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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욥17:1-16절)

by 똑똑이채널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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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서는 서론과 본론 결론으로 나뉘는데, 서론에는 욥의 특징 곧 욥이 얼마나 의롭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담겨 있었죠. 그런 욥에게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재산 다 잃게 하고 자식들 다 죽게 하고, 자신의 몸에 악창이 들끓는 처지에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죠. 그로 인해 욥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죠. 그렇게 고통에 처한 욥에게 세 명의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기 시작하는데, 7일이 지나 그들이 차례로 하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았죠. 그들이 욥과 나눈 첫번째 대화와 토론은 욥기서 4장부터 14장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세명의 친구와 욥이 나눈 두 번째 대화는 욥기서 15장부터 시작되었죠. 두 번째 대화때도 맨 처음 나선 사람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였죠. 그는 욥의 세 친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요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서 삶의 경륜과 연륜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가 두 번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는데,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에 대해 욥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자신도 잘 알고 있으니, 차라리 하나님께 내 상황을 호소하는게 낫겠다고 이야기했죠. 그것이 어제 읽은 16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 말씀은 어제에 이어서 욥이 계속 대답하는 내용입니다. 욥기서는 서론과 결론을 빼면 대부분 욥과 친구들이 나눈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든 대화의 내용은 시의 형식으로 기록돼 있죠. 욥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의 주장은 한결같죠. 인간의 고난이 죄와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어떻게 주장을 합니까? 욥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죠. 자신이 겪은 삶을 통해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죠.

그래서 욥은 첫 번째 세 명의 친구들과 토론할 때처럼, 두 번째 대화의 물꼬를 튼 엘리바스의 견해에 대해서도 여전히 반박을 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대한 탄식과 하나님께 대해 호소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은 첫 번째 부분이고, 3-9절은 중간 부분, 그리고 10-16절은 끝부분입니다. 첫 부분과 끝부분은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한 탄식을 고백하고 있다면, 중간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호소를 담고 있습니다.

첫 부분과 끝부분은 욥이 처한 상황과 미래의 암울함을 탄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 앞에 의인 중에 의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죠. 그런데도 그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가 그렇게 고난을 받으면 세상 사람들은 수군거리게 되죠. 무슨 천벌 받을 짓을 했길래 저렇게 됐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욥의 상황을 주시할 때, 욥은 하나님 앞에 크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데도 욥이 고난을 당하는 상황을 어떻게 우리가 수용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리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셨죠. 그런데도 고난의 잔을 마셨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흉악한 죄인처럼 죽으셨습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과 로마 군병들은 모두 손가락질했죠.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길래 저렇게 극악무도한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처형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정도였다면, 욥은 당연히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에 충분했겠죠.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욥의 입장이 되면,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고난을 받게 되면, 그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나 그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기꺼이 세상의 손가락질과 수모를 다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것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거나 자괴감에 빠지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내가 받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분명코 더욱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열어주시려는 뜻이 있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래서 믿음은 기다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기다리되, 그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기다림으로 가꿔 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죠. 아무리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하나님과 더욱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면, 그 기다림은 나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죠.

 

오늘 읽은 말씀의 서론과 결론 부분에 욥이 자기 자신을 탄식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했죠. 본문 1절에 그렇게 탄식합니다. 나의 기운이 끝났고 자신의 인생의 날이 다 되었으니 무덤에 들어갈 죽음이 준비되었구나

14절에서는 무덤’, 13절과 16절에서는 스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죽은 자의 영혼이 내려가는 어두운 세계로 여겼던 곳이 스올입니다. 지금은 그 스올을 보통 지옥으로 생각하죠. 그만큼 욥이 당한 고통이 혹독해서 자기 자신을 탄식하면서 죽을 일만 남았다고, 스올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죠. 욥이 이런 절망과 탄식을 한다고 해서, 자기 생을 끊고자 자살을 내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지 육신의 때가 다하지 않았는가 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한 것이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분들은 다들 죽음을 내다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욥도 그런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탄식하는 배경 속에는 자기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이 섞여 있습니다. 2절에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12절에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여기에서 욥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욥을 향해 위로하러 왔지만 오히려 공박하고 논박하고 비난하는 친구들이죠. 그들 때문에라도 더욱더 살아갈 소망이 없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론과 결론에서는 그렇게 탄식할지 몰라도 본론에서는 욥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자세로 나아갑니다. 8절 말씀처럼 정직한 자가 세상의 불의함 때문에 놀랄 때가 있고, 9절 말씀처럼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야 한다고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모습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정죄할지라도, 의인은 그 고난 중에서도 끝까지 바른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끝 날에 반드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관점으로 욥이 하나님께 호소했던 것입니다. 자기 친구들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비난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걸어 온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다보면 하나님께서 분명코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절망 속에서 탄식하게 되더라도, 그 탄식으로 끝나버릴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실 때가 있음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 회복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더라도, 더욱더 정직하고 의로운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께 아뢰는 친밀한 관게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회복에 대한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재 나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욥처럼 하나님께 기대며 하나님의 섭리에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며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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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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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절망과 고통 속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하심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세상 속에서 의롭게 살다가 때로 고통을 당해도,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더라도, 묵묵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길을 더욱더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선하고 아름답게 응답하실 때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더욱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고난의 자리를 오늘도 바라보며 저희가 처한 삶의 환경에서 새 힘과 용기를 갖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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