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중보기도 파티〉
이 책은 중보기도 치유기도에 전혀 관심없던 이동원 목사가 그걸 관심갖고 조직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바도 간증으로 담겨 있다.
1.제가 중보기도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목회를 갔을 때였습니다.
벌써 20년이 넘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워싱턴 지구촌교회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집사님 내외분이 계셨죠.
남편과 부인 두 분 모두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미국에 오신 이후 활동을 중단했고 남편만 의사로 일하고 있었죠.
아주 신실한 분들이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그 교회에 가면서 주치의 역할을 해 주신 두 분에게 마음으로 의존하고 내외분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1년 쯤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밤12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전화를 해서는 우십니다.
“목사님, 제 아내가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왜요?”하고 물었죠.
그러니까 병원에 와서 지금 수술 중인데 어떻게 혈관을 잘못 건드렸는지 피가 멎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이 의사인데 얼마나잘 알겠어요.
그러면서 “목사님 죽을 것 같아요. 기도해 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분이 얘기하니까 더 난감했습니다.
그 무렵 제가 기도에 대한 갈증이 좀 있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책들을 계속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기도를 별로 많이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기도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여러 사람이 기도하면 내 기도가 부족해도 좀 하나님이 하감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습니다.
“알았어요. 집사님. 제가 기도하고 갈게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회 리더들에게 전화를 해서 서너 분을 밤중에 깨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최집사님이 지금 수술 중에 피가 멎지 않는다고 그러는데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 꿇고 기도해 주세요. 당장입니다. 그리고 제가 부탁이 있는데, 집사님이 다른 분 몇 분에게 전화 좀 해 주세요. 전 지금 병원에 갈 테니까 몇 분하고 기도를해 주십시오.”
그렇게 서너 분에게 부탁을 하고 다른 분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지금 당장 기도를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내하고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옷을 주워 입고 나왔죠.
겨울이었고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워싱턴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분이 조지타운 병원이란 곳에 입원해 계셨는데 길을 잘 못찾는 제가 이상하게도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한 30분만에 도착해서 2층 수술실로 올라가는데 입구에서 남편이 서 계시다가 저를 쳐다보더니 “목사님. 할렐루야”하셨죠.
저는 그 분에게 그런 표현을 생전 처음 들었습니다.
아주 점잖은 분이었거든요.
그런데 “피가 멎었어요. 방금 전에 극적으로 멎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기도를 하고 돌아와서 그 다음 주일날 제가 중보기도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조사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열 한 가정이 밤에 일어나서 즉각 기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 좋구나. 중보기도 사역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보기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키워나갔습니다.
2. 골로새서 4장 2-3절에 보면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하고 말이죠.
“또한 우리를 위해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7절 이하에는 자기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 하고 있는 동역자들에 대해 일일이 그들에 대한 격려를 표명합니다.
“함께 된 종”, “함께 갇힌 자”, “함께 역사하는 자”등
3. 웨슬리 듀엘은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중보기도의 좋은 고전입니다.
이 책에서 듀엘은 다음과 같은 실화를 들려줍니다.
미국에서 파견하여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하고 있던 매튜 히긴스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아 출국 준비 중이었습니다.
케냐의 시골인 나이로비에서 오다가 마우마우라는 지역을 통과하는데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밤을 차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이 위험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마음 평안히 하룻밤을 잘 보냈어요.
그 이튿날 나이로비에 무사히 도착했답니다.
그런데 잠깐 머무는 동안에 어떤 선교사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하더랍니다.
“당신 그 마우마우 지역 통과할 때 한 열여섯 사람들하고 같이 있지 않았습니까?”
“열 여섯 사람? 우리 가족 밖에 없었는데요.”
“그래요? 누가 와서 이상한 얘기를 하더군요. 당신이 한 열여섯 사람들에게 포위되었다는 얘기를 하던데요.”
그래서 이상한 이야기다 생각하고 미국으로 귀국했습니다.
미국에 와서 안식년이니까 여러 교회를 순회하는 가운데 택사스의 어떤 교회를 갔답니다.
선교 보고가 끝난 다음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물어봅니다.
“혹시 몇 달 전에 당신 선교지에서 무슨 일 있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때는 막 나이로비로 안식년을 시작하러 오던 때입니다.
바로 마우마우 지역에서 하룻밤을 지냈던 그 밤이었어요.
“아, 그날 밤 차가 고장 나서 밤을 그곳에서 새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날 밤 저희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에 제 마음에 당신이 너무도 생각이 나고 부담이 되어서 예배 끝날 무렵에 광고를 했습니다. 오늘 제가 매튜 히긴스 선교사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는데 이 선교사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사람들은 예배가 끝난 후에 선교실로 와 주시면 우리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때 남았던 사람이 열여섯 명이었다고 합니다.
삿리 그 지역은 위험한 지역이었습니다.
불량배와 같은 사람들이 습격을 하려고 선교사의 차에 접근하는데 그곳에 열여섯 명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매튜 히긴스 선교사는 “아, 하나님이 그날 밤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열여섯 천사를 보내서 극적으로 우리 가족을 지키셨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4. 세계적인 사회학 교수이면서 전도자인 토니 캄폴로 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많이 하시는 예언자적인 설교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놀라운 믿음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분입니다.
그가 한 번은 비행기를 탔는데 아주 뚱뚱한 사람 둘 사이에 자신이 샌드위치처럼 끼었습니다.
얼마나 뚱뚱한지 옆에서 아주 힘들기도 하고 그의 얼굴을 보니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자꾸 그를 전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로 전도해야 할지 얼굴만 보면 겁이 나고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문가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데 사영리도 안되겠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겹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도하는 좋은 방법? 네가 그 사람을 험상궂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번 그를 터치해 보아라.’
그래서 한참을 기도하면서 주저하다가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깨에 기대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당신 기도하느냐?”고 묻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그러더랍니다.
이어서 그는 눈물을 글썽글썽해서 너무 인생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고백하는 것이었죠.
헤어지기 전, 복음을 전했고,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5. 이동원 목사님이 미국에서 이민목회 10년 이상을 했습니다.
워싱턴 근교에서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5-6년간 중보시스템에에 대해 완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신학적으로 큰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죠.
치유에 대해서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완전히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워싱턴에서 안식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중요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안식년 동안 기도를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고 기도에 대한 갈증이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치유 사역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세미나가 있으면 참석도 했습니다.
당시는 존 윔버라는 분에 의해 제3의 물결운동 혹은 성령과 치유 운동이 계속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빈야드 교회라든지 갈보리 채플 같은 계통의 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 교회에 가보면 확실히 다른 분위가기 있었습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고 또 끝난 다음에 사람들을 붙들고 많이 기도를 해 줍니다.
예배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이런 비전통적인 교회에 가면 축도대신 끝에 마무리할 무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받습니다.
이동원 목사님도 그렇게 나아가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에게는 눈에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 이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
그렇게 일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내는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는 가시적인 현상적인 경험들이 기대한만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끝날 무렵에 좀 이상한 일이 있어씂니다.
안식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교회에 돌아오게 돼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니까 무언가 꽉 찬 것 같았습니다.
전에는 마음이 비어 있었는데 무언가 충만한 느낌이 찼습니다.
마음 속에 불평이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 긍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교회에 돌아가면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식년이 끝나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전하고 달라진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예배가 끝면 인사하고 가버렸는데, 이제는 “혹시 여러분 가운데 기도하고 싶은 사람, 저에게 기도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오십시오.”하고 기도를 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몇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몇 주 지나면서 이상한 소문이 퍼집니다.
기도 받았는데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이상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이 일종의 안식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 30분, 또 한 시간 있다가 일어난 분들도 있었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너무너무 깨끗해졌어요. 제 마음에 평화가 임했어요.”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60명, 70명이 될 때, 그분을 잘 도울 수 없을까 해서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중보기도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겠다. 조직화하지 않으면 나만 기도해주다가 멍들게다”하는 것이었죠 .
그렇게 해서 결국 ‘중보기도 사역팀’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6. “명하여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산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와서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명령기도는 이와 같이 하는 기도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산아”할 때, 여기서 우리가 해석을 잘못하면 이러한 장애가 귀신의 결과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은 귀신의 사역은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눈이 멀어서 귀가 먹어 귀신이 보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귀신은 전지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전지하신 분입니다.
귀신은 우리보다 힘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전능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악한 영들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모든 병이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귀신의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명령기도가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귀신아. 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7. 팀 워너 교수가 보스톤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보스톤의 호텔에 묵었죠.
그런데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누르는 것 같고 괴롭더랍니다.
일어나서 방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묵고 있는 이 방을 거룩하게 해 주세요. 성령충만하게 해 주시고 제가 사흘 동안 묵는 동안에 하나님과 교통하게 해 주시고 여기서 쉼을 찾고 메시지도 잘 증거하게 해 주세요.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주세요.”
그래도 계속 마음이 눌리는 것이었습니다ㅣ.
그래서 그분이 명령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곳에 어떤 침투하는 악령들이 있다면 주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묶어 주시고 이 방안을 깨끗하게 해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것들은 이 장소에서 떠날지어다.”
그렇게 한 마디 하는데 갑자기 옆의 스텐드 전등불이 막 흔들리더래요.
꺼졌다가 다시 들어오더랍니다.
그리고 그 후 마믕에 무거운 것들이 떠나가고 잠이 잘 와서 이분이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데리러 온 사람이 있어서 교회로 떠나려다가 데스크에 들러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제가 몇 호실에 묵고 있는데 그 방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몇 호에 계세요?”하고 막 웃더라고 합니다.
“왜 웃으세요?”하고 물어보니까. 그 방에 점치는 사람이 와서 두 주 동안 머물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얼마든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명령기도를 남용하면 안되지만 우리가 적절한 선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분별이 있을 때 이 기도가 유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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