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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욥14:1-22)

by 똑똑이채널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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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참 좋지 않습니까? , 여름, 가을, 겨울, 그 사계절 가운데 가장 좋은 계절은 어느 계절입니까? 각자 성격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죠. 저는 봄과 가을이 그나마 좋습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는 계절이기 때문이죠. 물론 어린 시절에는 겨울철이 그나마 재밌었죠. 눈썰매를 타고 동네 위에서 아래로 쌩쌩 달리던 그 시절은 아무리 추워도 춥지 않고, 다음날 또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른들은 다르죠. 눈이 오면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기 때문에 눈이 지겹다고 하죠. 물론 그렇게 꽁꽁 얼어붙던 그 시절에 어른들이 좋아하는 게 있었죠. 그토록 춥고 얼어붙어야 벌레들도 다 죽기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혹독한 추위를 통해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것은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이 순탄하고 잘 나가면 주위에 사람들이 붙는 법이죠. 그런데 그런 친구나 아는 사람이 인생의 혹한기를 거칠 때 어떻습니까? 그 속에서도 진정한 친구만 그 사람 곁에 남는 법이죠. 자신의 유리함과 불리함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친구가 고통의 혹한기를 지날 때 함께 하지 않는 법이죠.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그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상관 없이, 잘 나갈 때는 물론이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혹한기를 지날 때도 늘 함께 하는 법이죠.

그런 모습은 진실한 친구도 그렇지만, 우리의 영원한 친구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실은 그런 모습이시죠.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술술 풀릴 때에도 그렇고, 우리 인생이 꼬이고 힘든 혹한기를 지날 때도, 그 속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인생의 혹한기를 지날 때 갖춰야 할 믿음의 자세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분 앞에 더 순전하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자세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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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을 찾아온 믿음의 사람들, 지혜의 사람들 곧 욥의 세 친구들이 있었죠.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그리고 나아마 사람 소발이 그들이었죠. 그들은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찾아왔죠. 하지만 욥이 당한 혹한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잠히 욥의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 자신들의 믿음을 자랑하며, 욥을 향해 공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보기에 욥이 당한 고통은 이유가 있고, 까닭이 있고, 인과응보식으로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욥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있으니, 그 징계를 달게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게 없는지 돌이켜 보길 원했죠.

그러나 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고 악을 멀리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런 자신에게 이런 고통의 혹한기를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러니 그 세 명의 친구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바른 말로 자신의 징계를 이야기해도 욥에게는 위로나 격려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꼴이었죠. 그러니 인생의 혹한기에 떠나가는 친구들이 얄미울 수밖에 없지만, 지금 자신과 함께 한다면서 자신을 더욱더 옥죄는 그 세 명의 친구들은 더더욱 얄미울 수밖에 없는 법이죠. 인생의 혹한기를 맞이한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곁에 있어 주긴 하지만, 오히려 더 차가운 시선으로 욥을 대하고 있으니, 그런 그들이 아무리 많다 한들 어찌 욥의 심령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욥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기도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위로나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때 그는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 앞에 아뢸 수밖에 없는 법이죠.

그래서 어제 살펴본 것처럼 욥기서 1320-22에서 욥은 하나님께 자신에게 임한 재앙을 거두워 주시고, 공포감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그렇게 간구했죠.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네게 대답하옵소서.” 그게 무슨 말씀이었습니까? 주님 내게 말씀하시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먼저 말씀드릴 때 제게 대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요청한 것이엇죠.

봄이 오면 세상에 죽어 있는 것 같은 나무도 새로운 싹이 나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인생의 혹한기를 맞이하고 있는 욥에게도 그런 새로운 싹, 새로운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런 싹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죽음만 가득한 것 같으니, 욥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에 처한 것이죠. 더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욥은 본문 14절을 통해 그렇게까지 고백을 합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절에서는 이렇게 고백을 하죠.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날이 끝나는 그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에 주께서 아무 말씀하시지 않을지라도 주님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언젠가 고난의 때가 끝나 주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 애타게 기다린 저는 당신에게 대답하겠습니다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간청하는 욥의 모습이 실은 우리가 주님 앞에 드려야 할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의 혹한기를 지날 때,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하거나 악을 자행한 게 없는데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이전에 내게 감동을 주셨던 주님의 말씀과 위로와 은혜마저 메말라버리는 지경에 처하는 상태 말입니다. 마치 사막같이 고독한 고통의 때를 지나야 하는 그 과정들 말입니다. 그로 인해 욥처럼 자신이 태어난 것조차 원망스럽고, 그런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다고, 한탄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 욥이 드린 기도의 자세입니다. ‘주님,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주님, 그때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하는 자세로 주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가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것 같고, 그 오묘하신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당신이 정하신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오묘한 섭리를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죠. 욥에게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하나님 같고, 인생의 혹한기에도 전혀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같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을 맞이하기까지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약속어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혹한기를 맞이한 믿음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자세요, 우리의 믿음도 그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특별히 인생의 혹한기를 맞이했을 때 드려야 할 기도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님,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주님, 그때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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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왜 내가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 없이 고난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주님께서도 인생의 혹한기를 맞이하고 있는 나를 보시고 아파하시면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람들의 몰이해와 오해와 비난을 겪으시면서도 예수님께서 그 길을 기꺼이 통과하셨듯이, 그리고 만 왕의 왕으로 승천하셨듯이, 우리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인생의 혹한기를 통과한 뒤 주님께서 베푸실 그 은혜의 자리를 약속어음의 믿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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