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
이 책은 복잡한 인생의 여러 갈래길에서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독자들, 특히 구도자와 새신자들에게 좋은 영적 내비게이션이 될 것이다.
1.옛날에는 여인에게 있어 인생의 4단계가 ‘소녀, 처녀, 아줌마, 할머니’였죠.
요즘은 ‘소녀, 처녀, 아줌마, 보톡스 아줌마’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없어진 것이죠.
그러나 얼굴의 주름살은 없애도 결코 없앨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마음의 주름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상처라고 부르죠.
억울한 일, 배신 당한 일, 사기 당한 일, 빼앗긴 일, 짓밟힌 일, 학대 당한 일, 매 맞은 일.
이 모든 상처가 우리 인생을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이 현실이 세상의 전부라면 인생은 얼마나 불공평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을 넘어 영원이 존재한다면, 천국이 존재한다면 인생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2. 헨리 C. 모리슨(Henry Morrison)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기 초 아프리카에서 40년간 개척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가족을 잃고 건강도 잃은 늙은 선교사가 되어 고향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죠.
그런데 그가 탄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데오도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고 대통령이 내리자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가 대통령을 환영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항구를 빠져 나간 후 모리슨 선교사가 항구의 출구로 나서자 레드 카펫도 없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도 멎었습니다
모리슨 선교사를 마중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저녁 노을이 진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주님 이것이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란 말입니까?”
그때 그는 저녁 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조용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헨리야.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길로 맞이할 것이다.”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가마!”
3. 18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명문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한 조셉 스크리븐(Joeph Scriven)이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일랜드 처녀와 약혼하고 행복한 앞날을 꿈꾸겄죠.
그런데 1840년 결혼 전야에 신부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845년 그의 나이 25살 때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떠납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상처를 씻고 새 삶에 적응해 갔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만난 두 번째 약혼자가 다시 결혼을 앞두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과의 싶은 사랑에 빠져 있던 그는 그 모든 슬픔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인생을 독신으로 살라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죠.
그 후 그는 이웃 사랑과 섬김으로 모든 걸 걸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캐나다 온타리오 포트 호프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를 산상수훈대로 사는 사람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성자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1857년 아일랜드에 남겨 두고 온 어머니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정황상 달려갈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시 한편을 써내려갔습니다.
자신의 아픔 속에 다가와 자신을 위로하던 친구 예수님이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바로 그 시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은 찬송시가 되었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 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4.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녀의 신비한 미소입니다.
모나리자를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여인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전통적인 것은 그것이죠.
그녀의 남편이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것에 기쁨을 표현한 미소라는 것이죠.
또 하나는 그것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잘 생긴 둘째 아들의 출산을 기대하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한 행복한 여인의 미소라는 설 말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미술 사학자요 미술 평론가인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는 다른 해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짧게 스치는 미소야말로 인생의 덧없음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여인의 왼쪽 어깨 너머에 작은 다리(bridge) 하나를 그려 넣는데, 다리가 있다는 말은 강물이 흐른다는 말이죠.
그것은 더없는 시간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뒤의 풍경은 평범한 마을 풍경이지만 사람들이 하나도 살지 않는 태고적 원시 풍경입니다.
그러므로 모나리자의 미소는 태고부터 흘러오는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의 덧없는 찰나의 미소인 셈이죠.
그만큼 모나리자 그림의 본질은 ‘시간에 대한 명상’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무한 실존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영원한 실존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죠.
5. 비행기를 타다보면 탑승 끝 무렵에 탑승구에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서성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종류는 확인받은 비행기 표를 들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다가 맨 끝자락 시간라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타는 사람들이죠.
또 한 종류는 비행기 표는 가지고 있는데 좌석 배정을 못 받고 스탠바이 하면서 불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종류는 비행기 표도 없이 혹시나 좌석이 있을까 하여 요행을 바라며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들이죠.
교회 내에도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받고 구원을 확인한 확신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구원은 받았는데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죠.
셋째는 구원도 못 받았고 확신도 없이 구원을 막연히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우리가 일생을 정리하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6. 어떤 형제가 과거에 자기와 교제하던 자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복합니다. 요일4:18”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진심으로 이제는 아무런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만난 남편과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가정을 만들라는 축복의 전문이었죠.
그런데 우체국의 실수로 ‘요일4:18’의 ‘일’자를 뺀 ‘요4:18’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부가 전문을 받아보니까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복합니다. 요4:18”
그래서 얼른 성경을 펼쳐 보았습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재미나 유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사마리아 땅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죠.
문자 그대로 이 여인은 남편 다섯을 바꾸면서 행복을 찾았지만 거기에 행복은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죠.
7.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이 책을 먹으라〉에서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사냥개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날 그 개가 사슴 뼈다귀를 발견하고 그 뼈다귀가 하얗게 드러날 때까지 물어 뜯고 또 뜯고 다시 그 뼈다귀를 음미하며 핥아 먹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히브리어 성경의 한 단어를 연상했다고 합니다.
그 단어가 ‘하가’였는데 시편 1편에 주야로 율법을 묵상한다고 할 때 그 단어가 사용되고 있죠.
그런데 그와 동일한 단어가 이사야 31장 4절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큰 사자나 젊은 사자나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라고 할 때 ‘으르렁거린다’는 단어가 ‘하가’입니다.
8. 고든 맥도날드는 그의 명저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충동에 이끌리는 삶’, 그리고 ‘소명에 이끌리는 삶’이 그것이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충동적으로 본능적으로 감정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다가 일을 그르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살아가죠.
그러나 소명에 이끌린 삶은 다른 차원의 삶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죠.
그는 여론을 경청하지만 여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사모되지 않습니까?
9. 어거스틴은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길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10. 다이아몬드는 원소 기호로 하면 ‘C’ 즉 탄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혹시 숯덩이도 원소 기호로 표기하면 탄소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제가 만약 숯덩이 하나를 들어 여러분의 손에 쥐어드리면 다들 피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탄소가 하나는 귀히 여기는 다이아몬드가 되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만지기조차 싫어하는 숯덩이가 되었을까요?
숯덩이 탄소가 땅 속 깊은 곳에서 어마 어마한 지열과 어마어마한 지압을 통과하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하지만 그 탄소가 아무런 고난도 없이 그냥 세월만 보내면 숯덩이가 되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서 고백하는 것이죠.
자신에게 직면한 약함도 능욕도 궁핍도 박해도 곤고도 오히려 기뻐했다고 말입니다.
왜일까요?
지금의 환난이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붙잡고 사는 다이아몬드 인생이 되도록 해 준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죠.
11. 터키 성지 순례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깨우침을 주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그곳은 갑바도기아의 지하 공동체 ‘데린 큐유’일 것입니다.
데린 큐유는 ‘지하 우물’이란 뜻으로 가장 깊은 곳은 무려 지하 60m(현재 지하 30m까지만 공개) 이상 파고 들어간 지하에서 무려 2만 명 이상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 시절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죠.
허리를 바짝 구부리고 지하 8층(전체는 지하 20층)을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거기에 십자형으로 된 지하 체플(중간 지점)에 도달하게 되죠.
이 어둑한 지하의 미로에서 그들은 평균 수명 40세를 넘기지 못한 인생을 살았죠.
그러면서도 예배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거기에 산 것입니다.
배교하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그들이었죠.
하지만 그들은 지하 인생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거기에 성도의 진정한 사랑이 있었고, 거기에 예배의 자유가 있었고, 거기에 기도와 찬양의 감격이 있었기 때문이죠.
12. 우리는 ‘테레사’하면 인도에서 사역한 노벨상 수여자인 마더 테레사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주후 1500년대를 산 분 중에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1515-1582)라는 분이 있었죠.
그녀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직후 스페인에서 수도원 개혁에 헌신했던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그녀는 가토릭 교회 안에 머물며 특히 수도원으 개혁만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믿어 개혁사역에 헌신했죠.
테레사는 본래 스페인 귀족 집안의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아빌라’라는 곳에 있는 카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에 정진했죠.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경험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조차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도 세 가지 일을 쉬지 않았죠.
기도하는 일, 시를 쓰는 일, 그리고 찬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가 남긴 전 재산은 짧은 세 문단으로 된 시 한편이었습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무엇에도 걱정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나니
인내함으로
모든 것을 행할 것이라
하나님을 지닌 자
부족함이 없나니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책리뷰Book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로노스의 세계 속에 들어오는 카이로스 (0) | 2022.01.04 |
---|---|
“피가 멎었어요. 방금 전에 극적으로 멎었어요.” (0) | 2021.12.30 |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0) | 2021.12.22 |
"내가 이를 위해 너를 불렀다.” (0) | 2021.12.16 |
“나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느냐?” (0) | 2021.1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