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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아니하고 비방하거늘(행19:8-10)

by 똑똑이채널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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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 2022년 한 해 동안 저마다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요, 신앙인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죠.

그를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농부가 가을철에 풍성한 결실을 맺고자 한다면 봄철에 밭과 논을 갈죠.

예전에는 쟁기로 밭과 논을 갈았다면 지금은 트랙터로 갈아엎죠.

왜 흙을 갈아엎습니까?

그래야만 씨앗을 뿌릴 수 있고, 그래야만 그 씨앗이 발아돼 싹이 나오고, 그래야만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밭이나 논을 갈아 엎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밭이나 논은 돌밭이라 갈아 엎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런 밭은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결코 싹이 나올 수도 없고 곡식이 자랄 수가 없는 법이죠.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아니하고 비방하거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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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까?

좋은 결실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밭과 논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에게도 마찬가지죠.

좋은 신앙의 결실을 맺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우리 심령의 밭을 갈아엎어서 부드러운 심령이 돼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말씀이 들어가고, 말씀이 자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적용) 그런 뜻에서 볼 때 나 자신은 매번 말씀을 들을 때 내 심령을 갈아엎는 자인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되죠.

부드러운 심령으로 갈아엎어야 내 심령의 밭에 말씀이 뿌려져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니까 말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맞아 1차 전도여행지를 돌아보고 곧장 에베소로 향했죠.

그때 요한의 제자들 곧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12명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알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른바 반쪽짜리 복음만 접한 요한의 제자들이었죠.

 

그런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느냐하고 물어볼 때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고백했죠.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전해줬죠.

아울러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음을 베푸셨고, 그 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린다는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았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님께서 임하셨죠.

그때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그때 말한 방언이 무엇이고 예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그들에게 임한 방언의 참된 목적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 말이죠.

더욱이 예언이란 점쟁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말씀으로 위로하는 것이라고 했죠.

또 누군가 교만하여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만치 말도록 권면하는 게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고린도전서 1419절에 이렇게 권면한 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교회에 너도나도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누구의 방언이 제일 큰 방언이냐는 논쟁까지 붙을 정도였죠.

그때 바울은 권면한 말이죠.

누구도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을 무수히 하는 것보다 남을 위로하고 남을 일깨워주기 위해 하는 다서마디 말이 훨씬 소중하다고 말입니다.

그를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바르게 격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바울이 세례 요한의 제자 12명에게 일깨워준 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방언을 하게 되면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고 깊이 할 수 있어서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이들을 공감하는 능력이나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격려의 말이 훨씬 더 가치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그것은 공개적으로 기도할때도 마찬가지 사실입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들도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나누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 어떤 방언보다도 훌륭한 방언이 되는 것이죠.

누군가 지친 이나 상처받은 이나 교만한 이에게 말씀으로 격려하고 바로 세워주는 이가 있다면 그 어떤 예언보다도 소중한 예언이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8-9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원해) 무슨 말씀입니까?

좀전에 말씀드린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어 성령이 임한 사건은 에베소에 오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행한 일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때 바울은 이전처럼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 곧 주님의 복음에 대해 강론하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보인 유대인들의 반응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곧 많은 유대인들 중에 몇 몇 사람들이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들 앞에서 주님의 복음을 비방했던 것이죠.

 

여기에 비방하다는 헬라어 카콜로게오’(κακολογω)악하게 말하다’(to speak evil of) ‘욕하다’(revile) '저주하다’(to curse)입니다.

바울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저주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훼방한 것이죠.

 

(깨달음) 여기에서 복음을 훼방하는 이들의 중요한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굳은 마음, 불순종, 그리고 훼방하는 단계죠.

왜 그들에게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고 복음의 싹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까?

 

그들의 심령이 부드러운 흙과 같은 심령이 아니라 돌같이 굳어버린 심령을 지녔기 때문이죠.

그러니 어찌 바울이 전하는 주님의 복음이 그들의 심령에 뿌리내리 수 있겠으며 복음의 싹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굳은 마음, 완악한 마음을 지닌 그들이라 복음 앞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복음을 훼방하고 모욕하는 것이죠.

 

(적용)그렇다면 그 반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의 심령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까지 자랄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 심령이 흙처럼 부드러운 심령인 사람,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 그 말씀의 증인이 되는 사람이죠.

바로 그 심령의 소유자에게 말씀의 씨가 자라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이 부드러운 심령이 되어 주님의 말씀이 자라고 싹이 나서 열매를 맺는 주님의 증인이 되길 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의 심령이 흙과 같은 부드러운 심령이냐? 아니면 가시밭 엉겅퀴밭 혹은 돌짝밭과 같은 굳은 심령이냐?”

주님께서는 너의 심령이 흙과 같은 부드러운 심령이 되길 원하지 않겠느냐?”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3개월간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이들은 말씀의 씨앗을 받고 새싹이 나지 않았더냐?”

하지만 그 심령이 굳어버린 자들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수도 새싹이 날 수도 없지 않았더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는 굳은 심령의 소유자들이었기에 그들은 주님 앞에 불순종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오직 흙과 같이 부드러운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복음의 새싹이 나면 좋겠구나.”

복음의 씨앗이 네 심령에 뿌려져 복음의 새싹이 나고 복음의 열매를 맺기까지 순종의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구나.”

그때 주님께서 너를 복음의 증인으로 삼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주님의 증인을 삼지 않겠느냐?”

 

(찬양)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발췌) 이동원 목사님의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모나리자가 있습니다.

그 그림의 크기는 가로 53cm 세로 77입니다.

저도 오래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한 여인이 웃고 있는 그림이죠.

신기한 것은 그 그림속 주인공인 모나리자의 웃음은 내가 어느 곳에 서 있어도 나와 눈이 마주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모나리자를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여인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전통적인 것은 그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이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것에 기쁨을 표현한 미소라는 것 말이죠.

 

또 하나는 그것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잘생긴 둘째 아들의 출산을 기대하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한 행복한 여인의 미소라는 설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미술 사학자요 미술 평론가인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는 다른 해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짧게 스치는 미소야말로 인생의 덧없음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여인의 왼쪽 어깨너머에 작은 다리(bridge) 하나를 그려 넣는데, 다리가 있다는 말은 강물이 흐른다는 뜻이라고 하죠.

그만큼 더없는 시간을 표현한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뒤의 풍경은 평범한 마을 풍경이지만 사람들이 하나도 살지 않는 태고적 원시 풍경입니다.

그러므로 모나리자의 미소는 태고부터 흘러오는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의 덧없는 찰나의 미소인 셈입니다.

모나리자 그림의 본질은 결국 시간에 대한 명상이라는 해석입니다.

 

(깨달음) 그렇기에 모나리자의 그림을 통해 깨닫는 게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허무한 실존의 인생을 살지만, 크리스천은 영원한 실존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사람들만 주님의 복음 앞에 흙과 같은 부드러운 심령을 지닐 수 있고 복음의 씨가 자라고 열매맺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크리스천만 모나리자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고, 바로 영원한 세상을 내다보며 살기 때문이죠.

 

(예화2)고든 맥도날드가 쓴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충동에 이끌리는 삶’, 그리고 소명에 이끌리는 삶이 그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충동과 본능과 감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일을 그르치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또 남에게 상처를 받고 살아가죠.

 

그러나 소명에 이끌린 사람의 삶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를 좇아 사는 자들입니다.

소명에 이끌린 삶을 사는 자들은 이 세상의 풍조를 좇기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죠.

 

(깨달음)그런 자가 복음을 들을 때 흙과 같이 부드러운 심령을 지니지 않겠습니까?

왜요?

그 사람은 이 세대를 본받는 게 아니라 영원한 세상 곧 천국을 내다보며 살기 때문이죠.

그런 신앙인이 말씀의 씨앗을 품을 수 있고, 말씀의 새싹이 나서 열매맺는 풍성한 주님의 증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죠.

 

(내음성)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기도를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모나리자처럼 영원을 사모하는 자로서 말씀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흙과 같은 부드러운 심령의 소유자가 되게 해 주세요.”

이 세대의 사람들처럼 충동과 본능과 감정에 이끌려 살지 않게 해 주세요.”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말씀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흙과 같은 부드러운 심령의 소유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복음의 씨를 품고 복음이 새싹이 나오고 복음의 열매를 맺는 주님의 소명에 이끌린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이 세상 사람들이 너나 할 것이 충동적으로 살지만 오직 저만은 바울처럼 사명에 이끌린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찬양)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www.aladin.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사는 자이겠습니까?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흙과 같이 부드러운 심령의 소유자들, 말씀앞에 순종하는 자들, 그리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증인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 크리스천이라야 일시적인 찰나보다 영원한 생명을 내다보며 주님의 복음의 씨앗을 품고 새싹이 나고 열매맺는 신앙인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런 크리스천이라야 충동에 이끌린 신앙인이 아니라 소명에 이끌린 신앙인,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신앙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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