대하게 사용하시는 것은 자기 연약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의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모호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선과 절대악,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선가 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논리로 상대방을 규정짓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또 상대방 앞에서 자기 의로움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욥처럼, 다윗처럼, 자기 연약함을 들여다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자세죠. 죄 많은 세상에서 그것보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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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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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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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이 세상에는 갖가지 논리와 주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중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붙들며 살고 있습니다.

절대악과 절대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저희입니다.

그렇기에 주님, 우리에게 올바른 분별력을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밀려드는 고통 속에서도 주의 전을 들고 나며 주님의 꼴을 먹게 하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분별할 수 있는 참된 지혜자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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