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윗이 정치적인 초석을 다진 헤브론에서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전부터 4년 동안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돌린 압살롬은 다윗을 향해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헤브론 주민들과 또 자기를 따르는 문무백관들과 무장세력들을 동원해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러 나섰죠. 그때 다윗은 아들의 쿠데타를 피해 성읍을 빠져나갔는데, 그 길목에 충성스런 신하들이 따라붙었죠. 블레셋의 가드에서 망명한 군사 600명과 그들의 인솔자 잇대, 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법궤를 맨 레위인들, 그리고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도 함께 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다윗은 제사장들에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과 왕궁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의 아들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주도록 당부했고, 후새도 압살롬 밑에 들어가 압살롬의 책사가 된 아히도벨의 계략이 무효화되도록 당부했죠. 그때 다윗은 그런 충성스런 신하들을 신뢰하였지만, 그만큼 그들을 위급한 때에 적재적소에 배치했지만, 그들만 믿었던 게 아니라, 그들 너머에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물론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그렇게 선한 사람들만 등장한 게 아니었죠. 자기 사심을 채우고자 물량공세를 펼친 시바도 있었고, 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며 흙먼지를 날린 사울의 친척 시므이도 있었죠. 다윗이 그때 위대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주는 게 무엇입니까? 시므이가 저 언덕빼기에서 자신을 향해 저주하며 먼지를 날려도, 그래서 다윗 곁에 있는 요압 장군의 동생 아비새가 나서서 그를 처단코자 해도, 다윗은 가만히 놔두도록 하죠. 하나님께서 지금 그에게 허락해서 하신 것이요, 혹시라도 그의 분풀이하는 그 일을 통해 나를 선하게 회복시켜줄지 모른다면서, 그가 저주하고 욕하는 일들을 내버려두도록 한 점입니다.
다윗의 피난길에 선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한 사람과 자신을 저주하며 모욕하는 사람들도 만났는데, 바로 그 시점에 압살롬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루살렘 궁을 찬탈한 압살롬은 맨 먼저 다윗의 후궁이자 아버지의 아내인 그 궁녀들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그녀들을 다 겁탈했습니다.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하도록 한 이가 아히도벨이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은 그 이후의 일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자신에게 1만2천명의 군사를 내 주면 자신이 다윗의 군대를 추격해서 칠 것이고, 자기가 직접 다윗 왕을 쳐 죽이겠다고 말을 하죠. 도대체 아히도벨이 왜 그렇게까지 다윗의 목숨에 집착하는가?
사무엘하23장 34절을 보면 본문의 아히도벨의 아들이 ‘엘리암’인데, 그 엘리암은 삼하11장 3절에서 밧세바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밧세바의 아버지가 엘리암이요, 엘리암의 아버지가 아히도벨이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밧세바의 친할아버지가 본문 속의 아히도벨인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손녀딸이 아무런 힘없이 끌려가 다윗에게 치욕스런 일을 당할 때, 자기의 사위 우리아가 적에 칼에 개죽음 당하도록 내몰림 당할 때 할아버지로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조용히 책사 노릇을 했지만 압살롬이 정권을 잡게 되니까, 무엇보다도 다윗을 향한 분풀이를 먼저 하도록 했던 것이죠. 그것이 곧 다윗의 후궁이자 아내들을 그 아들 압살롬으로 하여금 범하게 한 것이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 다윗을 자신이 군사를 데리고 가서 잡아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기어코 자신이 죽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본문 4절에서 아히도벨의 말을 압살롬도 그리고 그 장로들도 다 옳게 여기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부른 후새, 곧 다윗의 피난 길에 함께 따라나섰다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돌아가 신하인 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효화하도록 당부받은 후새가 내 놓은 계략 앞에 아히도벨의 계략이 쓸모 없게 돼 버립니다. 후새는 말합니다. 다윗은 전쟁에 능한 사람이라 지금 그를 추격해 봤자 어느 동굴에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고, 혹시라도 추격하다가 다윗의 군사에게 기습작전으로 패한다면 도리어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이 두려움에 떨 수 있으니, 차라리 날이 밝으면 온 군대를 소집해서 모두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다윗의 군사와 맞장을 뜨는 게 나을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압살롬과 지도자들이 14절을 통해 이렇게 반응합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압살롬과 온 지도자들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후새의 계략을 더 좋아하죠. 물론 그들이 후새의 계략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고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고자 그렇게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효화시킨 것이었죠.
그래서 후새는 그 같은 사실을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두 아들인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또 성밖으로 빠져나가 나루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윗에게 그 모든 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한시라도 빨리 이 나루터를 건너라고 당부해 주죠.
그래서 본문 22절에서는 후새가 전한 소식을 접한 다윗과 모든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새벽까지 요단강을 건넜고, 이어서 24절에 이른 것처럼 마하나임까지 도망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아히도벨은 어떻게 하는가? 본문 23절에 보니까, 아히도벨은 자기 계략이 실행되지 못한 것을 알고, 자기 고향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매어 자결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도 압살롬이 패할 것을 내다봤는지도, 그래서 자기 훗날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내다봤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서 해서 그 날 밤에 요단강을 건넌 다윗은 마하나임으로 달아났고, 아들 압살롬과 함께 다윗을 추격한 군사는 26절에 보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새의 계략, 곧 후새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대로 지금 다윗과 압살롬이 이끄는 부대 사이에 대 전투가 진행될 예정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곤고한 상황의 때에, 다윗 곁에 또 한 부류의 충성스런 신하 곧 선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본문 27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들이죠.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 그리고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그들인데, 그들은 다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피난길에 있는 다윗과 함께 한 군대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다윗이 도망치는 그 순간에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효화시키고 후새의 계략이 지지를 받도록 하셨는지, 다윗이 마하나임에 숨어 기진맥진한 상황에 이방 사람들까지 보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공급해주셨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죄를 범할 경우, 그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자녀들은 그 앞길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멸망케 하는 분이 아니라, 그 길목에서 선한 길을 내 주시는 분임을, 그리고 그 길목에 돕는 자들을 붙여주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의 선한 은총을 맛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연약한 상황에서 죄에 걸려 넘어진 다윗을 포기치 않으시고,
그의 피난길에 선한 도움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러할 진데,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더 가까이 살고자 하는 저희 모두에게 더 큰 은총과 놀라운 일을 성취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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