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 가야만 한다.
저 2천년 전 로마의 지배 아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의 수모를 받으며
그분이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악의 무성한 꽃밭 속에서
진리가 귀찮고 슬프더라도
나 혼자의 무력(無力)에 지치고
번번이 패배의 쓴잔을 마시더라도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팔매를 맞으며
그분이 십자가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정의(正義)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이요,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요,
우리의 바람과 사랑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서
아무런 영웅적 기색도 없이
아니, 볼꼴 없고 병신스런 모습을 하고
그분이 부활(復活)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구상(具常, 본명 구상준) 시인이 쓴 〈홀로서 가라〉 전문이다. 거짓과 불의가 난무한 곳에서도 홀로 가신 주님을 본받아 따라가야 한다는 시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압박과 수모 속에서도, 유대 군중들의 비웃음과 돌팔매질 속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한 길 걸으신 주님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1919년 서울 이화동에 태어난 그는 4살 때 함경남도 원산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할 때 신앙에 입문했다. 형처럼 신부가 되고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저항의식 때문에 포기했다. 고향을 떠난 그는 일본대학 종교과에 입학해 정신적 근원을 다졌다. 1946년 ‘응향필화사건’에 휘말린 그는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이후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1953년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왜관으로 내려가 1974년까지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여러 기인(奇人)과도 교류했다. 이중섭 화백을 극진히 돌보았고 시인 오상순과 ‘어린이 헌장’의 기초자 마해송을 비롯해 걸레스님 중광과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의 품은 그만큼 넓고 따뜻했다. 더욱이 그가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판 1억 원을 이웃을 위해 내놓기도 했다. 성자(聖子)와도 같은 삶을 산 그는 폐질환과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2004년 5월 11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욥은 과연 누구일까? 그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그를 아브라함 시대의 인물로 보기도 하고, 이집트 파라오의 왕실 고문 중 하나로 보기도 하고, 모세의 출애굽 시대에 가나안 정탐꾼과 관련된 인물로 보기도 하고,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로 보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가 “우스 땅”(욥1:1)에 살고 있다는 이유. 그곳은 지명과 함께 사람 이름으로 본다면 ‘나홀의 첫째 아들’(창22:21)이 되는 셈이다.1) 유대전승 할라카(Halakha)에서는 욥을 이집트 파라오의 왕실 고문 중 한 명으로 추정한다.2) 그 전승은 파라오가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할 때 욥은 어떤 항의나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탈무드는 욥을 가나안 정탐꾼 시대의 인물로 묘사하기도 하고 미쉬나는 여호수아 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한다.3)
나는 그런 관점 중에서 욥이 아브라함 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여긴다. 무엇보다 성경의 내적 증거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브라함이 175세, 이삭이 180세, 야곱이 147세를 살았는데, 욥은 구약성경을 아람어로 기록한 70인역(LXX)에서는 210년(욥42:16절 참조)을 살았다고 기록한다. 그만큼 욥은 긴 수명을 산 사람으로서 족장시대의 인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욥이 모든 고난의 터널을 지나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실 때 사용된 화폐 단위가 ‘게쉬타’(욥42:11)다. 그것은 족장시대에 쓰인 화폐 단위(창33:19, 수24:32)다.
‘욥’(אִיּוֹב, Job)이란 이름은 ‘미워하다’ ‘혐오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욥은 그의 본래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의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재산과 자식을 잃고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질그릇 조각으로 긁고 있는 상태를 칭해 부른 별명 말이다.4)
그 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온전한 사람, 정직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 그리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잔치가 끝나면 자식들을 불러다 번제를 드릴 정도였다. 항상 그 행위가 그랬다. 그에게는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었다. 그는 양 7천마리, 낙타 3천마리, 소 5백겨리 곧 1,000마리, 당나귀 500마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짐승 떼를 돌볼 종들도 엄청났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직하고 올곧고 악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자식과 소유물이 많았다. 그런 그를 다들 존경하고 의롭다고 평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화가 닥쳐왔다. 천상의 어전회의가 있던 날 대적자(adversary)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참소했다.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욥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사탄은 욥의 소유물을 치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때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의 소유물을 알아서 해 보라고 했다. 욥의 소유물을 통해 욥의 신앙상태를 흔들어 보라는 뜻이었다.
그때 욥이 어떻게 되었는가? 욥은 재산과 종을 잃었고 심지어 자식들까지 죽고 말았다. 고난은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하는데 욥이 딱 그런 경우였다. 그때 욥이 고백한 게 서두에서 읽은 말씀이다. 욥은 그런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남을 탓하거나 정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치도 않았다.
그것이 바로 홀로서 가는 욥의 신앙 세계다. 깊은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봤자 소용없는 것과 같은 격이다. 사탄의 세력이 욥을 흔들어대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막9:25)의 세력이다. 전지(全知)하거나 전능(全能)하지 못한 존재다. 오직 하나님만 전지전능한 분이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만이 어떤 세력이 뒤흔들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심연의 호수와 같은 신앙인, 그가 바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홀로서 가는 신앙인이다.
1)https://www.chabad.org/library/bible_cdo/aid/16403/showrashi/true/jewish/Chapter-1.htm
3)https://www.sefaria.org/Job.1.1?lang=bi&with=Bava%20Batra&lang2=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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