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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BookReview

크로노스의 세계 속에 들어오는 카이로스

by 똑똑이채널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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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준 목사의 〈카이로스〉

이 책은 고린도전서를 기초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영적 세계의 원리를 기술한 책이다.

옷장의 문을 열어야 옷장 너머의 또 다른 세계 ‘나니아’로 들어가 강렬한 모험을 즐길 수 있듯이, 이 책은 손을 뻗어 옷장의 문부터 여는 도전을 제공한다.

 

1.인간은 어려서부터 자연세계의 원리들을 하나씩 배워가며 세상에 적응한다.

그런데 영적 원리에 대해서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세계를 만드신 분이 영적 세계도 만드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영적 세계를 움직이는 비결은 믿음의 기도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만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

 

3. 30년 전에 워치만 니의 책을 읽었을 때 이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안다는 게 뭐야? 어떻게 그냥 알 수가 있다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책을 던져버렸다.

그런데 30년 만에 책을 뒤적여보니 ‘아! 이게 그 말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30년 여정 속에서 직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경험들을 한 것이다.

이 경험들은 모두 기도나 말씀 묵상 가운데 ‘그냥 주어진’ 지식들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이제는 그냥 알게 되는 지식들이 내게도 낯설지 않다.

‘아,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나’ 그냥 안다

‘아, 이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그냥 안다.

 

4.양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을 교정하여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지금 그것 아니야’라고 알려준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양심이라는 영의 기능을 통해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심도 ‘선한 양심’이 있고, ‘화인 맞은 양심’이 있다.

지는 우리 영에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죄가 반복적으로 우리 삶 속에 들어오면 양심이 무뎌진다.

그래서 나중에는 ‘화인 맞은 양심’, 감각을 상실한 양심이 되어 버리낟.

 


5. ‘직관’과 ‘양심’ 외에도 성경이 이야기하는 중요한 영적 소통 수단은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과 믿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자신을 먼저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 계시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행위가 혼의 행위가 아니라 영의 행위다.

또한 믿음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 같이 해 준다.

어떻게 말씀을 혼으로 읽지 않고 영으로 읽을 수 있는가?

믿음으로 가능하다.

 

6.영이 강한 것은 영이 예민한 것과는 다르다.

영이 강한 것은 영의 통치-성령님의 다스리심이 내 안에서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영이 예민한 사람은 영적인 기능이 예민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뭘 잘 보고 잘 듣는다.

아마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이 강하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영적 예민함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후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와 연합하신 성령님께 우리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성령 충만’이라 한다

그러나 영이 약하면 육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 결과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반면 영이 강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지배한다.

 

7.고성준 목사님이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때 ‘삼국지’라는 게임에 몰두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한 두 번 하던 것이 그만 매료되어 버렸다.;

결국 먹지도 자지도 않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몇 개월을 하루종일 15, 16시간씩 게임만 했다.

명백한 중독이었다.

‘이래도 되나?’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둬야지’ 하루에도 수십번 다짐했지만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하루는 밤새 게임을 하고 다음날 오전까지 게임을 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점심때가 돼서야 잠시 게임을 멈추고 달력을 보는데 GRE(미국 대학원 진학을 위한 시험)보는 날이었다.

결국 유학은 자연스럽게 1년이 미뤄지고 말았다.

다행히 6개월간 군사훈련을 받으며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영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여기서 ‘알게 하다’이 원어 ‘에이돈’은 ‘보다, 주목하다, 알아차리다’는 의미다.

영을 받으면 ‘주목하여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주목하여 보게 된다.

세상의 영을 받으면 세상의 것을 주목하여 보게 된다.

영은 보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영이든 하나님의 영이든 영이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는가?

‘보는 것’을 통해 들어온다.

어떻게 ‘게임의 영’에 사로잡히게 된느가?

게임을 봄으로다.

어떻게 음란의 영에 사로잡히는가?

음란물으 봄으로다.

이것이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방식이다.

 

8. 고성준 목사님이 동역하는 ‘브레이크쓰루’(Break Through network)가 있다.

그곳의 목사들은 오랫동안 한중일의 연합을 위해 기도해왔다.

선교의 마지막 과업을 이루기 위해 먼저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하나 돼야 한다는 생각에 중국과 일본에 관련된 일에 발벗고 뛰었다.

10년을 열심히 뛰었는데 열매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4년에 중국 베이징에 가정교히 지도자들을 훈련시켜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 함께 초청받은 윤성철 목사와 함께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알고 봤더니 며칠 전에 공안이 가정교회 모임에 들이닥쳐 모임이 산산이 흩어졌단다.

그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초청하신 목사님과 통역을 세워 통화했다.

“저희가 있는 곳으로 오십시오. 이곳에서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헷갈렸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새로 개통되었다는 초고속 열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중국 내륙의 정저우에 도착했다.

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따라 6시간 차를 타고 다음날 동틀 때쯤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의 창고에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어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 말씀을 전했다.

말씀을 전하는데 맨 뒤에 앉아 계신 연로한 목사님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뵈었지?’ 생각해 보니 책에서 사진으로 뵌 분 같았다.

‘에이, 그 전설 같은 분이 여기에 있겠어? 그 분은 중국 가정교회 전체의 가장 큰 어른인데.’

설교가 끝나고 나니 우리를 초청하신 중국 목사님이 다른 목사님들을 소개시켜주셨다.

‘이분은 중국 가정교회의 큰 어른이신 장룡량 목사님이십니다.’

정말 그 분이었다.

6천만에서 많게는 1억 명에 이른다는 중국 가정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큰 어르신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초청하신 목사님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가 그 분의 집입니다. 모르셨습니까? 팡청에 잘 오셨습니다.’

‘뭐라고 여기가 팡청이고, 이 집이 장 목사님 댁이라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자신과 윤성철 목사님은 천사(?)에게 이끌려 중국 가정교히의 성지인 가장 큰 어른 댁에 이른 것이었다.

두 번째 집회가 시작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입에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중국교회의 데스티니가 선포되고 있었다.

장룡량 목사님도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기 바쁘셨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열린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이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www.aladin.co.kr

 

9. 뉴턴이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이 새롭게 규정했던 시공간의 본질은 만유인력에 있다.

현대 물리학의 발견에 의하면 크로노스의 시공간은 만유인력, 즉 중력이 만들어내는 장 곧 중력장이다.

만유인력이라는 중력의 힘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크로노스 시공간의 근원은 힘이다.

마찬가지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의 근원 역시 힘 곧 하나님의 능력이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은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시공간, 크로노스의 시공간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들어와 펼쳐질 때,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부분적으로나마 크로노스의 시공간을 뒤덮는다.

그리고 그 덮인 시공간 위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로노스 시공간의 법칙을 뛰어넘어 펼쳐진다.

-여호수아는 태양이 멈추는 것을 보았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좌를 마주했다.

-에스겔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놀라운 환상을 보았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풀무불 속에서 보호하심을 받았다.

그곳에 세 친구 뿐 아니라 다른 한 사람, 크로노스의 시공간에 속하지 않은 다른 시공간에서 흘러온 존재가 함께 있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스데반은 열린 하늘과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구름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구름과 불이 어디서 왔겠는가? 크로노스의 시공간 안에는 없는 불이지 않은가? 다른 시공간-카이로스의 시공간에서 흘러들어온 불과 구름이었다.

-모세는 홍해를 갈랐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

-베드로는 옥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았고 바울과 실라 역시 옥에 갇혔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문하심으로 언약을 받았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때에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은 가장 강력한 하늘의 문이었다.

하늘의 구원과 축복이 크로노스의 시공간에, 이 땅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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