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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무엘하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삼하16:1-23)

by 똑똑이채널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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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쿠데타를 맞이해 다윗이 지금 예루살렘 왕궁을 빠져 피난길에 오른 상황입니다. 이때 다윗 곁에 몰려든 사람들, 곧 피난길에 함께 하겠다고 따라나선 이들이 있었죠. 블레셋의 가드 지역에서 망명한 군사 600명과 그 대표자 잇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온 레위인들과 그들을 이끌고 있던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다윗의 친구이자 책략가인 아렉(a city 64 km northwest of Ur toward Babylon on the left bank of the Euphrates river) 사람 후새가 그들이었죠. 모름지기 피난길에 따라붙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법인데, 다윗은 그런 그들을 다 함께 피난길에 오르게 하지 않았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섬기도록 했고 대신에 어떻게 상황이 전개되는지 자신에게 알려주도록 했고, 더하여 아랙 사람 후새도 압살롬에게 가서 아히도벨의 모략에 반대의견을 개진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다윗은 그렇게 자신과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을 그렇게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더욱 전적인 도움을 의탁하며 간구하며 나아갔죠

 

 

오늘 본문은 그 피난길에서 만난 또 다른 인물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아울러 압살롬의 책사 역할을 한 아히도벨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엿보게 해 줍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이 마루턱(산등성이)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개와 건포도 백송이와 여름 과일 백개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위로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하여 므비보셋의 종 시바였죠. 그는 과일과 음식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다윗에게 먹을 수 있도록 베풉니다.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온 시바에게 어찌 다윗이 고마움을 표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시바의 주인인 므비보셋의 안부를 물었죠.

그런데 시바는 자기 주인 므비보셋, 이전까지 왕궁에서 다윗과 함께 겸상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다윗의 총애를 받았던 두 발이 절둑발이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 대해 그 종인 시바가 어떻게 답을 합니까? 본문 3절 중반에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지금 시바는 자기 주인 므비보셋, 두 발이 절둑발이인 그 므비보셋이 사람들을 시켜서 사울의 왕권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지금 상황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죽이겠다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 그것도 다윗의 총애를 받으며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던 그 므비보셋이 역모를 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시바가 그렇게 고해 바친 것은 실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준 밭과 재물이 탐나서, 그것을 가로채고자 그렇게 거짓을 고해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다윗이 그렇게 이상한 말로 현혹하는 시바의 농간에 속아서 므비보셋의 재산을 시바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다단계에 빠져 퇴직금을 날리는 사람도 있고, 이단 사이비 종교에 빠져 부모와 자식지간이 파탄난 경우도 있고, 작은 돈을 투자해도 큰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등장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저주하고 나선 사람입니다. 이름하여 ‘시므이’입니다. 본문 5절에. 다윗 왕이 바후림(a town in Benjamin between Jerusalem and Jericho beyond the Mount of Olives on the way to Jericho)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시므이는 다윗의 사람들이 추격해 오면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는 위치의 계곡에서 다윗을 향해 악담과 저주를 퍼부붓고 돌과 오물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는 7절을 통해 다윗에게 ‘살인자’요 ‘사악한 자’라고 욕하고 있죠. 사실 우리가 아는 다윗은 사울 집안에 관대했습니다. 다윗이 도망자의 신분일 때에도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차례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해할 수 없다며 죽이지 않았죠. 또 사울이 블레셋의 연합군과 싸우다가 적의 칼에 맞아 죽어갈 때 자기 자신이 자결해서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다윗은 그와 그 아들 요나단을 위해 슬퍼하고 애통해했죠. 뿐만 아니라 요나단의 아들 곧 사울의 손자요 두 발이 절둑발이인 므비보셋을 자기 상에서 평생 먹도록 특권을 부여해 줬죠. 그런데도 왜 시므이는 다윗을 사울 가문의 살인자로, 사악한자로, 저주하고 나선 것일까요? 신학자들은 사무엘하 21장에 나오는 사건을 두고 해석하고 있는데, 그때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의 화를 달래기 위해 사울의 후손 7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준 사건이 있는데, 그 일을 두고서 지금 시므이가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고 나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시므이에게는 사울 왕가에 대한 참혹한 사건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다윗의 입장에서는 기브온 주민과 언약을 맺은 것을 임의로 파기한 사울의 행동을 바로잡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공의로움에서 행한 일이었던 것인데, 그것을 자기 집안이 피해를 본 것으로 여긴 시므이가 들고 일어나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므이의 행동에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시므이의 저주 소리를 잠재우겠다고 다윗의 신복 아비새가 나서는데, 그때 다윗은 본문 10-11절을 통해,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하죠. 더욱이 그의 저주를 통해 ‘나의 원통함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실지 모른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이겠죠.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데, 그 이면의 모습, 왜 그렇게 비난하는지는 돌아보지 않죠. 하지만 다윗은 그의 마음을 십분 받아들이고 있고, 또 그 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한 길을 열어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심정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그런 종류의 사람, 곧 자신을 속이려드는 나쁜 사람, 그리고 자신을 향해 비난 퍼붓는 못된 사람까지도 다 감수하면서 피난길에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15-23절은 예루살렘 왕궁을 접수한 압살롬에게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모습이죠. 본문 16절에서는 이때 아렉 사람 후새, 곧 다윗의 친구이자 다윗의 피난길에 함께 하겠다고 하던 그 후새가 다윗의 조언을 듣고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온 상황인데, 그가 압살롬을 향해 ‘왕이여 만세, 만세’하고 반갑게 맞이하죠. 물론 압살롬은 평소 다윗 곁에서 함께 하던 그 후새가 왜 다윗을 따라나서지 않았는지 의아해하자, 이제부터는 압살롬을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후새가 자기 뜻을 피력하죠. 물론 그것은 압살롬을 속이기 위한 일이었죠.

 

 

본문 20-23절은 압살롬의 책략가로 나선 아히도벨에 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압살롬이 왕궁을 장악하고서 해야 할 일은 일러줍니다. 이른바 다윗왕의 후궁들을 옥상에 올라가 범하도록 한 것이죠. 그런 일은 그 당시에 이방 왕이 한 성읍을 정령하면 그렇게 행한 관례가 있어서, 지금 압살롬을 하여금 아버지의 후궁이자 아내들을 범하도록 아히도벨이 부추겼던 것이죠. 물론 그 일은 사무엘하 12장 10절에 이미 예견된 일이었죠. 다윗이 범한 죄로 인해 집안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그의 아내를 누군가 범할 것이란 예고 말이죠. 압살롬이 그런 일을 꾀한 것은 모두 아히도벨의 지략에서 나온 일인데, 본문 23절은 그의 계략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신봉하고 있음을 밝혀줍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그야말로 아히도벨의 계략이 하나님의 뜻처럼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압살롬이 그를 더욱더 신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 다음 장에 가면 그의 지략보다 다윗의 보낸 후새의 지략을 압살롬과 대신들이 더 따르게 됩니다. 이유인 즉,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지략만을 신봉하는데 반해, 다윗은 후새의 지략도 믿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붙잡고 의지하며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인생의 길목에서 시바처럼 나를 현혹케 하는 사람, 시므이처럼 나를 비방하는 사람, 그리고 아히도벨처럼 나의 반대편에 지략을 펼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선하신 길을 열어달라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인생을 살다보면 나를 현혹하는 사람, 비방하는 사람, 반대지략을 펼치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나를 돌아보며 더욱 겸손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 속에서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해 주시되,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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