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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놀라운 능력(행19:9-12)

by 똑똑이채널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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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지지난 주에 이동원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한때 미국의 워싱턴지구촌교회에서 10년간 사역을 했는데, 중보기도사역팀을 결성케 된 배경이었죠.

 

안식년을 맞아 여려교회를 탐방하고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그 무렵에 기도에 갈급함이 있었죠.

그때 제 3의 물결에도 관심이 있었고 빈야드교회도 직접 참석을 해서 예배를 드렸죠.

그런 교회의 예배는 역동성이 있고, 그만큼 찬양과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였죠.

더욱이 예배가 끝나면 그냥 가지 않고 담임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가는 일도 많았죠.

그 까닭에 이동원 목사님과 사모님도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예배 후에 기도를 받기도 했죠.

 

그렇게 1년 안식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왠지 자신은 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교회 사역에 복귀했을 때 왠지 모를 영적인 풍족함을 느꼈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고픈 마음이 들었죠.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났을 때 이전에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기도받을 사람은 나오라고 했죠.

그때 7-8명이 나와서 기도를 받았는데, 그 다음에 그들로부터 병이 치유받고 문제가 해결됐다는 간증을 들었죠.

그 이후 숫자가 더욱 많아져 중보기도팀을 결성케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놀라운 능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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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저도 그 간증을 듣고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는 예배후에 기도시간을 가질 수 없다면 설교가 끝나고 기도를 해야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설교 후에 기도를 하면서 성령님의 임재를 간구하며 축사기도도 했죠.

그랬더니 제가 느낀 것은 제 영이 맑아지고 왠지 청소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분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적용)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든지 당신의 주권적인 역사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병을 고치든 머리가 맑아지든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시든지간에 말입니다.

 

때로는 의사의 진단과 약을 처방받아 고쳐주시기도 하고 전적인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고쳐주시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과학기술만 매달릴 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내어 맡기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전해주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맞아 소아시아의 중심도시인 에베소로 왔습니다.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에베소에 오기까지 바울은 1차 전도여행지를 먼저 둘러봤죠.

그 후에 에베소 인근에서 12명에 달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성령님이 임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에베소에 왔을 때는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브리스길리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평일에는 천막을 만들었죠.

그러면서 안식일이 되면 그곳의 인근 회당에 나아가 구약의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했죠.

그렇게 하기를 석달즘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에 몇 몇 무리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훼방했죠.

그때 바울은 그곳을 빠져나와 따로 두란노 서원을 빌려 2년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누가 누가 복음의 거부자가 되어 복음의 훼방자가 되는가였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이 돌같이 굳어버린 자요, 그런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가 없고, 복음의 훼방꾼 역할만 한다고 했죠.

그와 반대로 흙처럼 마음이 부드러운 자가 주의 말씀을 품고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깨달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심령이 흙처럼 부드러운 자가 돼야 한다고 했죠.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심령이 품고 씨앗이 나고 싹이 나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했죠.

 

(전개)그런데 에베소의 유대인들 중에는 복음의 방해꾼들만 있는 게 아니라 흙처럼 복음의 씨앗을 품고 싹이 나는 사람들도 있었죠.

바로 그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을 빌려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 두란노 서원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서원’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콜레’에서 학교를 뜻하는 ‘스쿨’이란 단어가 파생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스콜레는 본래 토론도 하고 논쟁도 벌이고 강연도 하고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다목적 공간을 말합니다.

고대 로마 제국 시대에는 그런 스콜레가 흔했던 것이죠.

 

더욱이 베자사본(Codex Beza)에 따르면 그 스콜레의 주인인 튀란노스가 오전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에베소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 대에 튀란노스의 스콜레를 빌려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상가를 빌린 것이고 상가 주인이 오전에 사용했고, 바울은 점심무렵에 낮잠자는 시간에 이용해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본문)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기를 2년간 했는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본문 11-12절에 증언해주죠.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원해)여기에 ‘놀라운’으로 번역된 헬라어 ‘투르카노’(τυγχάνω)는 ‘두드러진’이란 의미와 ‘이례적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바울을 통해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능력’이라고, 다시 말해 이례적인 능력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능력입니까?

바울이 평소 사용하던 손수건과 앞치마로 병든 사람에게 얹을 때 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가는 일이죠.

여기에 ‘손수건’으로 번역된 헬라어 ‘수다리온’(σουδάριον)은 바울이 천막을 만들 때 땀을 닦는 천조각을 말합니다.

그리고 ‘앞치마’로 번여고딘 헬라어 ‘시미킨디온’(σιμικίνθιον)으로 천막 만들 때 두른 작업용 앞가리개입니다.

 

그렇게 땀을 닦는 천조각과 앞가리개용 보자기를 병자에게 얹을 때 병이 떠나가고 귀신들린 자에게 얹을 때 귀신이 떠나간 것이죠.

그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깨달음)그런데 이례적인 능력은 에베소 사람들과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능력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는 결코 이례적인 능력이 될 수 없는 것이죠.

 

(원성) 이것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귀신의 시달림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몸에 손을 얹거나, 병자를 마주보고 명령하기도 하셨죠.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신 건 아니셨죠.

 

하혈이 그치지 않는 혈루증으로 12년 동안이나 고통당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전 재산을 치료비로 다 썼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죠.

그 가련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이미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죠.

 

그러자 그녀는 무리를 뚫고나가 예수님의 뒤쪽에 가서 예수님의 옷에 가만히 자기 손을 댔죠.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도 혈루증이 나을 것이라 믿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임했고, 그녀의 혈루증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또한 그녀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한 것 아닙니까?

 

(원성2)그런 놀라운 능력, 이례적인 능력은 또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16절을 보면 베드로의 치유사역이 나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데리고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서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라도 덮이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베드로의 그림자가 그 병자들 위에 덮이면 그들의 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림자는 실체 없는 허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베드로의 그림자가 병든 자에게 덮이면 병이 떠나고 귀신이 떠나갈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그림자를 통해 역사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문)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주님은 우리의 사소한 것을 통해 이례적인 역사와 능력을 베푸시는 주님이시오 그를 통해 주님과 깊은 관계를 엮어나가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주님께서는 너에게도 하찮은 것을 통해 얼마든지 이례적인 능력을 베푸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너는 믿고 있느냐?”

바울이 일할 때 사용하던 손수건과 보자기로도 병든 자를 고치게 하고 귀신이 떠나가게 하신 이례적인 일을 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때 그녀에게 이례적인 일이지만 주님에게는 아주 가벼운 일이지 않았겠느냐?”

베드로의 그림자에게 덮여 병이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주님께서는 아주 쉬운 일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베푸신 이례적인 일을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거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

기적과 치유에만 몰입하면 정작 주님과 깊은 관계를 엮어나가는데 등한시하게 되는 것처러 말이다.”

주님께서 바울의 손수건과 보자기로 치유와 축귀사역을 행하게 하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에베소 사람들에게는 이례적인 일일지 몰라도 주님에게는 쉬운 그 일을 통해 오직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엮어나가도록 주님만 신뢰하도록 한 일이지 않겠느냐?”

 

(찬양)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나예) 제가 오십견이 왔을 때 밤잠을 못 자고 울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정형외과에 가서 정확한 병명을 알아봤을 때 석회성건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죠.

그때부터 3개월간 양방과 한방을 겸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말해 준 대로 어깨와 팔 운동을 꾸준히 했죠.

그랬더니 그 뒤부터 서서히 좋아졌고, 지금은 통증이 없고, 오십견을 못 느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일은, 밤마다 통증 때문에 울었던 제게는, 그야말로 이례적인 능력의 일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 일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의사와 약을 통해서 베푸시는 일반적인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나예2) 또 언젠가도 말씀드린 바가 있듯이 한 동안 소화가 되지 않고 더부룩해서 고생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더니 역류성식도염이 있다고 해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죠.

그러다 어느날 새벽에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환상 가운데 큰 불이 두 개나 제 배 위에 떨어졌죠.

그 일을 통해 저의 위는 시원케 되었고, 지금은 소화를 잘 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큰 불로 저의 위를 고쳐주신 그 사건은 제게 이례적인 사건이지만 주님에게는 가벼운 일이라는 점이죠.

 

(깨달음)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가 하는 것 아닙니가?

오십견을 고침받게 해 주신 이례적인 사건, 역류성 식도염을 고쳐주신 그 이례적인 사건에만 제 눈과 마음이 쏠리길 원하신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가 느끼는 이례적인 능력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아가고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길 원하신다는 사실이죠.

 

만약 바울이 사용한 손수건과 보자기를 통해 병을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간 사람들이 그 뒤로도 바울의 손수건과 보자기에만 집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보다 주님에게 하찮은 그 손수건과 보자기에만 계속 눈길과 마음이 쏠리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과 자세라면 어떻게 구원의 주님과 더욱 깊은 신뢰와 관계를 엮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12년간 혈루증으로 앓다가 고침받은 여인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베드로의 그림자에 뒤덮혀 병을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각자 각자에게 이례적인 사건과 그 역사와 능력을 베푸신 목적인 그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그 분을 더욱 신뢰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내음성)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ㄴ까?

그래요 주님 바울의 손수건과 보자기를 통해 베풀어주신 그 이례적인 역사가 어떤 뜻인지 이제는 알 수 있어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례적인 일 그 놀라운 일들은 천지를 지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는 대수롭지 않는 일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그 놀라운 일들 그 이례적인 일들에 우리의 눈길과 마음이 쏠릴 게 아니라 주님께 더욱 집중하게 해 주세요.”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 주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더욱 바라보며 살게 해 주세요.”

그래서 제 삶에 이례적인 능력이 일어나지 않아도, 혹시 몸이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실한 믿음인 줄 믿어요.”

 

(찬양)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 길로 인도 하소서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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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천막 만들 때 사용하던 천조각과 보자기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이 떠나가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 일이 에베소 시민들과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역사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위가 깨끗해지고 우리의 영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은 것도 이례적인 일처럼 말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이례적인 일들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런 놀라운 일들, 그런 이례적인 일들을 베푸시는 참된 뜻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일들, 그런 이례적인 일들을 통해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역어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만 내가 바라는 대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여전히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때에만 나보다 더 나은 길을 예비해주시는 주님으로, 내가 바라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내 삶을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엮어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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